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우울함을 모르는 사람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일본회사에 8년 차로 근무하고 있다.
첫 몇 해는 참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너무 좋았고, 특히, 함께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너무 끈끈했다.
글(漢字)도 못쓰는 나를 이끌어주고 이해해 주시며 여기까지 멱살을 끌고 와주신 것만으로도 이 회사에 평생 은혜를 갚으면서 살아도 마땅하다 생각한다.
4년 차, 코로나 이후 일하는 체계가 바뀌면서, 근무는 오히려 내 손안에 컨트롤이 가능해졌고, 회사가 돌아가는 모습과 안건들 중 혼자서 일이 가능 해질 정도로 성장했다.
회사 안에서는 이나짱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내활동도 활발히 했다. 매달 회사에서 내는 메거진의 ‘이나의 비빔밥’이라는 주제로 빔(BIM)에 대해 배운 것을 기사로 쓰며 매달 기다려주는 분들이 있을 만큼 팬층도 두터웠다고 볼 수 있다 (ㅋㅋ 그렇다고 해두자).
회사 안에서는 정사원으로 입사한 외국인은 동기 한 명을 포함해 우리가 두 번째였으며, 외국인이 많은 회사여서 잘 적응을 한 것이 아닌 순수 일본회사에서 뿌리를 박고 너무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에는 회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학생들에게 회사를 설명하러 가기도 하고, 멋지게 활약하는 디자이너 선배인양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회사 상사들이랑도 친해 일본에서 한국까지 결혼식까지 와주시기도 했고, 휴일도 꽤나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해, 매년 2주 연속으로 해외여행을 가거나, 한국에서 한 달 근무를 하기도 했다. 무슨 이런 천사 같은 회사가 어디 있을까. 주변에서는 이만한 복지 좋은 회사는 없다고 했고, 들어고오싶어 하는 학생들도 정말 많은 인기회사였다. 단점이 있다면, 월급이 많지 않다는 것. 하지만, 부족함 없이 너무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만큼은 준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일까. 아니면 내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해서일까. 이곳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곧 그만두겠다며, 일본이 아닌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7년 차가 되니, 동기들이 하나둘씩 ”서른이 되기 전에는 “ 이란 마음으로 퇴사를 하기 시작했고 그게 나에게도 마음 안에서 움직였는지, 링크드인(외국 채용 사이트)에 가입해 이름을 스리슬쩍 넣어놨었다.
이때부터는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취업이 쉽나요?라는 질문에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현재회사는 일본 업계 내에서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면, 링크드인 안에는 더 쟁쟁하고 세계적으로 누구나 아는 회사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사제의가 들어오곤 해 당황하기도 했다.
공간디자이너를 경력직으로 갖고 가기에는 선택지가 그렇게 넓지 않다고 생각했고, 사무실 레벨에서 일해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뷰티패션업계에서도 수요가 있구나.
사실상 경력직으로서는, 회사에서 했던 근무이력으로서는 뒤처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축/인테리어 7년 이상 근무, 일본어영어가능,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가능.
가장고민이 되는 부분은, 현재 우리 회사만큼 일하기 쉬운 근무환경은 없을 거다. 하지만 사실상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나에게 7년은 그만큼 좋은 회사였다는 것이고, 이제는 이 경험을 디딤돌 삼아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개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데, 나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다음으로 가려고 한다.
사실 나는 우울함을 모르는 사람인건 아닐까. 사실은 다른 의미로 그만둬야 하는 싫은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무던해서 나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회사에서도 동기들이 너무도 싫어하는 상사를, 나는 조금도 싫어해본 적이 없을 만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사람이기는 하다.
이젠 2주간 해외여행을 다녀온다던지, 상사들이 너무 좋아서 일하기가 즐거울 것이라던지 그런 상황은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회사들 아무리 프라이드가 높은 패션업계라 해도 새로운 즐거움이 있겠지. 더 나아갈 수 있다면 나를 위해 이런 결정은 한번 정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외국계열 일본지사의 명품브랜드의 화장품라인의 공간디자이너로 일해보기로.
나 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