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하늘, 다른 온실

봄 , 녹는 것들의 계절

by 시더로즈

유리온실 계절편


— 같은 하늘, 다른 온실

"계절은 모두에게 온다. 하지만 같은 봄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봄은 시작이고, 누군가에게 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입니다."

봄 · 녹는 것들의 계절



준혁의 봄 — 돌온실


얼음이 물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

삼월이었다.

바깥 세상에서는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출근길 버스 창문 너머로 분홍빛이 스쳐갔다. 회사 동료들이 점심시간에 꽃구경을 가자고 했다. 준혁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웃는 것은 아직 어색했지만, 예전처럼 얼굴 근육만 움직이는 웃음은 아니었다. 입꼬리가 올라갈 때 가슴 안쪽에서도 무언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돌온실에 봄이 온 것은 준혁이 처음으로 버섯에게 이름을 부른 날이었다.

"야"라고만 불렀던 버섯. 준혁은 이름을 짓는 것이 쑥스러웠다. 삼십대 남자가 어둠 속의 버섯에게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하지만 그날 준혁은 후배와 저녁을 먹었다. 프로젝트가 엎어져서 울었던 그 후배. 후배가 소주잔을 들며 말했다.

"형, 그때 회식에서 아무 말 안 했잖아요. 근데 그게 오히려 좋았어요. 억지로 괜찮다고 안 해줘서."

준혁은 멈칫했다.

"형도 울고 싶은 적 있어요?"

준혁은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있지."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후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고, 그 웃음이 준혁의 가슴에 작은 금을 냈다. 아픈 금이 아니라, 열리는 금.

그날 밤 돌온실에 갔을 때 —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예전의 차가운 샘물이 아니었다. 미지근한 물. 돌과 돌 사이에서 오래 갇혀 있다가, 삼월의 바깥 온도에 천천히 녹아 흘러내리는 물. 돌 위의 동토(凍土)가 풀리고 있었다.

돌벽의 표면이 달라져 있었다. 이끼가 끼기 시작한 것이다. 마른 돌 위에 아주 얇은 초록이. 준혁이 석 달째 쉬어온 숨결이 만든 습기가, 마침내 돌을 초록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준혁은 버섯 앞에 앉았다. 버섯은 처음보다 세 배쯤 커져 있었고, 주변에 작은 버섯들이 일곱 개 돋아 있었다. 모두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어둠 속의 작은 도시 같았다.

"별이."

준혁이 말했다.

"너 이름. 별이. 어둠 속에서 빛나니까."

단순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삼십사 년 동안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부드러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별이의 갓이 활짝 열렸다. 푸른빛이 한 톤 더 밝아졌다. 그리고 별이 주변의 작은 버섯들도 일제히 빛을 높였다. 돌온실 전체가 푸른 별빛으로 물들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미지근한 물이 별이의 갓 위에 내려앉았다. 물방울이 푸른빛을 머금어 보석처럼 빛났다.

돌온실에 봄이 왔다.

돌 위의 봄은 화려하지 않았다. 꽃이 피지 않았고, 새가 울지 않았고, 바람이 불지 않았다. 하지만 얼어 있던 것이 녹고, 마른 것이 젖고, 어둠 속에서 빛이 한 톤 밝아지는 것. 그것이 돌의 봄이었다.

준혁은 돌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미지근한 물이 얼굴 위에 한 방울 떨어졌다. 닦지 않았다. 눈물인지 물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둘 다 녹은 것이니까.



지은의 봄 — 유리온실


수돗물에도 봄이 오는가

지은은 요즘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다.

매일은 아니었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 나머지 사흘은 여전히 알람을 세 번 끄고, 천장을 바라보며 "해서 뭘 하지"를 되뇌었다. 하지만 사흘. 석 달 전에는 영(零)이었던 것이 사흘이 되었다. 그것은 숫자 이상의 의미였다.

지은의 유리온실에 봄이 온 것은 — 지은이 처음으로 수돗물이 아닌 것을 가져간 날이었다.

편의점에서 생수를 샀다. 수돗물과 다를 것 없는 물이었지만, "골라서 산 물"이라는 것이 달랐다. 수돗물은 틀면 나오는 것이었고, 생수는 선택한 것이었다. 선택한다는 것은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무기력한 사람에게 선택은 에너지의 지출이었다. 하지만 지은은 그 에너지를 썼다.

"다시"에게 생수를 주었다.

"다시"는 자라 있었다. 탁한 초록의 줄기가 손가락 두 마디 높이로 올라왔고, 잎이 세 장 달려 있었다. 은의 셀리처럼 투명하지 않았다. 탁하고, 두껍고, 조금 거친 잎. 넉넉하지 않은 양분으로 만든 잎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쉽게 찢어지지 않을 잎.

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작고 단단한 봉오리. 색은 아직 알 수 없었다.

지은은 봉오리를 바라보다가 — 처음으로 무언가를 기대했다.

이 봉오리가 피면 어떤 색일까.

기대. 무기력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 미래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감각. 석 달 전의 지은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내일이 오늘의 복사본이었고, 모레가 내일의 복사본이었고, 모든 날이 같은 색의 같은 무게였다. 하지만 지금 지은의 앞에는 아직 색을 모르는 봉오리가 있었다. 내일 그 봉오리가 조금 더 벌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가능성은 미래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날 온실의 이슬빛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유리 천장에 맺힌 이슬이 금빛을 띠기 시작했다. 지은의 내면에 작은 온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지은은 온실 바닥에 앉아, 유리벽 너머를 보았다. 바깥은 봄이었다. 그것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석 달 동안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지은은 모르고 있었다. 무기력 속에서는 계절도 멈춘다.

하지만 온실 안에서 "다시"가 자라는 동안, 바깥에서도 봄이 오고 있었다. 지은이 모르는 사이에. 지은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절을 바꾸고 있었다.

지은은 유리벽에 손을 대보았다. 미지근했다. 바깥의 봄 공기가 유리를 통해 전해졌다.

"바깥도 봄이네."

지은이 말했다. 아무에게도 아닌, "다시"에게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아주 오래간만에 — 바깥에 나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음의 봄 — 물온실


387개의 얼굴이 녹는 계절

하음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1,200명이 보는 하음이 아니라, 하음이 보고 싶은 것만 올리는 계정으로. 첫 번째 게시물은 옥상에서 찍은 하늘 사진이었다. 필터 없이. 캡션 없이. 좋아요가 세 개 왔다. 예전 같으면 불안했을 숫자. 하지만 그 세 개 중 하나가 은채였고, 하음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은채와 다시 만났다.

어색했다. 카페에서 마주 앉아 처음 십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하음이 먼저 분위기를 만들었다. 웃기는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침묵을 채우는 역할.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침묵을 채우지 않았다.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은채가 먼저 말했다.

"너 진짜 달라졌다."

"어떻게?"

"모르겠어. 좀 — 비어 있는 느낌? 나쁜 뜻이 아니라, 뭔가 빠진 느낌인데 그게 오히려 편해."

하음은 웃었다. 387개의 얼굴 중 하나를 골라 쓴 웃음이 아니라, 그냥 나온 웃음.

"나도 뭐가 빠졌는지 모르겠어. 근데 빠지니까 — 나머지가 보여."

물온실에 봄이 왔다.

봄의 밀물은 다른 계절의 밀물과 달랐다. 물이 따뜻했다. 겨울 동안 차갑던 물이 천천히 데워지며 물온실 전체가 미지근한 목욕물 같은 온도가 되었다. 하음은 물속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았다. 따뜻한 물이 어깨 위까지 찼다. 긴장이 풀렸다.

수련의 꽃대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었다. 겨울 동안 물속에서 천천히 자라던 꽃대가 마침내 수면을 뚫고 나온 것이었다. 끝에 봉오리가 매달려 있었다. 물방울 모양의 봉오리.

하음은 봉오리를 바라보았다.

"두둥아, 너 곧 피겠다."

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봉오리가 미세하게 벌어졌다. 꽃잎 끝이 살짝 갈라지며 안쪽 색이 비쳤다. 하음은 그 색을 보려 고개를 숙였지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봄의 썰물이 왔다. 물이 빠지자 바닥이 드러났다.

예전에는 조개껍데기와 유리조각과 동전이 흩어져 있었다. 하음이 잃어버린 것들. 하지만 오늘 바닥에는 새로운 것이 있었다. 바닥의 모래 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글씨.

네가 보고 싶었어.

은채가 보낸 문자의 한 줄이었다. 물온실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음이 진심으로 받은 말. 387개의 얼굴이 아닌 하음에게 온 말.

하음은 그 글씨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모래가 따뜻했다. 봄의 모래.

밀물이 다시 오면 이 글씨는 잠길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바닥에 새겨진 것은 물이 덮어도 남는다.

하음은 알았다. 진심은 그런 것이라는 걸. 물에 잠겨도 남는 것.



순임 할머니의 봄 — 나무온실



감나무 아래, 두 번째 봄

감나무에 새잎이 돋았다.

순임 할머니는 뒷마당에 서서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남편이 심은 감나무. 삼십 년 된 나무. 남편이 떠나고 첫 번째 봄이 지났고, 지금은 두 번째 봄이었다. 작년 봄에는 감나무의 새잎을 보지 못했다. 볼 여유가 없었다. 매일을 겨우 지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보았다. 연두색 잎이 가지 끝에서 반짝이는 것을.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햇볕을 받아 빛나는 것을.

보인다는 것은,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나무온실에도 봄이 왔다.

감나무 아래로 내려가자 묘목이 달라져 있었다. 겨울 동안 앙상했던 가지에 잎이 돋아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잎과는 달랐다. 작년의 잎은 크고 넓고 얇았다. 올해의 잎은 작고 두껍고 진했다. 겨울을 난 나무의 잎은 그렇다. 추위를 아는 잎은 자기를 보호하는 법을 안다.

갈라졌던 줄기도 변해 있었다. 금이 간 자리에 껍질이 새로 덮여 있었다. 매끄럽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흉터 같은 껍질. 하지만 그 흉터 위에서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부드러운 초록이 상처를 덮고 있었다.

나무는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덮는다. 그 위에 새것을 올린다.

할머니는 묘목 앞에 앉아 말했다.

"여보, 나 요즘 경로당에서 화투 치는 거 배웠어."

멈췄다. 남편에게 하는 말인지 묘목에게 하는 말인지, 할머니도 구분하지 않았다.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이 나무의 뿌리는 남편의 감나무와 이어져 있으니까.

"김 할머니가 가르쳐주는데, 내가 맨날 져. 근데 지는 것도 재밌더라고."

할머니가 웃었다.

묘목의 새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나무온실 안에는 바람이 없었는데, 잎이 흔들렸다. 감나무 밖에서 부는 봄바람이, 뿌리를 통해 여기까지 전해진 것이었다.

할머니는 흔들리는 잎을 보며 말했다.

"봄이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올해도 봄이 왔네."

'올해도'라는 말 안에, 작년에는 느끼지 못했던 봄이 들어 있었다. 놓쳤던 봄. 하지만 올해 다시 온 봄. 계절은 한 번 놓쳐도 다음 해에 다시 온다. 그것이 계절의 약속이었다.

할머니는 묘목의 줄기를 쓰다듬었다. 흉터 위의 이끼가 손끝에 부드러웠다.

"우리 나무도 봄이구나."

묘목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새잎 사이에서 꽃눈이 하나 부풀어 올랐다. 나무 셀리의 첫 꽃눈. 감꽃을 닮았지만 더 작고, 더 하얀, 할머니만의 꽃.

할머니는 그것을 보며 기대했다.

작년에는 할 수 없었던 일. 기대하는 일.



도윤의 봄 — 거울온실


거울 속의 도윤이 웃는 계절

도윤은 회사를 그만뒀다.

무모한 결정이었다. 통장 잔고는 넉 달치 월세. 이력서에 쓸 다음 줄은 비어 있었다. 부모님은 걱정했고, 친구들은 "다음 계획은 있어?"라고 물었고, 도윤은 "아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아직"이라는 말이 이전과 달랐다. 예전의 "아직"은 영원히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지금의 "아직"은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도윤이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단순했다. 거울온실에서 깨달은 것 때문이었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남의 회사에서 남이 정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 넥타이를 맨 자기가 있었는데, 그 자기가 자기 같지 않았다는 것.

"싫다"는 감정이 문을 열어준 뒤로, 도윤은 "좋다"도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새벽에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고, 떠오르는 것을 적는 시간. 그것이 도윤의 아침이 되었다. 무엇을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쓰는 동안 거울 속의 도윤이 집중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무표정이 아닌 얼굴.

거울온실에 봄이 왔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거울의 표면이었다. 겨울 동안 뿌옇게 흐려져 있던 거울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전히 투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거울 위에 이끼가 자라면서, 반사와 초록이 섞인 새로운 표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거울이 자기를 있는 그대로 비추되, 그 가장자리를 부드러운 초록이 감싸고 있는 것. 자기를 보되, 그 봄에 상처받지 않는 것. 그것이 거울온실의 봄이었다.

도윤은 정면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도윤이 있었다. 넥타이 없는 도윤. 조금 수척하지만, 눈이 맑은 도윤. 그리고 — 웃고 있는 도윤.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웃고 있다는 것을 도윤은 거울을 보고서야 알았다.

왼쪽 거울을 보았다. 왼쪽의 도윤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정면의 웃음과 달랐다. 조금 수줍은 웃음.

오른쪽 거울. 오른쪽의 도윤은 눈을 감고 웃고 있었다.

천장 거울. 위에서 내려다본 도윤은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고 있었다.

모두 다른 웃음이었다. 하지만 모두 진짜 웃음이었다.

이끼가 거울 모서리에서 빛났다. 도윤의 웃음이 거울에 반사되어 색이 되었고, 그 색이 이끼에 닿아 초록이 한 톤 더 밝아졌다.

도윤은 바닥에 앉았다. 이끼가 다시 부드러웠다. 겨울의 거친 이끼가 봄의 물을 먹어 촉촉해진 것이었다.

"초록아."

도윤이 말했다.

"나, 글을 쓰고 있어."

이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끼는 원래 조용하다. 하지만 온실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답이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자기이든, 부드럽게 감싸고 있겠다는 대답.

도윤은 거울 속의 자기를 보았다. 여러 명의 자기. 다 다른 자기. 하지만 오늘은 모두 같은 것 하나를 공유하고 있었다.

봄.

자기 안에 봄이 있다는 것.

도윤은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거울 위에 글씨를 썼다. 이끼 위에 펜이 닿으면 이끼가 갈라지며 거울 표면이 드러났고, 그 위에 글씨가 새겨졌다.

나는 아직 모르겠지만, 찾고 있다.

거울 속의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봄은 답을 주는 계절이 아니라, 찾기 시작하는 계절이니까.




에필로그 — 다섯 개의 봄


같은 삼월. 같은 바람이 불고, 같은 해가 뜨고, 같은 비가 내리는 삼월.

하지만 다섯 개의 온실에는 다섯 개의 봄이 왔습니다.

준혁의 봄은 녹는 것이었습니다. 이십 년간 얼어 있던 돌이 미지근한 물을 흘리는 것. 버섯에게 이름을 짓는 것.

지은의 봄은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봉오리의 색이 궁금해지는 것. 바깥에 나가보고 싶어지는 것.

하음의 봄은 진심이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물이 빠진 바닥에서 지워지지 않는 글씨를 발견하는 것. 387개가 아닌 하나의 얼굴로 웃는 것.

순임 할머니의 봄은 다시 오는 것이었습니다. 놓쳤던 봄이 올해 또 찾아오는 것. 기대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

도윤의 봄은 찾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답을 모르지만 펜을 드는 것. 거울 속의 자기가 웃고 있다는 걸 아는 것.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닙니다. 봄은 얼어 있던 것이 녹는 계절입니다. 녹는다는 것은 형태를 잃는다는 것이고, 형태를 잃는다는 것은 새로운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 안에서도 무언가 녹고 있다면, 그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봄이 오는 것입니다.


다음 계절 — 「여름 · 자라는 것들의 계절」

유리온실 · 계절 시리즈 Bloomier Lab · Dear Selly

월, 목 연재
이전 15화다섯 번째 온실. 깨진 유리온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