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일글=개인의 문제는 아닌듯 싶다.
고등학교 때 아침일찍은 분명 비가 안왔는데 하교길엔 비가 내렸다. 당연히 우산 없는 나는 어쩌나 하고 있는데 당시 가장 친한 친구중 한명인 애가 우산을 건네줬다.
같이 쓰자 / 안써, 오늘 비를 맞고 싶어
그냥 이상한 애였다.
잘생겼는데 분명히, 이상했다.
고2 가을 즘에는 하교길에 종이 한장을 펄럭거리면서 다가왔다.
뭔 종이야 / 자퇴서
하루에 적어도 세번은 만나고 주말에도 만나서 노는데 자퇴서를 들고올거란 생각은 1도 하지 못했었다.
미국으로 떠났다. 그친구는 고3도 피했고, 대입도 피했고 대학 신입 새내기 생활도 피했으며 군생활도 피했다.
그리고 20대 후반이 될때까지는 연락은 간간히 닿았지만, 볼일이 없었다.
서른이 되고 나서 그제서야 한국을 찾은 그 친구가 한 말은 자퇴서만큼이나 놀라웠다.
나 딸이 2명 생겼어. 결혼도 했고
응 그래 이젠 뭐 놀랍지도 않다.
군대란곳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뭐든걸 다 피하고 미국에서 결혼하고 직장도 잡고 아이 2명 아빠로 잘 살아가고 있댄다. 누구도 삶을 재단할 수 없기에 뭐라할 순 없지만, 어쨋든 나와 그친구, 그리고 우리 무리는 태어난 이후 10년간을 같이 보냈으나 20살 이후 10년은 너무 다르게 겹치는 것 없이 살아왔다.
동질감이랄까, 고등학교 시절에 우린 그런게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만난 그는 검은머리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생각도 마인드도, 그리고 경험도 모두 한국의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사는데선 8시면 대부분 집에 갈 생각을 해. 너네 처럼 8시면 친구 만날 생각을 하는게 아니고.
어쩌면 저 차이가 아닐까 싶다. 미국이 이혼율도 높은 것도, 오랫동안 사랑하고 손잡고 행복하게 잘 사는 부부가 많은 것도.
한국의 부부가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평일 저녁은 일하랴 약속 가랴 바쁘고 주말은 각자 개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부르짖는다.
부부가 데이트 하듯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특히 아이를 키우다 보면 결국 둘의 시간은 없다고 봐도 될텐데 연애 시절 그렇게 사랑했다 한들, 10년이고 20년이고 그 연애시절의 기억으로 버티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매일 매일 저녁을 집에서 함께 보내는 부부는 두가지 중에 하나는 결정하는 듯 싶다.
정말 안 맞아서 못살겠으면 밖으로 나도는게 아니라 관계를 정리하고 갈라선다. 얼추 맞춰 산다 싶으면 서로간에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부부로서의 관계가 유효할 수 있는 듯 싶다. 가족끼리의 시간이 일단 절대적으로 많으니까.
우리가 정이 많고, 우리가 잘 견뎌서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우리가 나이가 들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빠르게 식는 인종이라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산책을 나가도 손을 안잡는게 아니다. 50넘어서 손잡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 불륜 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이런건 우리의 문제,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밤이면 시작되는 불빛들, 잠들지 않는 도시에 몰려사는 서울이라는 시스템의 사이드 이펙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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