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거울
히말라야 성역, 동굴 깊은 곳
거대한 만다라 앞에 선 세 사람은 숨을 멈췄다.
백두산 성역의 만다라보다 훨씬 복잡하고 아름다웠다. 지름이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고, 그 문양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덴진님의 두 번째 만다라인가요?"
강설이 경외감에 젖어 물었다.
"그래. 깨달음의 만다라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할머니나 텐진 라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세 사람이 뒤를 돌아보니, 덴진이 서 있었다.
"덴진님!"
"환영이 아니야."
덴진이 미소지었다.
"이곳은 성역의 핵심이야. 내 의식의 일부가 1000년간 머물고 있는 곳이지."
"그럼 진짜로 만나는 건가요?"
"반은 진짜고, 반은 환영이지. 중요한 건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야."
덴진이 만다라를 가리켰다.
"이 만다라는 특별해.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거든."
"마음을 비춘다고요?"
"그래.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장 후회하는 것,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을 모두 보여줘."
린이 긴장했다.
"그럼 우리가 봤던 환영들은..."
"시작에 불과해.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야."
덴진이 강설에게 다가왔다.
"준비됐니?"
"무서워요."
강설이 솔직하게 말했다.
"제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괜찮아.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거야."
덴진이 강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중요한 건 그것을 받아들이는 용기지."
만다라 속으로
강설이 만다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세상이 변했다.
그녀는 기숙사 방에 서 있었다. 유진이 침대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유진아?"
강설이 다가가려 했지만, 유진이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 거짓말쟁이!"
"뭐라고?"
"넌 날 친구라고 했잖아! 하지만 계속 거짓말만 했어!"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디 가는지, 뭘 하는지,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어!"
강설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미안해... 하지만 말할 수 없었어..."
"왜? 나를 믿지 못했던 거야?"
유진이 일어서서 강설에게 다가왔다.
"아니면 나는 네 비밀을 나눌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어?"
"그게 아니야!"
강설이 소리쳤다.
"널 지키고 싶었어!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그건 네 판단이잖아. 내 판단이 아니고."
유진이 차갑게 말했다.
"진짜 친구라면 내가 선택하게 했어야지."
강설이 할 말을 잃었다. 유진의 말이 맞았다.
"이게... 제 두려움이구나."
강설이 깨달았다.
"친구를 잃는 것. 거짓말 때문에."
그 순간 환영이 사라졌다.
린의 시험
린은 피겨스케이팅 링크에 서 있었다.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지만, 심판석에는 세 명의 심판이 앉아 있었다.
"린 선수, 마지막 점프를 시작하세요."
심판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린이 링크를 돌기 시작했다. 트리플 악셀을 준비하는 동작이었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어.'
하지만 점프하는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링크에 쓰러지며 넘어졌다.
"역시 실패군요."
심판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린 선수는 항상 결정적 순간에 실패하죠."
"아니야!"
린이 일어서며 외쳤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정말요?"
두 번째 심판이 물었다.
"3년 전에도 똑같이 말했죠. 하지만 결과는?"
심판석에 거대한 화면이 나타났다. 3년 전 전국대회에서 넘어지는 린의 모습이 반복 재생됐다.
"그때도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했어요."
세 번째 심판이 말했다.
"인정하세요. 당신은 실패자예요."
린의 무릎이 꺾였다. 그 말이 너무 아팠다.
"맞아... 나는 실패자야..."
하지만 그때 강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넌 실패자가 아니야!"
린이 고개를 들었다. 강설이 링크 옆에 서 있었다.
"한 번 넘어진다고 실패자가 되는 건 아니야. 다시 일어서지 않을 때 실패자가 되는 거지."
강설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넌 지금 일어서려고 하고 있잖아."
린이 강설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고마워, 설아."
환영이 사라지면서 린은 깨달았다.
"내 두려움은... 다시 실패하는 것이었구나."
무극의 시험
무극은 폐허가 된 마을에 서 있었다.
그가 100년 동안 파괴한 수많은 장소들 중 하나였다.
"이게 다 내가 한 거야..."
무극이 무너진 건물들을 바라봤다.
갑자기 마을 사람들의 환영이 나타났다. 모두 무극을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당신 때문에 우리 가족이 죽었어!"
"괴물! 악마!"
"용서받을 수 없어!"
무극이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한 노인이 다가왔다.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아!"
"알아... 알아!"
무극이 고통스럽게 외쳤다.
"나도 알아!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럼 죽어."
노인이 차갑게 말했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야."
무극이 손을 떨었다. 정말로 죽어야 하는 걸까?
그때 강설과 린이 나타났다.
"아니야!"
강설이 외쳤다.
"죽는 게 속죄가 아니야. 살아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진짜 속죄야!"
"하지만 나는..."
"과거는 바꿀 수 없어."
린이 말했다.
"하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어. 우리와 함께."
무극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나 같은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용서가 아니야."
강설이 무극의 손을 잡았다.
"새로운 시작이야."
환영들이 사라지면서, 마을도 사라졌다.
"내 두려움은...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었구나."
무극이 깨달았다.
만다라 중심부
세 사람이 다시 만났다. 각자의 시험을 통과한 후였다.
"다들... 괜찮아?"
강설이 물었다.
"힘들었어. 하지만 이겨냈어."
린이 대답했다.
"너희 덕분에."
무극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였으면 불가능했을 거야."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때 덴진이 나타났다.
"잘했어. 모두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했구나."
"이게 시험이었나요?"
"맞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험은 남았어."
덴진이 만다라 중심을 가리켰다.
거기에 거대한 거울이 떠 있었다.
"저게 뭐예요?"
"마음의 거울이야. 네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지."
"진짜 모습이요?"
"그래. 네가 생각하는 너 자신이 아니라, 진짜 네 본질을 보여줘."
강설이 거울에 다가갔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놀라웠다. 강설의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덴진의 모습이기도 했다. 두 영혼이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보였다.
"이게... 진짜 나인가요?"
"그래. 너는 강설이면서 동시에 덴진이야."
덴진이 설명했다.
"두 영혼이 완전히 융합된 거지."
"그럼 저는 누구예요? 강설이에요, 덴진이에요?"
"둘 다야. 그리고 그 어느 쪽도 아니야."
덴진이 미소지었다.
"너는 새로운 존재야. 과거와 현재가 만나 만들어진 독특한 영혼이지."
강설이 거울을 보며 깨달았다.
"그래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구나. 제 안에 이미 과거와 현재의 조화가 있었으니까."
"정확해."
덴진이 박수를 쳤다.
"이제 진짜 프로스트 만다라를 쓸 준비가 됐어."
거울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이 강설을 감싸며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히말라야의 기억을 받아라."
덴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설의 몸이 빛으로 가득 찼다. 1000년 전 덴진이 이곳에서 얻은 모든 깨달음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30분 후, 동굴 밖
"성공했어!"
할머니가 세 사람을 반겼다.
"두 번째 성역 완료구나!"
"힘들었지만... 많은 걸 배웠어요."
강설이 말했다.
"특히 저 자신에 대해서요."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텐진 라마가 미소지었다.
"자신을 이해해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지."
"이제 다음은 어디로 가나요?"
린이 물었다.
"알래스카의 데날리야."
할머니가 대답했다.
"거기는 자연의 힘을 다루는 법을 배울 거야."
"자연의 힘이요?"
"그래. 지금까지는 마음과 감정을 다뤘다면, 이제는 자연 그 자체와 교감하는 거지."
강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지면서 히말라야 산맥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아름다워요."
"그래. 그리고 너도 이제 그 아름다움의 일부가 됐어."
무극이 말했다.
"프로스트 만다라의 진정한 계승자로서."
그날 밤, 산장
"오늘 정말 힘든 하루였어."
강설이 침낭에 누워 중얼거렸다.
"하지만 뿌듯해요."
"나도."
린이 옆 침낭에서 대답했다.
"나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어."
"린은... 실패가 두려웠구나."
"응. 다시는 피겨스케이팅을 못할까 봐 무서웠어."
린이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알겠어.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왜요?"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그리고..."
린이 강설을 바라봤다.
"너 같은 친구가 있으니까."
강설의 가슴이 따뜻해졌다.
"저도요. 린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창밖으로 히말라야의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같은 시간, 남자들 방
"무극, 괜찮아?"
할머니가 물었다.
"네. 힘들었지만...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무극이 대답했다.
"100년간 피해왔던 죄책감을 드디어 마주했어요."
"그리고?"
"용서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거더라고요."
무극이 미소지었다.
"강설이가 그걸 깨닫게 해줬어요."
"좋은 아이지."
할머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덴진의 환생이지만,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존재야."
"그래서 더 특별한 것 같아요."
무극이 동의했다.
- 13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