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일글
한예종 화제작을 모아서 조그마한 공간에 스크린을 띄워서 다 같이 모여보는 곳에 다녀왔다.
<핑크 페미> <선화의 하루>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제목이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세 작품을 볼 수 있었고 좋은 시간이었다. 재밌지도, 놀랍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았으며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딱 맞는, 기대하는 정도의 즐거움이었다. 거기에서 핑크 페미에 나온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페미니즘 근황
17-18년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는 페미니즘이었다. 박근혜 정부 탄핵의 촛불이 이제는 여성인권으로 옮겨 붙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언론에서 페미니즘을 다루었다. (언론에서 다루었다.라고 표현하는 건, 페미니스트들은 그전에도 존재했으며 그들의 행위와 여러 가지 목소리는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얻을 수 있었다.)
미투 운동은 정치권에서 시작했으며 정치가 아닌 영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지나갔다. 특히나 이미지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연예계에서 미투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내렸다. 문득 생각나는데 김생민, 그 아저씨 불쌍하네. 소소하게 오래가자는 게 자기 신조라고 하더니 확 떠오르자마자 무너져내려 버렸네. 그 개개인의 억울함이나 미투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 사건들은 이미 지나갔으며 분명한 의미와 결과를 낳았다.
2. "인종차별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페미니스트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고 그 사람의 이야기는 흑인들이 인종차별당하던 시기의 영화로 시작되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던 미국의 흑인 이야기를 보면서 페미니스트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당시 흑인들을 차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흑인에 대한 혐오감이 없는 사람들도 흑인들이 다른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흑인들이 자신들의 인권이야기를 할 때 "쟤들은 왜 이렇게 난리일까 인간 대우를 안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흑인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식적인 선에서 거부감을 느낀다.
여성이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차이가 존재하며 그렇기에 다른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고 인종차별 문제를 떠올려보면 미개하고 미개한 사람으로 매도당할 수 있다.
3. 걸스 캔 두 애니띵
여경, 여자 소방관, 여자 여자 여자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은 '어떤 여자'를 '특정 상황'에서 다르게 대한다. 풋살을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옆 코트에서 여자 풋살팀이 공을 차고 있었다. 공찬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순수하게 여자들이 두 팀을 모아서 축구를 하는 건 처음 봤다. 그래서 여자애들이 모여서 풋살 하더라 신기하던데- 라는 소리를 했다가 페미니스트에게 한소리 들었다. 매주 축구를 할 때마다 남자팀을 볼 텐데 그때는 별생각 없으면서 왜 여자가 축구를 하면 신기한 일이고 이상하게 보느냐는 것이다.
비슷한 게 여경으로 대변되는 '여자- 어쩌고'이다. 경찰이면 경찰이지 왜 여경일까. 군인이면 군인이지 왜 여군일까.
여기에 대해선 사실 두 개로 갈린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에 따라서 각기 가능한 일이 있고 불가능한 일이 있다. (혹은 보다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이 있다.) 또 다른 의견은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의견이다. Girls can do anything은 실상은 페미니즘 쪽에서 시작한 말이지만, 지독한 성별 프레임과 일반화가 범벅이 되었기에 희화화되기 좋은 말일뿐이다. 어쨌든, 정말 가능할까.
경찰은 해본 적이 없고 군인은 해봤기 때문에 여자들도 군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Yes이다. 내가 군대에서 했던 많은 일들은 사실 전쟁에 관련되지 않은 많은 부분이 있었고 힘이 약하디 약한 사람(그게 여자든 남자든)이더라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물론 여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하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군대에는 어떤 여자들은 죽어도 못하는 일도 존재한다. 다만 특별한 몇몇 케이스들을 봤을 때 여자들도 죽어도 못하겠지만, 일반적인 남자들도 죽어도 못 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사실 특정 사례를 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서 UDT 같은 특수부대에서 받는 고강도의 훈련은 남자, 여자를 따질 것 없이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 견디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애들이 어떻게 이걸 하겠어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반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다 없다를 여자 남자로 나눠서 이야기하는 걸스 캔 두 애니띵은 쓰레기 같은 말이다. 의미라곤 1도 없다.
3. 함정카드 밟은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두 가지 과정을 거치며 망했다. 첫 번째 과격한 페미니즘의 부각이다. 페미니스트들은 한 가지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남녀평등에 대한 정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당한 선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는 사람부터 남자아이들을 임신하게 된다면 낙태를 해야 하고 자신의 아버지까지도 남자기 때문에 무덤을 파내야 한다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까지 존재한다. 한국에서의 대부분은 과하지 않은 '평등'에 초점을 둔 페미니스트들이 많았는데, 언론과 여론은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들의 과격한 사상을 전체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인양 포장한다. 뭐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남자를 적으로 돌리는 건 둘째치고 같은 여자들 역시도 돌아서게 되고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기 부담스러워지는 상황이 온다. 지지기반이 넓어지지 못하는 사상은 사라진다.
두 번째 과정은 논리로 싸우기 시작하는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논리라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절대적인 선이거나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인종차별 이야기를 해보자. 흑인들의 근섬유나 신체조직은 일반적으로 동양인의 그것보다 우월하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올림픽 육상 종목에서 아시아인이 결승 무대에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평균치를 구하던지 혹은 최고값, 최저값을 정하더라도 흑인들이 신체적으로 유전적으로도 우월하다. 반면 수학적 계산은 아시아인이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이 신체적인 활동을 중요하시는 블루 컬러가 되어야 하고 아시아인은 화이트 컬러가 되어야 한다.라는 논리는 언뜻 맞아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켜야 하는 자유, 평등, 진리 등등의 가치들은 논리가 아닌 당위의 문제이다. 논리적으로 자유가 침해되어도 된다라는 결론이 날순 없는 상위의 가치들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가야 하는 방향은 당위의 문제여야 했다. 이준석, 정영진 등이 백 분 토론에서 페미니스트 쪽의 패널 두 명을 말로 후 드려 까는 것을 봤다. 정영진과 이준석이 말하는 것이 다 맞다. 다 옳고 페미니스트가 보더라도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는 두 패널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낀다. 논리로 승부 보는 테이블에서 페미니즘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아니 어떤 상위 가치가 올라가더라도 논리로는 승리할 수 없다.
2019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페미니즘은 망했다고 한다. 이제는 벌써 지겨운 이슈이며 이제는 그만 이야기하고 싶다. 싸워도 결국 그놈이 그놈,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다. 이렇게 신선도가 떨어진 이슈가 돼버린 페미니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는 지겨우니 그만 덮어두자 할 만큼 쉽게 포기할만한 가치는 아니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들에게 묻고 싶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