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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 Apr 04. 2019

절박한 거절의 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될 때

거절이란


거절받은 적 있는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거절을 받을 수 있고, 원하는 대학에 거절 편지를 받거나 혹은 지원한 직장에서의 거절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을 때 거절받으면 자존감에 흠집이 나기도 하고,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 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린 거절의 순간을 기회의 순간으로 바꿀 순 없는 것일까?


난 어릴 때부터 '운'과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온다고 들었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꾸준히 준비하면 '때'가 온다고 들었다. 그래서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늘 노력하는 게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한 것일까? 최선을 다하는 삶에, 큰 거절이 온다면 어떨까? 유진 오켈리에게 삶에 '암'이라는 거절 선고를 받았다. 유진 오켈리의 회고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앞으로 살날이 3개월 남았다는 선고를 들었다.



3개월 남았다는 선고를 듣고, 그는 동심원 5개를 그려, 그의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지도를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 짓기로 결정했다. 그는 '살 날', 정해진 시간 속에서 완벽한 시간을 보냈다.



완벽한 나날들이 보이는가? 아니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발굴해야 하는가? 당신에게 완벽한 30일을 만들어보라고 말한다면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30일? 6개월? 10년? 아니면 평생이 걸려도 불가능할까? 나는 하루에 일주일을, 한 주에 한 달을, 한 달에 1년을 산 기분이다.




나는 얼마나 완벽한 하루를 살고 있을까? 항상 할 수 있는 것이라서 안 하는 것 많지 않은가? 사랑한다고 말하기, 눈 마주치고 얘기하기, 칭찬하기, 밥 한 끼 같이 먹기 등... 바쁜 삶을 살아서라는 구차한 핑계를 대기도 한다. '살 날'이 많이 남아서 하는 말과 행동은 어떻게 설계하고 정하는가? 내 삶을 내가 운전대를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건 아닐까? 어릴 때부터 혼자 외국생활을 했다. 자립심과 독립심을 수양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다. 완벽한 계획 속에 사는 듯 한 나에게 완벽한 거절이 있었다. 엄마의 암 선고였다.



내 삶에 내려진 가장 절박한 거절이었다. 내 몸에 대한 거절이 아니지만, 내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 덩달아 취업비자도 거절되었다. 순탄대로 원하는 길과 인정받고 보살핌 받는 공동체 안에서 편하게 살던 나에게, 모든 것이 소용없고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내 삶이 싫어지고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거절들은 나에게 완벽한 거절의 순간이 되었다. 내 삶을 캐리어 두 개에 정리하여 나는 다시 엄마 품으로 왔다.




고양: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 - 점심시간

과거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소중하지 않았다. 늘 컴퓨터 앞이나 책 앞에서 먹었다. 휴식의 시간이라기보다 끼니 때우는 시간이다. 그랬던 점심시간이, 지금은 고양의 순간이 되었다. 우리의 점심은 짧으면 2시간 정도이다. 일상 속에서 점심시간을 통해서 각자의 바쁘고 집중된 새벽부터의 일과를 나누고, 배우고 있는 것들, 오후에 할 일들, 혹은 같이 '나 혼자 산다'를 시청한다. 우린 박나래를 참 좋아한다.

점심 후에는 꼭 내가 내린, 커피와 가벼운 간식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직장인 점심" 이라며 컴퓨터 앞에서 먹는 내 모습을 찍는 것에서 이젠, "엄마와 나른한 오후 데이트" 같은 사진을 찍는다.

한가로운 주중에 점심 데이트를 즐긴다. 이젠 하루라도 우리의 소중한 점심 데이트 시간이 없으면, 어색함과 부족함 그리고 결핍 증상이 나타난다. 매일 느끼는 활력이 중요하다.

엄마와의 고품격 점심시간들을 통해 식사시간에 대한 시각과 생각이 바뀌었다. 밥을 함께 먹는 것의 행동, 인증샷 찍기, 그리고 그냥 같이 시간 보내기를 넘어서서, 나에게 식사시간은 삶을 나누고, 발전시키고, 특별한 소소한 일상이 되는 고양의 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사람을 통해 인생 전환점을 꿈꾸지 않는가? 워런 버핏과 점심을 먹으려고 $3,300,100을 투자하는 사람도 있지 않는가? 엄마와의 점심시간은 워런 버핏과의 점심보다 더 값지다.




통찰: 불현듯 진실을 깨닫는 순간 & 교감: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순간 - 멘토십

워런 버핏과 점심에 투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멘토가 필요하다. 훌륭한 멘토십 공식은 멘티를 향한 믿음으로 높은 기준을 가지고 확신을 하며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끝까지 지지한다. 인생의 멘토가 있는가? 감사하게도 내 삶에 소중한 멘토들을 보내주셨다. 내가 필요한 시점에 멘토십 공식을 가진 분들이 있었다. 작은 소녀에서 성장하는 자매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되려는 과정까지 꼭 멘토가 있었다. 지금 나의 멘토는 엄마이다.

혼자 이기적으로나 독립적으로 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몰랐다. 좋은 인간관계는 꼭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어주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팔로우'를 하느냐, 혹은 '언팔로우'로 정의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의 '좋아요' 버튼이, 그 사람이 내 삶을 존중하고 '좋아요' 한다는 뜻이 아닐 수 도 있는 것이다. 또한 함께하는 시간이 길다고 하여서 인간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회 심리학자 해리 T. 라이스 (Harry T. Reis)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반응을 하는 것을 느낄 때 관계가 더욱 강화된다고 했다 (257). 세 가지 반응은:

이해: 내 배우자는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다.
인정: 내 배우자는 나라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것을 존중한다.
배려: 내 배우자는 내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돕는다 (258)



여기서는 배우자라고 지칭하지만, 배우자가 내 주변에 있는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엄마는 나에게 꼭 '배우자' 같은 분이다. 점심시간을 통해서 서로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꿈꾸는지 서로 묻는다.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이 "왜 그걸 좋아해?"가 아니라, 서로의 꿈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 특히 배려 부분에서 우린 서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돕는다. 난 배움을 사랑하고 매일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66 챌린지라는 습관 바꾸기 프로젝트를 통해서 '30분 독서하기'를 함께 도전 중이다. 현재 50일이 넘었다. 매일 서로 체크를 하고 응원해주면서, 각 자의 자리에서 독서를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얼마 전에 다녀온 빡독 행사는 작년 11월부터 가고 싶어 했는데, 내가 금전적과 스케줄 문제로 고민하시는 걸 보고 "배움의 장소에 뛰어들어라" 하시며 적극적으로 격려해주셨다. 엄마는 내 꿈을 믿어주신다. 내가 바른 길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가도록 지지해주고 곁에서 응원해주신다. 끝까지 잘할 것이라고, 꾸준히 하자고 한다.

한국에 오기 전엔, 엄마가 꿈이 있는지 몰랐다. 엄마가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고, 나에게는 계속 엄마이지만, 엄마는 엄마를 넘어서서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이해, 인정, 배려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매일 배움의 힘을 느끼며, 무엇을 더 배울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긍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감사편지

거절의 순간이 없었다면, 이 모든 걸을 누리는 순간들이 올 수 있었을까?

순간의 힘이 이야기하는 교양, 통찰, 긍지, 교감 이 모든 요소를 매 순간 활용하여,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가고 싶다. 내 삶 다른 부분에도 잘 활용해서 더 의미 있는 삶을 구축해 갈 결정적인 순간들을 만들고 싶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난 혼자서 빨리 그만 가고, 엄마와 함께 멀리 가고 싶다. 졸꾸하면서.








엄마, 늘 함께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엄마, 늘 웃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엄마, 늘 내 편이 되어 주고 매 순간에 희망과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혼자 해낸 일들이라고 착각한 세월들이 엄마가 있어서 만들어진 순간들이었고, 나의 꿈과 성공을 지지해주면서 헌신하시면서 그러나 여전히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난 아직 부모가 되는 걸 알기엔 턱없이 부족한 어린 딸인 것을 깨닮습니다. 저자의 말머리에 "너희의 결정적 순간은 곧 우리의 결정적 순간이란다"라고 하는 것처럼, 나의 결정적 순간들을 더 결정적인 순간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철없는 딸을 변함없이 조건 없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함께 더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요. 내 삶에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제가 엄마의 결정적 순간이 내 결정적 순간이 되는 순간들이 되도록 곁에 있을게요. 사랑합니다.


http://naver.me/x5hzuz1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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