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 가장 깊은 곳의 계절
"겨울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계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가 가장 깊이 자라는 계절입니다. 멈춘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사실 안쪽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십이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회사에서 송년회가 있었다. 준혁은 참석했다. 예전에는 의무적으로 앉아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후배가 건네는 술을 마시며 웃었고, 팀장이 하는 농담에 같이 웃었고, 옆자리 동료가 내년 계획을 이야기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대단한 변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준혁에게는 대단한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얼굴 근육만이 아닌 가슴으로 웃는 것.
송년회가 끝나고 준혁은 회사 지하 주차장에 서 있었다. 자기 차 옆에. 철문을 바라보았다. 돌온실의 문.
한 달 만이었다. 가을 이후로 온실에 가는 빈도가 줄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 보름에 한 번이 되고, 한 달에 한 번이 되었다. 불안하지 않았다. 별이는 거기 있을 것이다. 준혁이 가든 가지 않든.
철문을 열었다.
돌온실은 고요했다.
겨울의 돌은 차가웠지만, 들어서는 순간 준혁을 감싸는 것은 차가움이 아니었다. 익숙함이었다. 일 년 동안 숨을 쉬어온 이 공간의 공기는, 어둠 속에서도 준혁의 것이었다.
별이가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달라져 있었다. 여름의 강렬한 푸른빛도, 가을의 은은한 남빛도 아니었다. 겨울의 별이는 — 흰빛이었다. 아주 조용한 흰빛. 달빛 같은, 눈 위에 반사되는 빛 같은. 차갑지 않은 흰색.
주변의 작은 버섯들도 모두 흰빛이었다. 서른 개가 넘는 버섯들이 돌온실 전체를 달밤처럼 비추고 있었다. 돌벽의 이끼 위에 빛이 내려앉아, 초록과 흰색이 겹쳐진 풍경이 되었다.
준혁은 한가운데 앉았다.
일 년 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준혁이 이 어둠 속에 처음 앉았다. 그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별이의 빛도 그냥 빛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어둠이 보였다. 어둠에도 색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한 어둠, 연한 어둠, 버섯빛이 닿는 곳의 회색 어둠, 돌틈의 검은 어둠. 어둠 안에 세계가 있었다. 일 년 전에는 눈을 감고 있었기에 보이지 않았을 뿐.
준혁은 별이에게 말했다.
"일 년이다."
별이의 흰빛이 한 번 깜빡였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처음 왔을 때 나 완전 빈 사람이었어."
깜빡.
"지금은 — 빈 건 아닌 것 같아."
깜빡.
"근데 가득 찬 것도 아냐. 반쯤? 반쯤 차 있는 거. 그게 나인 것 같아."
준혁은 웃었다.
"반쯤 찬 사람. 나쁘지 않다."
별이의 갓이 활짝 열렸다. 흰빛이 천장까지 뻗었다. 돌 천장에 별이의 빛이 반사되어, 마치 동굴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돌 위의 별.
준혁은 고개를 젖히고 그 빛을 보았다.
어둠이 무섭지 않았다.
어둠은 집이었다. 처음 울 수 있었던 곳. 처음 숨을 깊이 쉬었던 곳. 처음 무섭다고 말했던 곳. 처음 이름을 지어준 곳.
"별이야."
"내년에도 올게."
깜빡.
"고마워."
깜빡. 깜빡.
준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자정이 넘어 있었다. 새해가 시작된 것이다.
돌온실에서 새해를 맞았다.
준혁은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 돌온실 안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이 돌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작고 어색한 메아리. 하지만 따뜻한 메아리.
별이가 가장 밝게 빛났다. 일 년 중 가장 밝게.
"다시"가 잠들었다.
가을에 마지막 잎을 떨군 뒤, 줄기가 마르고, 흙 위에 보이는 것은 갈색의 마른 줄기 하나뿐이었다. 뿌리는 살아 있었다. 흙 아래에서.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시"가 죽은 것 같았다.
지은은 화분 앞에 앉아 한참을 보았다.
예전이었다면 여기서 무너졌을 것이다. 다시 무기력으로, 다시 아무것도 못 하는 날들로. "거봐, 결국 이렇게 되잖아." 자기 안의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은 무너지지 않았다.
왜인지 안다. 가을에 심은 씨앗이 흙 속에 있었다. "다시"가 남긴 씨앗. 아직 발아하지 않았지만, 거기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 — 그것이 일 년 전의 지은과 지금의 지은의 차이였다.
일 년 전의 지은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기력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까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지은은 흙 아래를 믿었다.
겨울의 유리온실은 서리가 끼어 있었다.
유리벽에 얇은 서리가 맺혀, 바깥이 뿌옇게 보였다. 온실 안의 온도는 낮았지만 얼지는 않았다. 식물들은 잎을 떨구고 쉬고 있었다. 침묵꽃만이 조용히 빛을 내고 있었다. 가장 조용한 곳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꽃.
지은은 서리 낀 유리벽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썼다.
서리가 녹으며 투명한 선이 되었다.
괜찮다.
두 글자. 일 년 동안 지은이 자기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수돗물을 들고 온실에 올 때도, "다시"에게 이름을 붙일 때도, 처음 울었을 때도 —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 자기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겨울의 유리온실에서, 빈 화분 앞에서, 지은은 마침내 그 말을 썼다.
서리 위의 글씨는 금방 다시 흐려졌다. 하지만 쓴 순간의 온기가 유리에 남아 있었다.
지은은 빈 화분에 물을 주었다. 수돗물도 생수도 아닌, 집에서 끓여 온 보리차. 따뜻한 물. 겨울에 차가운 물을 주면 뿌리가 놀라니까. 따뜻한 것을 주고 싶었다.
흙이 보리차를 머금어 짙은 갈색이 되었다.
지은은 화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봄에 보자."
그리고 웃었다. 봄이 올 거라는 것을 아는 웃음. 일 년 전에는 내일도 몰랐던 사람이, 지금은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온실이 얼었다.
하음이 옥상에 올라갔을 때, 웅덩이의 수면이 얼어 있었다. 투명한 얼음. 손으로 두드리자 단단했다.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다.
하음은 당황했다. 물온실에 갈 수 없다니.
얼음 위에 앉았다. 차가웠다. 하지만 얼음 아래를 들여다보니 — 물이 있었다. 얼지 않은 물. 얼음은 표면만 덮고 있었고, 그 아래에 물온실은 여전히 존재했다.
수련이 보였다. 얼음 아래에서, 잎을 오므린 채, 겨울잠을 자고 있는 수련. 꽃은 없었다. 잎도 줄었다. 하지만 뿌리가 바닥 깊이 뻗어 있는 것이 얼음 너머로 보였다.
하음은 얼음 위에 손을 대고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만질 수 없었다.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볼 수 있었다.
겨울은 하음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쳤다.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에도 관계는 존재한다는 것.
은채와 매일 만나지 않았다. 서준이와 매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얼음 아래의 물처럼. 표면이 닫혀 있어도, 아래에서 흐르고 있었다.
하음은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에는 혼자 있으면 외로웠다. 387명이 있어도 외로운 사람이었으니까, 혼자 있으면 더 외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혼자 있는 것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가라앉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밀물이 오면 사람들이 오고, 썰물이 가면 혼자가 되고, 다시 밀물이 온다. 그 리듬을 하음은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날 하음은 얼음 위에 앉아 일기를 썼다.
핸드폰이 아니라 종이에. 네모난 다이어리. 은채가 크리스마스에 선물해준 것이었다. "너 글 쓰고 싶다고 했잖아"라며.
하음은 그 한마디에 울 뻔했다. 자기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줄 알았던 꿈을, 은채가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
하음은 얼음 위에 앉아 첫 페이지를 열었다.
12월 24일. 물온실이 얼었다. 두둥이가 잠들었다. 나도 잠들고 싶지만, 잠들면 안 되는 것 같다. 깨어 있는 겨울이 있어야, 봄을 알아볼 수 있으니까.
쓰고 나서 하음은 다이어리를 덮었다.
얼음 아래에서 수련의 잎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인 것 같았다.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음은 그것을 믿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지은이 흙 아래를 믿듯, 하음은 얼음 아래를 믿었다.
남편이 떠나고 두 번째 겨울이었다.
첫 번째 겨울은 기억이 없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매일이 안개 속이었고, 할머니는 안개 속을 걸어서 건넜다. 건넜다기보다 건너졌다. 시간이 할머니를 건네준 것이다.
두 번째 겨울은 달랐다.
할머니는 겨울을 보고 있었다. 뒷마당 감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처마 밑에 매달린 곶감을. 마당에 내린 서리를.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빛을.
보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나무온실에 내려갔다.
우리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두 번째 겨울. 작년 겨울에도 잎을 떨궜다. 하지만 올해의 앙상함은 작년과 달랐다. 올해의 가지는 작년보다 많았고, 올해의 줄기는 작년보다 굵었다. 잎이 없어도 나무가 자랐다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는 나무 앞에 앉았다.
"우리 나무야."
잠깐 멈추었다.
"아니다. 우리 나무야, 그리고 — 내 나무야."
처음으로 "내"라고 했다. "우리"가 아니라 "내". 남편과 함께가 아니라, 할머니 자신의.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었다. "우리" 안에 "내"를 넣은 것이었다. 남편의 나무이면서, 동시에 할머니의 나무. 두 사람의 것에서 한 사람의 것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것 안에 한 사람의 것이 포함된 것.
할머니는 나무의 줄기를 만졌다. 일 년 전의 갈라진 금은 이제 흉터가 되어 이끼에 덮여 있었다. 그 흉터 옆에서 난 새 가지가 굵어져 있었다.
"내년에는 열매가 더 많이 열리겠다."
할머니가 말했다. 기대의 말이었다. 일 년 전에는 할 수 없었던 말. 반 년 전에는 아주 작게만 할 수 있었던 말. 지금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
할머니는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을에 따 놓았던 우리 나무의 열매. 호박색 작은 구슬 같은 것. 두 달 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부적처럼.
할머니는 열매를 나무온실 바닥의 흙에 심었다. 우리 나무 옆에.
"하나 더 키워볼까."
할머니가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웃었다.
남편이 감나무를 심은 것은 삼십 년 전이었다. 그때 남편도 이렇게 혼잣말을 했을까. "하나 심어볼까." 하며. 앞으로 삼십 년 동안 이 나무가 감을 맺고, 그 감으로 곶감을 만들고, 그 곶감을 아내와 나눠 먹을 거라는 것을 모른 채.
할머니도 몰랐다. 이 열매가 어떤 나무가 될지. 하지만 심었다. 모르면서 심는 것이 희망이었다.
나무온실의 벽 — 감나무 뿌리 — 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바람이 아니었다. 뿌리가 움직인 것이었다. 감나무가 새 열매를 환영하는 것인지, 남편이 할머니의 선택을 기뻐하는 것인지, 할머니는 구분하지 않았다.
둘 다일 것이다.
도윤의 글이 브런치 공모전에서 입선했다.
대상도, 최우수상도 아닌 입선이었다. 맨 아래 칸의 이름. 하지만 도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이름이었다. 자기 이름이 자기가 쓴 글 옆에 있는 것. 자기가 만든 것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
도윤은 핸드폰 화면을 열 번쯤 확인했다. 정말 자기 이름인지. 오타가 아닌지. 꿈이 아닌지.
꿈이 아니었다.
거울온실에 갔다.
겨울의 거울온실은 — 거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가을부터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한 거울이, 겨울에는 대부분 떨어져 있었다. 벽은 흙과 이끼로 덮여 있었다. 천장의 거울만 아직 남아 있었다. 마지막 거울.
바닥에는 떨어진 거울 조각들이 이끼 사이에 박혀 있었다. 이끼가 거울을 감싸고 있었다. 부드러운 초록이 날카로운 유리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 아름다웠다. 상처를 감싸는 부드러움.
도윤은 바닥에 앉아 거울 조각들을 하나씩 주웠다.
각각의 조각에 도윤의 다른 부분이 비쳤다. 눈만 비치는 조각, 입만 비치는 조각, 손가락만 비치는 조각. 전체를 보여주는 거울은 없었다. 하지만 조각들을 모으면 — 온전한 도윤이 있었다.
도윤은 조각들을 이끼 위에 나란히 놓았다. 퍼즐처럼. 완벽한 형태는 아니었다. 조각 사이에 빈틈이 있었고, 빈틈에는 이끼가 채워져 있었다. 거울과 이끼로 이루어진 도윤의 초상화.
자기를 아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도윤은 생각했다.
완전한 하나의 그림이 아니라, 조각들의 모음. 빈틈이 있고, 그 빈틈은 부드러운 것으로 채워져 있는. 완벽하지 않지만 온전한 것.
도윤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마지막 거울이 거기 있었다. 도윤이 누워서 보던 거울. 이끼 위에 누운 도윤을 비추던 거울.
그 거울에 금이 가고 있었다. 가느다란 금. 곧 떨어질 것이다.
도윤은 일어나서 천장의 거울에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키가 모자랐다. 하지만 거울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이끼의 무게로. 자연스럽게.
도윤은 두 손을 펼쳐 거울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거울이 떨어졌다.
도윤의 손에 안겼다. 깨지지 않았다. 마지막 거울. 도윤을 비추는 마지막 거울.
도윤은 그 거울을 들고 자기를 보았다.
거울 속의 도윤이 웃고 있었다. 글이 입선된 날의 얼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취를 거둔 사람의 얼굴. 하지만 그 작은 성취가 만드는 큰 웃음.
도윤은 거울을 내려놓았다.
이끼 위에. 다른 거울 조각들 사이에. 마지막 거울도 이끼의 일부가 되었다.
거울온실에 거울이 없어졌다.
하지만 온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끼가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부드럽고, 촉촉하고, 초록인 방. 자기를 비추지 않지만, 자기를 감싸는 방.
도윤은 이끼벽에 손을 대었다. 부드러웠다.
"초록아."
이끼가 손바닥 아래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 글 쓰는 사람이 됐어."
도윤은 자기가 누군지 몰랐던 사람이었다. 이력서에 쓸 것은 있었지만 자기를 설명할 수 없었던 사람. 하지만 지금은 한 줄을 쓸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완전한 답이 아닐 수 있다. 내년에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것이었다. 오늘의 도윤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거울이 없는 방에서, 도윤은 자기를 보지 않고도 자기를 알았다.
그것이 겨울이 가르쳐준 것이었다.
에필로그 — 다섯 개의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준혁의 돌온실에서 별이가 흰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일 년 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사람이, 새해의 돌온실에서 소리 내어 웃습니다. 반쯤 차 있는 사람. 나쁘지 않은 사람.
지은의 유리온실에서 빈 화분이 겨울잠을 자고 있습니다. 수돗물로 시작한 사람이, 서리 위에 "괜찮다"를 씁니다. 봄에 보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음의 물온실이 얼어 있습니다. 하지만 얼음 아래에서 수련이 잠들어 있습니다. 깨어 있는 겨울을 보내는 하음이, 다이어리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순임 할머니의 나무온실에서 새 열매가 심어졌습니다. "우리 나무" 안에 "내 나무"를 넣은 할머니가, 모르면서 심는 것이 희망이라는 것을 압니다.
도윤의 거울온실에서 마지막 거울이 떨어졌습니다. 거울 없이도 자기를 아는 사람이, 이끼벽에 둘러싸인 방에서 말합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라고.
다섯 개의 겨울이 지나면, 다섯 개의 봄이 옵니다.
하지만 내년의 봄은 올해의 봄과 다를 것입니다. 올해의 봄은 처음이었지만, 내년의 봄은 두 번째이니까.
두 번째 봄을 아는 사람은, 세 번째도 올 것을 압니다.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계절은 반복됩니다. 하지만 같은 계절은 없습니다. 같은 봄은 없고, 같은 여름은 없고, 같은 가을은 없고, 같은 겨울은 없습니다.
매번 조금씩 다른 당신이, 매번 조금씩 다른 계절을 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온실에도 겨울이 왔나요. 셀리가 잠들어 있나요. 화분이 비어 보이나요. 거울이 뿌옇나요. 물이 얼었나요. 돌이 차갑나요.
괜찮습니다.
겨울은 끝이 아닙니다. 겨울은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조용하게 다음 봄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당신도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유리온실 · 계절 시리즈 · 완결
봄 — 녹는 것들의 계절 여름 — 자라는 것들의 계절 가을 — 내려놓는 것들의 계절 겨울 — 가장 깊은 곳의 계절
Bloomier Lab · Dear Se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