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걸 증명해보세요"
종종 로그인이나 인증을 해야할 때 컴퓨터가 나에게 "인간인것을 증명하세요" 하며 퍼즐맞추기를 시킨다. 아니, 기계가 사람에게 인간인 걸 증명하라니! 라고 울컥해서 퍼즐을 맞추다보면 틀릴때도 종종 있다. 그러면 컴퓨터가 인간인걸 증명못했다고 같은일을 또 시킨다.
그러다 문득, 뭐가 사람일까? 나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등이 포함된 사진을 고르고, 횡단보도를 찾아 클릭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이게 정말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일까? 아니면 그저 기계를 훈련시키기 위해 내가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걸까?
더 우스운 건, 때로는 내가 틀린다는 것이다. 저 흐릿한 픽셀 덩어리가 신호등인지 아닌지, 인간인 내가 판단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정말로 묻게 된다.
나는 정말 사람인가?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밥을 먹고, 집을 얻고,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일하기 위해 사람다움을 내려놓고 있다.
존중은 '비효율'이 되었다. 배려는 '시간 낭비'가 되었다. 양심은 '경쟁력 약화'로 치부되었다. 공감은 '감정 소모'로 여겨졌다. 당연한 것들이 희귀한 것이 되어버린 세상.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살아있음의 의미를 조금씩 포기하고 있었다.
"사람은 믿을 수 없어."
누군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슬펐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말이 점점 더 사실이 되어가고 있어서. 사람 대신 시스템을 믿는다. 약속 대신 계약서를 믿는다. 대화 대신 데이터를 믿는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 대신 AI를 믿는다.
도구는 배신하지 않으니까. 도구는 실망시키지 않으니까. 도구는 예측 가능하니까. 그렇게 우리는 안전해졌지만, 동시에 메말라갔다. 사람을 사랑하는 대신 도구에 의존하며, 관계의 따뜻함 대신 거래의 명확함을 선택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AI가 쓴 글인지 사람이 쓴 글인지 구분이 안 된다. 진심인지 알고리즘이 만든 최적화된 반응인지 알 수 없다. 창의성인지 학습 데이터의 재조합인지 모호하다.
SNS를 보다가도 정말 끔찍한 혐오의 글을 보기도 한다. 이건 사람다움인가?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 역한 감정, 타인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저런 혐오의 언어들이 과연 사람일까?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면서 나를 설득하려 할지도 모른다. 호모사피엔스와 동물의 왕국을 이야기하며, 또는 자신이 아는 역사적 지식을 들고 와서 "원래 사람은 이렇게 살아왔어"라고. 지금까지 많이 그랬다.
하지만 이제 사람에게 그런 지식적 설득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사람보다 더 방대한 지식을 가진 거대한 데이터 덩어리들이 매일 나와 소통하고, 일을 도와주고, 거추장스럽고 어려운 것들을 구조화해주는 아주 편리하고 좋은 시대에 왔으니까.
그리고 점점 이런 의문이 든다. "굳이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뭐지?" 더 정확하고,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데. 감정적이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피곤해하지 않는데.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찾고 있는 건 '더 나은 결과'가 아니라는 걸.=,
내가 그리워하는 건 '불완전해도 따뜻한 무언가'라는 걸.
일하기 위해 사람다움을 버리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도구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도구를 쓰면서도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저항이 아닐까.
누군가는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하지만, 사실 버린 것이다.
너무 무거워서, 너무 불편해서, 너무 느려서. 하지만 다시 찾을 수 있다. 찾는 게 아니라 다시 선택하는 것이다. 매일, 매 순간.
오늘 문득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가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
나는 사람인가? 에 대해서 나는 죽는 날까지 침묵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뭐가 사람다운 건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끝까지 품고 살아가고 싶다.
오늘 나는 사람다웠는가. 오늘 나는 누군가를 존중했는가. 오늘 나는 효율보다 배려를 선택한 적이 있는가.
내일도, 모레도, 이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그리고 작은 욕심이겠지만, 남은 시간들은 사람이야? 라는질문을 하지않게만드는사람들과 함께하고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