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가 아니라, 살아가기
어느 순간부터 선택 앞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이게 살아남기인가, 살아가기인가?
새로운 일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만들어보고 반복하는 기간이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속도는 빨라지고 눈에 보이는 것들도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과정들이 우리를 더 고민 속으로 끌어당긴다. 빨라질수록,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자꾸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불필요한 것의 제거"라는 압박 속에 있었다. 남들보다 먼저, 더 많이, 더 빠르게. 그 강박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성공이라고 배웠던 것 같다. 효율성이 곧 능력이고, 빠름이 곧 우수함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깊이 박혀 있었는지 그제야 알 수 있다.
AI 도구를 처음 접했을 때 그 매력은 정확히 그것이었다. 여러 개의 두뇌들이 함께 생각해주고, 복잡하게 생각했던 이미지들을 구조화된 형태로 도와준다. 신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더 빨라진다. 더 많은 것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더 빨리, 더 많이 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빨라지는 것이, 정말로 우리를 살게 하는 걸까?
그 순간, 무언가가 변한다.
속도에 쫓겨 내린 급한 판단들을 돌아보면, 그 대부분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리해서 따라잡으려던 프로젝트, 무작정 따라 하던 새로운 기술, 깊이 없이 선택한 기회들. 그 모든 것이 실패했고, 더 피곤하게 만들었고,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급하게 결정한 것들은 결국 더 큰 손실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걸 알고 나니 두렵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오히려 우리를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것. 빨리 살아남으려는 선택이 결국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 중에는 사람과의 연결, 깊이 있는 생각, 작은 것들을 즐기는 여유도 있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꾸만 사라진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는 순간이 온다. 현재를 유지하면서 나만의 속도로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이 벌고 더 빨리 성공하는 길로 갈 것인가. 이 선택 앞에서 처음으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전이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5년 뒤, 10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그때 가장 소중한 것은 뭘까?
그 답은 명확하다. 돈도, 직함도 아니다. 하는 일이 가치관과 일치하는 것,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 마음 맞는 사람들과 진실하고 따뜻하고 가치 있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어떤 선택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것.
그렇게 현재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다고 느껴진다. 이제 우리는 안다. 살아남기는 최소한을 버티는 것이고, 살아가기는 그 최소한을 넘어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의미를 찾는 것이 더 오래 버티게 하고, 더 큰 성공을 불러온다는 것을.
AI가 우리 일을 더 빠르게 만들고, 세상이 더 효율을 요구할수록, 할 수 있는 가장 저항적인 선택은 천천히 생각하는 것이 된다. 나만의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된다.
모든 선택 앞에서 이런 질문들을 해본다. 이 선택이 시간의 가치를 높이는가? 1년 뒤에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이것을 위해 포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이것이 우리를 더 우리 같게 만드는가?
그리고 급할 때일수록, 잠시 멈춘다. 하루를 더 기다린다. 밤을 새우지 않는다. 조급함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천천히 선택할 때 결과가 훨씬 좋다. 실패도 적고, 후회도 적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 선택들 안에 더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렇게 살아가기를 선택한 미래의 모습은 그때가 되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것이 최고의 그림이길 기대한다.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의 모습을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모든 일은 지나야,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므로.
빨라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천천히 질문을 던져보는 것.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이 길을 생각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