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甫竪 一日橫
3
콩! 이보는 탁자위에 머리를 찧었다. 이런이런 이게 뭐람. 먼데리아에서 잠이 들다니. 염치없었다.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뿌연 눈을 껌뻑여 정말 이보가 지금 있는 곳이 여기인 지 휘둘러 보았다. 염치없게 말이다. 이런 몰염치. 눈꼽을 뗀 이보는 몰염치하게 숲에 기억을 잊고서 순간 방향을 틀어 급하게 몇 주 전의 낭독회가 떠올랐다. 이보는 코트 주머니 속에 수첩을 꺼내들고 0.7밀리미터 굵기의 볼펜을 들어 제 목소리를 거침없이 긁적인다. 어딘가 많이도 간지러웠던 모양이었다. 긁적.
축제의 평론가나 심사위원들은 모두들 아이를 낳아보지도 키워보지도 않은 채로 이럴 거야 하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 그 생각을 인정해야겠지만 아쉽게도 동의 할 수는 없군요. 안목이 있다는 사람들의 잘못된 확신에 어떻게 박수를 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동물과 사람이 동격화 되는 세상이어서 그걸 인정해야 인간이 되는 거라면 나는 그저 동물이 되고 말겠습니다. 진실은 아닌 어떤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상상도 상징도 되지못할 것임에도 실재라고 실체라고 강요당하는 기분입니다. 감히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본 것처럼 가장하는 일에 동의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일을 겪어보아야 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식이 아닙니다. 결정적 순간에 빠져있는 사소한 조심스러움이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동의를 표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점이 비록 서사적 기능에 의해 납득되거나 수긍되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사람들이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해도 나는 그럴 수가 없으니 유감일 수밖에 없군요.
이보는 항소 이유서와 같은 이 항변서를 쓰면 쓸수록 열이 났다. 주체하기 힘들만큼 펜을 꼭 쥐고 수첩이 갈라지도록 눌러 쓰며 어금니를 깨물지만 이런 항변이란 심판의 판정에 의심을 품은 패자의 변명일 뿐, 하등 쓰임이란 게 있지는 않다는 걸 이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헌데 어느 재판, 무슨 기능 올림픽에서 판정 시비라도 있었단 말인가?
커피는 식었고 졸음은 달아나고 어금니는 아팠다. 이보는 볼펜으로 방금 썼던 글을 휙휙 가로저었다. 갑자기 생각이 드는대로 줄줄 써지는 볼펜이 원망스러워진 이보는 쥐고 있던 펜을 수첩위에 동댕이쳤다. 볼펜은 수첩을 튕겨 바닥에 큰 소리를 내며 철퍼덕 쓰러졌고 주우~욱하며 미끄러지기까지 했다.
얼마 전 이보의 소설은 문학축제에 경쟁부문에 선정되어 일련의 낭독회를 마친 일이 있었고 그 결과로 우승자에게는 약간의 상금과 특전이 부상으로 수여되었는데 이보의 첫 소설도 경선에 올랐었다. 물론 위의 항변서 내용으로 보아 결과는 그저 빈손이었다만. 어쩌면이항변서는 그저 옹졸한 연애에서 오는 잔인한 질투였던 거겠다.
이보는 서둘러 볼펜에게 미안한 얼굴을 해가지고서 달려가 볼펜을 안아 올렸다. 그리고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해보았다. 미안하다. 너에 잘못이 아님에도 내 너를 탓하고 있었고나. 볼펜은 삐친 듯 말이 없었지만 볼펜만은 자신의 심정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이보는 펜에게 달라붙은 먼지를 털어내었다. 사실 이보는 뻔뻔하게도 낭독회의 소설들 중에는 역시 자신의 소설이 제일 좋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내심 수상을 기대했었고 바랬다. 결과가 다르게 나오자 이보는 벌게진 얼굴로 씩씩대며 시상식장 근처의 초등학교 앞 게임장에서 두더지를 후려쳤다. 두더지는 무죄였다만 이보는 누군가의 수상이 수상하게도 부러웠던 것이고 카드빚이 수상쩍게 걱정스러웠던 것이고 단행본으로 출판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불안을 수상하게 여기며 두려웠던 거라고, 그러면서 여전히 투정을 피우는 거라고 누구도 보지못할 작은 수첩 끝에 보이지도 않게 작은 글씨로 끄적였었다.
아유! 쪽팔리게 왜 이러니. 고팠던 배가 조금 불러왔고 이보는 일어서고 싶었지만 다시 앉고 싶어져서 일어서기도 전에 다시 앉기로 했다. 이보는 두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인 채로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 으으 부러워.
“어머 작가님?”
이보는 너무 깜짝 놀라서 짧은 비명을 뱉을 수 밖에 없었다. 이보의 얼굴 위로 낯익은 여인이 이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종이가지라는 출판사의 기획 팀장이었다.
“작가님 너무 놀라신다. 뭐 하세요, 혼자...오셨어요?”
“아 팀장님. 나 들켰나?”
“예? 뭘요?”
“......혼자 온 거.”
“하하하. 여전하시네요. 여기 앉아도 되죠? 나두 혼자거든요.”
성향은 다르고 상황이 비슷한 사람과의 동행은 약간 위험한 취향의 시작인 듯하다. 이보와 C팀장은 먼데리아의 새우버거를 먹었고 커피를 마신 다음 길 밖으로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어설픈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이보는 아무 까닭 없이 C의 팔짱을 끼고 싶어져서 무심코 그렇게 했다.
“저기 좀 추워서 그러는데 팔 좀 빌립시다.”
“네?"
이보는 C팀장의 대답이 물음표로 끝나기도 전에 팔장을 끼웠다.
“C팀장, 나 저녁에 약속이 있는데 우리 그 전까지 낮술이나 해보면 어떻겠소?”
"호호, 좋아요 헌데,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아요.”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듬전에 막걸리 한 주전자는 다 합해도 이만 원이 넘지 않는다. 접시위에 가득한 모듬전을 보며 이보는 새우버거 탓에 무척이나 부른 배가 내심 안심이 되어 안심을 해보았다. 덕분에 방심이 생겨 찌그러진 양은 탁배기를 가리키다가 ‘이거 나 닮지 않았소?’ 라고 말해버렸다. 낮술은 금방 취하는 법.
“다음 작품은 어떤 거예요? 아까 보니까 쓰고 계신 거 같은데?”
항상 늘 여전히, 다음이 문제다.
이보는 C와 낮술을 먹자고 하면서부터 이미 질문을 뽑아놓고 있기는 했지만 문득 찌그러진 탁배기 위로 쏟아져버린 이 순간의 질문에 속수무책이었다. 솔직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언제나 다음이, 타이밍이, 솔직함이 문제였다. 그러고 보면 문제는 자꾸만 늘어나는 것만 같다. 이보는 쭈뼛거리며 아니 뭐 쓰기 시작한 거는 아니구 하다가 말머리를 돌리기로 했다.
“요즘 소설계는 어때요? 뭐 경향이랄까 작가들의 관심사랄까.”
헌데 이보가 애써 고개를 들어 C를 보았을 때 이보는 조금 놀라버렸다. 갑자기 그녀의 목이 훤히 드러나 있어서 꼭 C의 벗은 몸을 보아버린 듯이 이보는 당황했다. 뭐지? 우아하게 계단을 오르던 Y대학의 누구처럼 목도리를 푸는 C는 요즘 출간되는 한국소설의 경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이보는 대체 그녀의 목이 왜 눈에 들었는지, 왜 저렇게 희고 긴 지를 탐색하며 서둘러 눈길을 모듬전으로 떨구었다. 그러한 목격이, 목도가 부끄러웠나? 친절한 C의 입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경향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근데,
목이 참 희다. ......길고.”
이런, 이보는 또 뭐하자는 말을 해버린 것이냐.
“저기 나 목 한번 만져 봐도 되나?”
이보는 걸어 나가서는 안 되는 낭떠러지를 향해 자꾸만 한걸음씩 나가고 있었다.
건배.
두 사람은 소리 내어 웃으며 찌그러진 탁주잔을 살짝 부딪쳤다. 소리 없이 잔속에서 막걸리만 출렁였고 이보는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목이 마를 때는 물을 마셔야하는 법을 이보는 미처 몰랐을 지도 모른다.
“별로 재미없어요. 다들 말 뿐이야. 뭔가 강력한 게 없어.”
“강력한?”
“터질 듯이 팽창만 하다가 스르륵 사그라져 버리는 거 같아요.”
“아! 이런.”
“시시해.”
“그러니까 안으로 쑤욱 들어가야 해. 외부에서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죠?”
“그죠. 손에 쥔 게 바늘이건 망치건. 결국 경계란 건 얇은 것일 뿐인데. 뚫어야지.”
“뻥!”
“뻥이던 구라던 뚫어야 산다구. 적어도 시도는 해야지.”
“아무도 허물지 않아요. 다들 구름 뒤에 숨어 버렸어.”
“모두 숨어서 은밀하게?”
“은둔하고 내숭을 까는 건가?”
“그게 아닐 때는 겉핥기만 하고 있는 거 같아 보여. 고리타분하고 지리멸렬한 자극들만 남아서.... 얕아요.”
“얇기도 하고.”
“헌데 불투명해요. 철저하게.”
“들어갈 수가 없고 보이지도 않는데.”
“얕아.”
“얇기도 하고.”
“그걸 쿨이라고 하나.”
“꿀도 못될 쿨은 무슨 개뿔.”
“초토(焦土)예요.”
“남는 건 없나? 그래도 아무리 사막이 말라도 삐쩍 마른 새끼 코끼리라도 뭐 없나?”
“환경과 기부?”
“시체 냄새가 나는구먼.”
“앞 일은 알 수 없으니까.”
“인간이 줄어야 돼. 인간이 줄어들면 모든 게 나아 질 거야.”
“헌데 비극은 이미 낮은 데서부터 시작하는 걸요.”
“도시부터 시작해야지. 저출산(抵出産) 해야 해. 아니지, 무산(無産)해야지. 한계에 온 거는 모두들 아는 일이잖아.”
“조금 억지스러운데.”
“그보다 훨씬 억지스러운 일들이 여러 군데서 꾸준히 망치고 있는 건 어쩌구요.”
“비약이 심하고.”
“네. 세상은 마임을 하고 있는 일군에 사람들을 보고 그 놀이에 동의를 표하고 있는 거에요. 모든 객관적 가치라는 건 순전히 뻥이고 그 무언극(無言劇)을 하는 사람들이 공모하고 구경꾼들이 합의한 거라고요.”
“그렇기는 해도.”
“잠깐!”
“......”
“아니라고만 하지 말아줘.”
이보는 해줘와 하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런 말들은 어느새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고 이보는 사라질 말들을 걱정했다. 그것은 이보 안에서 생겨난 말이었음에도 그저 이보의 입 밖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그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 다고 이보는 아직 입 밖에 나오지 못한 그 안에 말들이 사라지는 소리를 지긋한 비명과 함께 듣고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 이보 안에서 증언하고 있는 거라고 이보는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무엇을 해주고 무엇을 한다는 건지 이미 이보는 헷갈려버렸고 흔들리는 막걸리집의 문고리를 보며 방금 나가버린 것이 유령이었는지 도형기 선배였는지를 떠올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 해줘와 하자는 발 앞 꿈치 같은 끄트머리만 남아버려 이보는 계단을 올라가는 도선배의 발걸음이 남긴 이명(耳鳴)에 다시금 이가 아파왔다. 이보의 이는 많이도 상해 있는 것이었다. 상한 이가 이상한 건지 이상한 이가 상한 건지. 도 선배의 발걸음이 이를 아프게 하는 건지. 어쨌든 유통기한은 이미 지나버린 게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아니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가능은 남을 수 있다. 말이 막거리가 되는.
술잔은 다시 채워졌고 다시 비워진다. 술잔 속에 술은 원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보와 C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술은 없어지고 모듬전은 지워지고 지갑안의 이만 원은 사라지고 취기만 유령처럼 남아버릴 지도 모른다고 이보는 C안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술과 잔혹한 입을 보며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할 수 없는 꿈을, 떠올릴 수 없는 그 모든 아쉬움을 아쉬워 해보았다. 물론 그것도 잠시겠지만 말이다. 컹! 어디서 개가 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