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하늘, 다른 온실

여름 , 자라는 것들의 계절

by 시더로즈


— 같은 하늘, 다른 온실


"여름은 가장 많은 것을 주는 계절이지만,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자라고, 모든 것이 타오르고, 모든 것이 지칩니다."



준혁의 여름 — 돌온실


돌이 뜨거워지는 날

칠월이었다.

바깥 세상은 삼십오 도였다. 아스팔트가 녹을 듯 뜨거웠다. 준혁은 회사에서 에어컨 바람 아래 앉아 있었지만, 퇴근길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셔츠가 등에 달라붙었다. 여름은 강했다. 여름은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계절이다.

준혁의 돌온실에도 여름이 왔다.

놀랍게도 돌이 뜨거워졌다. 돌은 열을 오래 간직한다. 바깥의 열기가 지하 주차장을 통과해 돌온실까지 전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전해지자 돌벽 전체가 미지근한 돌솥처럼 달아올랐다.

준혁은 돌온실에 들어가 당황했다. 봄의 온실은 편안했는데, 여름의 온실은 답답했다. 습기가 많아졌다. 겨울에 맺히던 이슬이 여름에는 줄줄 흘러내렸다. 돌벽이 땀을 흘리는 것 같았다.

별이는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봄에 일곱 개였던 작은 버섯들이 여름에는 서른 개가 넘었다. 돌틈마다, 바닥의 이음매마다, 천장 가장자리에도. 돌온실은 이제 어둠이 아니었다. 서른 개의 푸른 불빛이 사방에서 돌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어딘가 불안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자라는 것 같았다. 자기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봄에 녹기 시작한 것이 여름이 되자 통제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회사에서 별일 아닌 일에 짜증이 났고, 집에 와서는 이유 없이 쓸쓸했고, 잠들기 전에는 예전에는 느끼지 않던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십 년 동안 눌러두었던 것들이, 한번 문이 열리자 밀려오고 있었다.

어느 날 준혁은 돌온실에 앉아 울고 있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이유를 몰랐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하루치의 피로, 일주일치의 긴장, 이십 년치의 삼킨 것들이 순서 없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많이 느껴지냐."

준혁이 중얼거렸다.

"전에는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느껴져. 이것도 힘들어."

별이의 갓이 깜빡였다. 주변의 작은 버섯들도 함께 깜빡였다. 마치 준혁의 눈물 리듬에 맞추는 것처럼.

준혁은 처음 알았다. 감정이 없는 것도 힘들고, 감정이 많은 것도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둘 다 겪어본 사람만이 그 사이 어딘가에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땀이 흘렀다. 눈물과 섞였다. 땀도 눈물도 짰다.

돌벽의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려 바닥에 고였다.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준혁은 그 웅덩이에 손을 담갔다. 미지근했다. 이 온도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냥 살아 있는 몸의 온도에.

별이가 웅덩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별이는 봄부터 여름까지 계속 변하고 있었다. 자라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주변 버섯들과 연결되면서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각각의 버섯이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 어쩌면 하나의 생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진 뿌리. 지하에서의 연결.

준혁은 웅덩이에서 손을 빼고, 별이를 보았다.

"너도 한꺼번에 많이 자라면 힘들어?"

별이의 갓이 크게 깜빡였다. 그것이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준혁은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힘들다고.

하지만 자란다고.

준혁은 그 뒤로 돌온실에 머무는 시간을 줄였다. 매일 가던 것을 사흘에 한 번으로. 매번 한 시간씩 있던 것을 삼십 분으로. 너무 오래 있으면 습기에 지쳤다.

대신 돌온실 밖에서 별이를 생각하는 시간을 늘렸다. 회사에서 잠깐, 점심시간에 잠깐, 잠들기 전에 잠깐. 물리적으로 같이 있지 않아도, 의식 속에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새로운 관계의 방식이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준혁은 많이 느꼈고, 많이 지쳤고, 많이 땀을 흘렸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별이도 계속 자랐다. 빠르게, 때로는 너무 빠르게. 하지만 뿌리는 느리게 자랐다. 느린 뿌리가 빠른 가지를 붙잡고 있었다.



지은의 여름 — 유리온실


"다시"의 첫 번째 꽃

유월 말, "다시"의 봉오리가 열렸다.

지은은 그날을 기억한다. 아침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우울하지도 기쁘지도 않은, 어떤 전조 같은 느낌. 출근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했다. 그날은 지은이 네 번째로 아침에 스스로 일어난 날이었다. 알람 한 번에.

퇴근하고 유리온실에 갔을 때 — 꽃이 피어 있었다.

지은은 화분 앞에 주저앉았다.

꽃의 색은 회색이었다.

다양한 회색. 연한 회색에서 짙은 회색까지, 일곱 장의 꽃잎이 모두 다른 톤의 회색이었다. 지은은 화려한 색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색이긴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색이라니.

처음에 지은은 실망했다. 꽃이 회색이라는 것이 자기 인생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화려하지 못하고, 선명하지 못하고, 그저 흐릿한.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자 회색이 아름다웠다.

비 오는 날의 하늘 색. 안개 낀 아침의 나무 색. 오래된 흑백 사진의 색. 세상에는 회색의 수만큼 이름 붙지 않은 감정들이 있었다. 완벽히 슬프지도 완벽히 기쁘지도 않은 중간의 것들. 무기력과 건강함 사이의 긴 스펙트럼.

지은의 회색은 지은이 지나온 시간의 색이었다.

새카맣게 무기력했던 날들도 있었고, 하얗게 빛났던 순간들도 있었고, 그 사이의 수많은 회색들이 있었다. 그 모든 회색이 "다시"의 꽃잎에 담겨 있었다.

"너는 내 색이네."

지은이 말했다.

"다시"의 꽃잎이 바람 없이 흔들렸다.

여름의 유리온실은 초록으로 가득 찼다.

"다시"의 줄기가 화분 밖으로 뻗어나가 바닥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탁한 초록이 선명한 초록으로 변했다. 넉넉한 양분이 없어서 탁했던 것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자라지 못해서 탁했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색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지은에게도 시간이 가져다준 것이 있었다.

지은은 요즘 혼자 영화를 본다. 좋아하는 영화를 고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랫동안 지은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무기력 속에서는 선호가 지워진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은은 그 에너지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혼자 영화관에서 나와, 맥주 한 캔을 사서 강변에 앉았다. 강에 노을이 비쳤다. 회색과 주황이 섞인 하늘이었다. 지은은 그 하늘이 "다시"의 꽃 같다고 생각했다.

"나 회색도 좋아하는구나."

지은이 중얼거렸다.

좋아한다는 감각. 무기력의 반대편. 봉오리가 피었을 때처럼 기대 이후에 오는 감정. 지은은 그것을 하나씩 다시 배우고 있었다.

그날 밤 유리온실에 갔을 때, "다시"의 꽃 옆에 새 봉오리가 올라와 있었다. 이번 것은 색이 벌써 비쳤다.

노을색이었다.

지은이 강변에서 좋아한 그 색.

"다시"는 지은이 좋아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은이 좋아할 때마다 그것을 기억해서 다음 꽃에 담고 있었다. 지은은 그제야 알았다. 자기를 돌본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음의 여름 — 물온실


가라앉는 법과 떠오르는 법

수련의 꽃이 피었다.

하음이 학원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고 돌아온 저녁이었다. 쉬는 시간에 물온실에 들렀다. 물이 따뜻했다. 여름의 밀물은 초록빛이었다. 물속에 수련의 잎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 잎 중앙에서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분홍이었다. 아주 연한 분홍. 수련의 꽃은 물 위에서 피기에, 꽃잎 끝이 수면에 닿아 있었다. 꽃의 그림자가 물속에 하나 더 있었다. 수면 위의 꽃, 수면 아래의 그림자. 두 개가 하나였다.

하음은 꽃 옆에 앉아 수면을 바라보았다.

"두둥이가 꽃 피웠네."

하음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찍고 싶지 않았다. 옛날이었다면 바로 인스타에 올렸을 것이다. "수련 꽃 피었어요 �" 하며. 하지만 지금은 이 꽃이 자기만의 것이었으면 했다. 물온실을 나간 순간 사라지는,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경험으로.

하음은 이제 안다. 모든 것을 보여주는 삶과, 진짜를 지키는 삶의 차이를.

하지만 여름에는 다른 일도 있었다.

은채와 다시 가까워진 후, 서준이가 이상했다. 예전에는 하음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던 서준이. 하음의 의견을 구하고, 하음과 함께 움직이고. 그런데 하음이 달라지자 서준이가 멀어졌다. 하음이 "나 그거 별로야"라고 말하기 시작하자, 서준이는 불편한 듯 보였다.

하음은 처음에 속이 상했다. 친구를 잃는 것 같았다. 예전의 하음이었다면 서준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게 편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서준이가 멀어졌다.

여름의 썰물이 왔을 때, 물온실 바닥에 새로운 것이 드러나 있었다. 이번에는 글씨가 아니라 빈자리였다. 바닥의 한 구석이 움푹 패어 있었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자리에는 조개껍데기, 유리조각, 동전들이 반짝였는데, 그 자리만 비어 있었다.

하음은 그 빈자리 앞에 앉았다.

누군가가 사라진 자리였다.

서준이였을까. 아니면 다른 누구였을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음이 진짜 자기를 지키기 시작하면서 잃은 사람의 자리였다.

슬펐다.

하음은 그 자리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여름의 물온실에 또 한 번의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이전과 달랐다. 버림받은 슬픔이 아니라 선택의 슬픔.

자기를 지키려면 잃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교환이었지만, 가장 공정한 교환이기도 했다.

수련이 꽃잎 하나를 떨궜다. 물 위에 분홍 꽃잎이 떠 있었다. 수련은 여름에 꽃잎을 하나씩 떨군다. 다 피운 후에. 떨구는 것이 시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하음은 수련에게서 배웠다.

떨어진 꽃잎이 하음의 손바닥 위로 흘러왔다.

물의 흐름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수련이 일부러 보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음은 그 꽃잎을 받아 꼭 쥐었다.

잃는 것이 있어도, 남는 것도 있다.



순임 할머니의 여름 — 나무온실


감나무와 묘목의 대화

할머니는 요즘 몸이 안 좋았다.

무릎이 아팠고, 밤에 잠을 설쳤고, 밥맛이 없었다. 큰아들이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늙으면 다 그런 거라고. 하지만 큰아들이 차를 빼서 기다리자 할머니는 결국 병원에 갔다.

별건 아니었다. 나이든 몸이 여름 더위에 지쳤을 뿐. 영양제 주사를 맞고 약을 몇 가지 받아왔다.

"엄마, 너무 무리하지 마. 쉬엄쉬엄 해."

큰아들이 말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쉬엄쉬엄. 오십 년을 부지런히만 산 할머니에게는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배우는 중이다. 쉬는 법을. 남편이 있을 때는 남편을 돌보느라 자기를 잊었고, 남편이 떠난 뒤에는 슬픔 속에서 자기를 잊었다. 이제는 자기를 돌봐야 할 때라는 것을, 일흔셋에 처음 배우고 있었다.

여름의 나무온실은 울창했다.

묘목은 더 이상 묘목이 아니었다. 할머니 허리 높이로 자라 있었고, 잎이 사방으로 뻗어 작은 나무가 되어 있었다. 줄기의 흉터는 이제 잘 보이지 않았다. 이끼가 덮고, 새 껍질이 덮고, 그 위에 다른 줄기들이 얽혀 흉터를 감싸고 있었다.

나무온실의 벽은 감나무 뿌리였고, 그 뿌리는 살아 있었다. 여름이 되자 감나무도 무성해졌다. 위에서도 잎이 가득하고 아래에서도 잎이 가득했다. 나무온실 안은 초록의 층층이 겹쳐진 숲 같았다.

할머니는 묘목 앞에 — 이제는 작은 나무 앞에 앉았다.

"우리 나무야, 감꽃이 피었어."

지난 봄에 맺혔던 꽃눈이 여름에 피었다. 감꽃을 닮았지만 더 하얗고, 더 작았다. 한 송이가 아니라 여러 송이. 나무 전체에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그중 한 송이에 코를 가까이 댔다. 향기가 있었다. 감꽃 향기와 비슷한데, 그보다 더 부드러웠다. 남편이 좋아하던 비누 냄새 같기도 했다.

"여보, 우리 나무가 당신 닮은 향기야."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나도 닮았어."

남편을 닮고 할머니를 닮은 향기. 오십 년이 섞인 향기.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나무의 꽃.

할머니는 꽃향기를 맡다가 아주 오래간만에 웃었다.

혼자 웃는 법을 할머니는 배우는 중이었다. 남편과 늘 함께 웃었기에, 혼자 웃는 것은 어색했다. 웃는 순간 옆에 웃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선명해져서 오히려 울음이 나왔다.

하지만 나무온실에서는 달랐다. 우리 나무가 있었다. 감나무가 있었다. 남편의 감나무와 할머니의 우리 나무가 뿌리로 이어져 있는 이 공간에서는, 혼자 웃어도 혼자가 아니었다.

여름의 끝자락, 할머니는 우리 나무 옆에 앉아 잠시 졸았다.

무릎이 아파서, 더위에 지쳐서, 그냥 잠깐 눈을 감았는데 깜빡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남편이 있었다. 감나무 아래에 나란히 앉아, 할머니와 함께 우리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응", "그래", "알았어" — 세 마디도 없이. 그냥 옆에 있었다.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할머니는 꿈속에서 말했다.

"여보, 나 경로당에서 화투 치는데 매일 져. 근데 재밌어. 당신이 살아있으면 나 이겼다고 놀렸을 텐데."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살아 있을 때와 같은 온도였다.

할머니가 깨어났을 때 손에는 따뜻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우리 나무의 꽃잎이 할머니 손등 위에 하나 떨어져 있었다. 꽃잎의 온기가 남편의 손의 온기와 같았다.

할머니는 꽃잎을 집어 가슴에 품었다.

"고마워, 여보."

남편에게 한 말이었다. 우리 나무에게 한 말이었다. 둘에게 동시에 한 말이었다.



도윤의 여름 — 거울온실


쓰고 있는 자기를 쓰다

도윤은 첫 번째 글을 완성했다.

단편소설 비슷한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았고,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하지만 끝까지 썼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이야기 하나를. 삼 개월 동안.

완성한 날 도윤은 거울온실에 갔다.

여름의 거울온실은 달라져 있었다. 이끼가 거울 표면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사방의 거울이 이제는 초록 벽에 가까웠다. 반사되는 부분은 줄었지만, 반사되는 곳은 더 선명하게 비쳤다. 이끼 사이로 보이는 도윤의 얼굴은 그림의 일부 같았다.

도윤은 정면 거울 앞에 섰다.

이끼 사이로 얼굴이 보였다. 석 달 전보다 수척했지만, 눈빛이 달랐다.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의 눈.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눈.

"나, 썼어."

도윤이 거울 속의 자기에게 말했다.

거울 속의 도윤이 끄덕였다.

"별로겠지만."

거울 속의 도윤이 웃었다. 그러면 어때, 하는 웃음.

도윤은 바닥에 앉았다. 이끼가 여름의 물기를 먹어 부드럽고 쿨했다. 거울온실의 이끼는 여름이 되자 광택이 났다. 피부 위에 발라둔 보습제처럼.

도윤은 노트북을 열었다. 거울온실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새로운 글. 두 번째 글.

하지만 쓰려고 하자 손이 멈췄다.

첫 번째 글을 쓸 때는 몰랐던 것을 이제는 알았다. 완성한다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완성한 것이 좋을지는 별개다. 도윤은 첫 번째 글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두 번째는 더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자,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도윤은 거울 속의 자기를 보았다. 여러 거울 속에 여러 도윤이 있었다. 어떤 도윤은 쓰려 하고 있었고, 어떤 도윤은 포기하려 하고 있었고, 어떤 도윤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모두 자기였다. 하지만 오늘의 도윤은 어느 거울의 도윤일까.

도윤은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기는 쓰려 하는 자기와 쓰지 못하는 자기 사이에 있었다.

어느 한쪽이 아니었다. 쓰려 하면서도 쓰지 못했다. 쓰지 못하면서도 쓰려 했다. 이 모순이 지금의 도윤이었다.

거울에 글씨를 썼다. 봄에 남긴 글씨 아래에.

나는 쓰려 하고 있고, 동시에 쓰지 못하고 있다. 둘 다 내 모습이다.

쓰고 나서 도윤은 숨을 내쉬었다.

거울 속의 도윤이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모든 거울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의 도윤들이, 모두 같은 숨을 쉬었다.

자기 안의 모순을 글로 쓴 순간, 모순이 조금 가벼워졌다.

정답이 아니라 상태를 기록하는 것. 그것이 도윤이 여름에 배운 것이었다.

초록이가 도윤의 발밑에서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여름의 이끼는 가장 부드럽다.


에필로그 — 다섯 개의 여름

준혁은 많이 느끼는 법을 배웠습니다. 느끼지 못하는 것도, 너무 많이 느끼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라는 것과 지치는 것은 함께 온다는 것도.

지은은 좋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회색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하음은 잃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기를 지키면 잃는 관계가 있다는 것, 하지만 잃어도 남는 것이 있다는 것.

순임 할머니는 혼자 웃는 법을 배웠습니다. 남편 없이도 웃을 수 있지만, 그 웃음 안에 남편이 있다는 것.

도윤은 모순을 배웠습니다. 자기 안에 반대되는 것들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답이 아니라 상태를 기록하는 것이 쓰기라는 것.


여름은 답이 많은 계절이 아닙니다. 여름은 질문이 많은 계절입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자라기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합니다.


여름을 견디면, 가을이 옵니다. 가을은 답의 계절이 아니라, 질문을 정리하는 계절입니다.


다음 계절 — 「가을 · 내려놓는 것들의 계절」

유리온실 · 계절 시리즈 Bloomier Lab · Dear Selly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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