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하늘, 다른 온실

가을 · 내려놓는 것들의 계절

by 시더로즈


— 같은 하늘, 다른 온실


"가을은 손을 펴는 계절입니다. 여름 내내 꽉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계절.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가을 · 내려놓는 것들의 계절

준혁의 가을 — 돌온실

울지 않는 날의 의미

준혁은 요즘 울지 않는다.

여름에는 많이 울었다. 이유 없이, 때로는 이유 있게, 이십 년치의 것들이 순서 없이 올라왔다. 하지만 가을이 되자 눈물이 줄었다. 처음에 준혁은 걱정했다. 다시 무감각해지는 건 아닐까. 다시 돌이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달랐다.

예전의 무감각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느끼되, 느낀 것이 눈물까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슬프면 슬프구나, 하고 알았다. 외로우면 외로운 거구나, 하고 알았다. 예전에는 알지 못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여름에는 알기 시작하자 한꺼번에 쏟아졌고, 가을에는 아는 것과 쏟는 것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이 성장이었다.

가을의 돌온실은 고요했다.

여름의 습기가 빠지고, 돌벽이 서늘해졌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름 내내 흘러내리던 것들이 멈추었다. 하지만 그 물이 남긴 흔적이 있었다. 돌벽 전체에 이끼가 자라 있었다. 초록이 돌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버섯들은 자라는 것을 멈추고, 대신 빛을 바꾸었다. 여름의 강렬한 푸른빛이 가을에는 은은한 남빛으로 가라앉았다. 서른 개가 넘는 버섯들이 각각 조금씩 다른 톤의 남색을 내고 있었다. 돌온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았다.

별이의 갓 표면에 무늬가 생겼다. 나이테 같은 동심원. 봄에 발아하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무늬가 생기는 것.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 버섯에도 시간의 흔적이 새겨지고 있었다.

준혁은 별이 앞에 앉아 그 무늬를 들여다보았다.

"너도 나이 먹었네."

준혁이 웃었다. 웃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은 가을부터였다.

어느 날 준혁은 후배와 저녁을 먹다가 말했다.

"나 요즘 이상한 취미가 생겼어."

"뭔데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거."

후배가 고개를 갸웃했다. 준혁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조용한 데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해. 눈 감고 숨만 쉬고. 그러면 좀 괜찮아져."

"명상 같은 거예요?"

"글쎄, 명상이라기엔 너무 대충이야. 그냥 — 가만히 있는 거."

준혁은 이상한 취미라고 했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돌온실에서 배운 것을 바깥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숨을 쉬며 자기를 느끼는 것. 온실이 아닌 곳에서도.

은이 유리온실을 가슴 안에 품었듯, 준혁도 돌온실을 가슴 안에 만들고 있었다.

가을의 돌온실에서 준혁은 별이에게 말했다.

"나 이제 매일은 안 올 것 같아."

별이의 남빛이 깜빡였다.

"바깥에서도 너를 느낄 수 있게 됐거든."

준혁은 별이의 갓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다. 반투명한 표면이 준혁의 체온에 반응해 한 톤 밝아졌다.

"근데 가끔은 올게. 여기가 — 내가 처음 울었던 곳이니까."

돌온실이 조용히 빛났다. 서른 개의 남빛이 한꺼번에 한 톤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돌의 가을은 이런 것이다. 빛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빛의 자리를 아는 것.

지은의 가을 — 유리온실

시드는 것이 두렵지 않은 날

"다시"의 첫 번째 꽃이 졌다.

회색 꽃잎이 하나씩 떨어져 흙 위에 내려앉았다. 지은은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가슴이 조였다. 수돗물로 살려낸 "다시"였다. 의지만으로 키운 셀리였다. 그 셀리의 꽃이 지고 있었다.

지은은 당황해서 물을 더 주었다. 생수를, 많이. 하지만 꽃은 계속 졌다. 물이 부족해서 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을이라서 지는 것이었다.

지은은 화분 앞에 앉아 오래 바라보았다.

꽃이 지면 "다시"가 죽는 걸까.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 다시 무기력으로 돌아가는 걸까.

예전의 지은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좋은 것이 끝나면 다시 나쁜 것이 온다고. 좋은 것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지은은 다른 것을 보았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 씨앗이 있었다.

꽃이 진 것이 아니라, 꽃이 씨앗을 남기고 간 것이었다.

지은은 그 씨앗을 손에 올렸다. 작고 둥근 씨앗. "다시"의 씨앗. 지은이 수돗물로 키우고, 느리게 돌본 "다시"가 다음 "다시"를 위해 남긴 것.

이것을 심으면 새 "다시"가 자랄까.

아니, 이것은 "다시"의 연장이 아니라 "다시"의 다음이다. 같은 식물에서 나왔지만 다른 식물이 될 씨앗. 지은이 달라졌듯, 다음 "다시"도 다를 것이다.

지은은 씨앗을 화분 옆의 빈 흙에 심었다.

그리고 수돗물을 주었다. 이번에는 — 울면서.

처음이었다. 지은이 유리온실에서 울면서 물을 준 것은. 예전에는 울 수 없었다. 감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가을의 지은은 울 수 있었다.

꽃이 져서 슬펐다. 하지만 씨앗이 있어서 괜찮았다. 슬프면서 괜찮은 것. 은의 "봄인데 비가 오는" 계절과 같은 것.

지은의 눈물이 유리온실에 비를 내렸다.

처음이었다. 지은의 온실에 비가 내린 것은. 수돗물이 아닌 비. 감정이 담긴 물.

"다시"의 남은 줄기가 비를 맞으며 잎을 떨궜다. 마지막 잎. 하지만 뿌리는 살아 있었다. 겨울을 나면 다시 잎을 틔울 뿌리.

새로 심은 씨앗 위에 비가 내렸다.

지은은 울면서 웃었다.

"나 드디어 울 수 있네."

그것이 지은의 가을이었다.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 끝이 시작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하음의 가을 — 물온실


물이 맑아지는 계절

가을이 되자 물온실의 물이 맑아졌다.

여름 내내 초록빛이던 물이 투명해졌다. 바닥이 보였다. 밀물이 차도 바닥이 보일 만큼 맑은 물. 이전에는 물이 탁해서 밀물이 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을의 물은 투명했고, 밀물 속에서도 바닥의 조개껍데기와 글씨와 빈자리가 모두 보였다.

하음은 알았다. 물이 맑아진 것은 하음이 맑아진 것이었다.

387개의 얼굴이 줄었다. 정확히 세지는 않았지만, 하음이 쓰는 얼굴이 줄었다. 은채 앞에서의 하음, 부모님 앞에서의 하음, 혼자 있을 때의 하음 — 그 사이의 거리가 좁아졌다. 완전히 같아지지는 않았다. 사람은 상대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약간 다른 것"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달랐다. 하음은 이제 약간만 달라졌다.

서준이가 먼저 연락을 했다.

여름 내내 멀어졌던 서준이가 "우리 밥 먹자"고 했다. 하음은 망설였다. 예전의 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서준이가 편한 하음을 다시 연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지만 만나보기로 했다.

서준이는 어색했지만 솔직했다.

"너 변한 거 알아. 좀 불편했어. 네가 싫다고 말하는 거."

"미안."

"아니, 미안하지 마. 근데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서준이가 음료를 저으며 말했다. "근데 솔직히 지금 네가 더 좋아. 뭐랄까 — 진짜 같아."

하음은 놀랐다.

"진짜 같다고?"

"응. 전에는 너 뭐 시켜도 다 좋다고 했잖아. 지금은 '나 이거 별로야, 저거 먹자' 하니까 — 같이 밥 먹는 맛이 있어."

하음은 웃었다. 잃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것이었다. 예전의 서준이-하음이 아니라, 지금의 서준이-하음.

여름에 물온실 바닥에 있던 빈자리가 떠올랐다. 그 빈자리는 아직 거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서준이와 만든 새로운 기억이, 그 빈자리 옆에 새 조개껍데기로 놓일 것이다.

가을의 물온실에서 수련이 변하고 있었다.

꽃은 여름에 피고 졌다. 분홍 꽃잎은 모두 떨어져 물 위에 흩어졌다가 녹았다. 하지만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혔다. 수련의 열매. 둥글고 작은 것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열매는 물 위에 떠 있지 않았다. 물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꽃은 물 위에서 피지만, 열매는 물 아래에서 익는다.

하음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보여주는 것은 물 위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물 아래에서 만들어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곳에서.

하음의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비공개였다. 팔로워는 43명으로 줄어 있었다. 하지만 그 43명이 하음의 맑은 물 같은 게시물을 보고 있었다. 필터 없는 사진, 캡션 없는 하늘, 가끔 쓰는 짧은 문장.

오늘 하음은 처음으로 긴 글을 올렸다.

"친구가 많은 게 좋은 줄 알았는데, 진짜 친구가 있는 게 좋은 거였다. 진짜 친구는 내가 별로라고 말해도 남아 있는 사람이다."

좋아요가 다섯 개 왔다. 하음은 그 다섯 개가 1,200개보다 무거웠다.



순임 할머니의 가을 — 나무온실


감을 따는 사람

감나무에 감이 열렸다.

올해도 감이 열렸다. 매년 열리는 것이지만, 올해의 감은 유독 많았다. 가지마다 주황빛이 빛났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풍경이었다.

할머니는 감나무 아래에 서서 올려다보았다.

남편은 매년 가을이면 감을 땄다. 긴 장대 끝에 망을 달아, 하나하나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할머니는 아래에서 바구니를 받으며 "조심해 이 양반아" 했고, 남편은 "안 떨어져 걱정 마" 했다. 매년 같은 대화. 삼십 년 동안.

올해는 감을 딸 사람이 없었다. 작년에는 감이 나무에 매달린 채 겨울을 맞아 까맣게 얼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보면서 울었다. 감이 떨어지는 것이 남편이 떠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할머니는 큰아들에게 전화했다.

"야, 이번 주말에 오면 감 좀 따줘라."

"엄마가 시키는 거 처음인데?" 아들이 놀라서 웃었다.

"시킬 사람이 없으니까 시키지. 빨리 와."

토요일에 아들이 왔다. 손주들도 왔다. 아들이 장대를 들고 감을 따고, 큰손주가 바구니를 들고, 작은손주가 떨어진 감을 주웠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그 모습을 보았다.

남편이 하던 것을 아들이 하고 있었다. 남편의 장대를 아들의 손이 잡고 있었다. 같은 장대, 다른 손. 하지만 같은 감나무, 같은 가을.

할머니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할머니 또 울어?"

작은손주가 감을 안고 달려와 물었다.

"안 울어. 바람이 들어갔어."

"거짓말. 할머니 코 빨갛잖아."

할머니가 웃었다. 울면서.

그날 저녁 할머니는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었다.

남편이 하던 방식 그대로. 감을 깎고, 실에 꿰어, 처마 밑에 매달았다. 서투르긴 했지만 했다. 매년 남편이 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했는데, 올해는 자기가 했다.

나무온실에 내려갔을 때, 우리 나무에도 열매가 달려 있었다.

여름에 핀 꽃이 열매가 된 것이었다. 감보다 작고, 감보다 둥글고, 색은 — 주황이 아니라 호박색이었다. 감나무의 주황과 할머니의 따뜻함이 섞인 색.

할머니는 열매를 하나 따보았다. 가볍고 단단했다.

"이것도 곶감 만들 수 있으려나."

할머니가 웃었다. 물론 만들 수 없었다. 이것은 진짜 과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열매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무온실을 나오며 할머니는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처마에 매달린 곶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이 없어도 곶감은 만들 수 있었다.

할머니의 가을은, 남편이 하던 것을 자기 손으로 하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남편을 잊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남긴 것을 이어가는 것. 기억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다른 형태로 만드는 것.

감을 곶감으로 만들듯이.

사랑을 삶으로 만들듯이.



도윤의 가을 — 거울온실


거울을 내려놓는 사람

도윤은 두 번째 글을 완성했다.

첫 번째보다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첫 번째보다 솔직했다. 도윤은 자기에 대해 썼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에 대해. 거울을 보면 여러 명의 자기가 보이는 사람에 대해.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날것이고, 에세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야기인 글.

도윤은 그 글을 한 곳에 보냈다. 브런치 공모전.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보냈다.

가을의 거울온실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거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는 — 이끼가 거울을 완전히 덮은 곳에서, 거울이 벽에서 떨어져 바닥에 내려앉았다. 거울 뒤에는 흙벽이 있었다. 온실의 본래 벽. 거울이 붙어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흙으로 된 벽.

도윤은 당황했다. 거울이 없어지면 자기를 볼 수 없다. 거울온실의 의미가 사라진다.

하지만 떨어진 거울 자리를 보자 — 흙벽에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초록이가 거울 뒤쪽에서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거울 앞만이 아니라 거울 뒤에서도.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 없어도, 자기를 감싸는 초록은 있었다.

도윤은 떨어진 거울을 집어 들었다. 거울 조각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작은 조각에 비친 작은 얼굴.

예전에는 사방의 거울이 무한히 반복되는 자기를 보여주었다. 압도적이었다. 어떤 자기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손에 든 작은 거울 조각에는 하나의 얼굴만 비쳤다. 하나면 충분했다.

도윤은 거울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거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벽에 붙어 있는 거울들. 이끼가 가장자리를 감싸고 있는 거울들. 시간이 지나면 이 거울들도 하나씩 떨어질 것이다. 이끼가 거울을 대체할 것이다.

거울이 사라지고 이끼가 남는 것.

자기를 보는 것에서 자기를 느끼는 것으로 바뀌는 것.

도윤은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자기를 보아야 했다. 거울이 필요했다. 자기 안에 여러 명이 있다는 것을,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것이라는 것을 봐야 했다. 하지만 보는 단계를 지나면, 느끼는 단계가 온다. 거울 없이도 자기를 아는 단계.

도윤은 거울온실 바닥에 누웠다.

이끼가 부드러웠다. 가을의 이끼는 봄보다 두껍고, 여름보다 촉촉했다. 사계절 중 가장 좋은 이끼. 시간이 쌓인 이끼.

천장의 거울은 아직 남아 있었다. 거기에 누워 있는 도윤이 비쳤다. 이끼 위에 누운 도윤.

도윤은 천장의 자기에게 말했다.

"나 글 보냈어."

천장의 도윤이 끄덕였다.

"떨어질 수도 있어."

천장의 도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어때.

도윤은 웃었다.

"그래, 그러면 어때."

주머니 속의 거울 조각이 손에 닿았다. 작지만 충분한 거울. 자기 하나를 비출 수 있는 거울.

도윤은 눈을 감았다. 거울 없이 자기를 느꼈다.

이끼의 부드러움이 등을 감싸고 있었다.

충분했다.

에필로그 — 다섯 개의 가을

준혁은 울지 않는 날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과 자기 사이에 공간이 생긴 것. 느끼되 휩쓸리지 않는 것. 그것이 성장이라는 것.

지은은 잃는 것을 견뎠습니다. 꽃이 져도 씨앗이 남는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 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수돗물이 아닌 눈물이 온실에 비를 내린다는 것.

하음은 관계를 고쳤습니다. 잃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새로운 형태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진짜 좋아요 다섯 개가 가짜 좋아요 천 개보다 무겁다는 것.

순임 할머니는 이어갔습니다. 남편의 감을 자기 손으로 따고, 남편의 곶감을 자기 손으로 만들고, 사랑을 기억에서 삶으로 바꾸었습니다.

도윤은 내려놓았습니다. 사방의 거울 대신 주머니 속 거울 조각 하나. 무한한 자기 대신 하나의 자기. 보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가을은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떨어지고, 거울이 떨어지고, 꽃잎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것들은 모두 어딘가에 닿습니다. 잎은 흙이 되고, 열매는 씨가 되고, 거울은 이끼가 대신하고, 꽃잎은 다음 봄을 품습니다.


당신이 지금 무언가를 내려놓고 있다면, 그것은 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계절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다음 계절 — 「겨울 · 가장 깊은 곳의 계절」

유리온실 · 계절 시리즈 Bloomier Lab · Dear Selly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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