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관계에 대하여,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누군가 성급하게 다가오면, 나는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며 몸을 움츠린다. 좀만 친절하게 굴었을 뿐인데 훅 들어오려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날이 선다. 아직 익지 않은 감을 서둘러 따려는 손길이 불편한 것처럼.
천천히, 세련되게. 배려심 있고 깊은 사람이 좋다.
가을 하늘이 높고 깊듯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색을 바꿔가는 단풍처럼. 하루아침에 붉어지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자기만의 속도로 물들어가는 사람. 상대의 계절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더 이상 어린애같이 자기 마음만 앞세우는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다. 여름의 소나기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감정,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열정. 그런 것들에 이제는 지쳤다. 나는 가을비가 좋다. 조용히, 오래, 깊숙이 스며드는.
지속 가능한 관계는 감정이 앞세운 게 아니라, 계속 볼 가치가 있는 관계니까.
벚꽃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일주일 만에 진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천천히 노랗게 물들어 가을 내내 우리 곁에 머문다. 감정의 벚꽃은 아름답지만 짧다. 나는 이제 은행나무 같은 관계를 원한다. 천천히 익어가고, 오래 머물고, 깊은 뿌리를 내리는.
그래서 어려운 것 같다.
세상은 빠른 계절을 원한다. 즉석에서 피고 지는 꽃, 빨리 익는 과일, 당장의 온기.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진짜 깊은 관계는 한여름의 열기가 아니라 가을의 여운처럼 천천히 쌓인다는 것을. 서리를 맞아도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처럼,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들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더 이상 급한 여름날의 소나기 같은 관계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 천천히 물들고, 깊이 스며들고, 서로의 계절을 존중하며 함께 익어가는 관계.
가을 햇살 아래 차분히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듯. 그렇게 여유롭고 깊은 온기. 그게 지금 내가 찾는 ‘건강한 관계’다.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순간처럼. 나는 그런 관계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