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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시간을 건너온 다리

by inarose




어떤 날들은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버거웠다. 세상이 흐릿한 회색으로 물들고, 나라는 사람이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던 시간들. 그 시절, 나는 아주 작고 단순한 것들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일단, 잠을 잤다. 충분히. 카페인에 취약한 몸이라면 커피는 멀리하고, 자고 싶은 만큼 시간을 내어 잤다. 죄책감 없이,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지금 네게 가장 필요한 건 쉬는 거야”라고.



그리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이 어깨를 타고 흐르는 동안, 향기로운 바디클렌저의 향을 천천히 느꼈다. 물은 참 신기하다. 씻겨내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하루의 무게를, 마음의 먼지를.


공간


청소를 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에 엉킨 머리카락을 치웠다. 가장 중요한 것들부터, 천천히. 어질러진 방은 어질러진 마음을 닮아있었다. 공간을 정돈하니, 마음도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했다.


침구를 정리했다. 내가 매일 잠드는 곳을 성전처럼 여기며,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로 이불을 빨았다. 보드라운 이불 속에 누울 때, “나는 이런 부드러움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속삭였다.


가장 편안하고 마음에 드는 츄리닝을 준비했다. 새로 구입하거나, 잘 빨아서. 나를 조르지 않는 옷, 나를 편안하게 감싸주는 옷.


걷기

밖으로 나갔다. 음악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하늘을 보고, 이왕이면 예쁜 공원으로 향했다. 꽃을 보고, 네잎클로버를 찾아보기도 했다.


처음엔 하루 3000보부터 시작했다. 조금씩 늘려가며, 어느새 만 보 걷기가 생활이 되었다. 걷는다는 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의 가장 단순한 형태였다.


필사


기억에 남는 예쁜 글귀를 손으로 따라 썼다. 필사. 가장 단순하고 오래된 방법. 직접 쓰는 손글씨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해주었다. 글귀를 마음에 새겨 넣는다는 느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다림질


다림질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자주 입는 셔츠를 다렸다. 구겨진 옷이 펴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이런 행동들은 앉아서 명상하는 일보다 개인적으로 몰입하기에 좋았다.


작은생명


집에 꽂아둘 한두 송이의 생화를 샀다. 살아있는 생화는 향기도 좋고, 생화를 다듬고 물에 담그는 과정 자체가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이 되었다. 시들어가는 꽃잎을 정리하며, 나 역시 떨어져야 할 것들을 조금씩 놓아주었다.



마그네슘을 먹었다. 스트레스 완화에 좋고, 실제로 숙면에 도움이 된다. 특히 월경을 하는 여성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여유가 될 때는 샐러리를 갈아 마셨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간을 내어 디톡스를 했다. 몸이 가벼워지면, 마음도 조금 덜 무거워졌다.


스스로의 부모되기


우리는 스무 살이 넘으면 성인이 된다고 배운다. 하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개체로서 스스로의 부모가 되어주어야 한다.


별일 아닌 것 같은 이런 사소한 습관들이, 가장 어지럽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기의 나에게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되어주었다.


우울은 터널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고, 어둡고, 숨이 막혔다. 하지만 이 작은 것들이 터널 안에서 켠 작은 불빛이 되어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그렇게 더듬더듬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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