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kdown Days] 어디든, 어떻게든
자주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숨이 막힌다.
사회적 제약이 길어질수록, 답답하고, 그래서 숨을 바로 쉬기가 어렵고, 일부러 크게 내 쉬어야 편안한 숨을 유지할 수 있다. 가슴 어딘가를 옥죄는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몇 번이고 집 밖으로 나가 쨍한 바깥공기를 쐰다. 호흡 재생 버튼이 찬 공기에 닿아야 작동되는 것 같다.
대 코로나 시대에 답답함 정도야 혼자 겪는 일이 아니기에 익숙하게 받아들일 법도 한데, 왜인지 모르겠다. 점점 더 사람이 그립고, 어딘가에 닿고 싶다. 한글로 아무 말이라도 떠들고 싶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어디야, 어떻게 지내, 괜찮니, 다정한 안부를 전하고 싶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원초아(id; 본능)가 보채고
- 나는 사람이 그리워, 사람의 온기와 커넥션이 그리워.
초자아(super-ego; 사회적 자아)가 억제한다
- 그렇게 말하면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잖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그러면 자아(ego; 현실적 자아)가 일어나 중재한다
- 그렇지만 사람이 그리운 건 사실이니까,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보자. 대신 최대한 초라해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네 마음을 꺼내 놓아야 해. (그렇다, 초라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원초아의 마음을 채워주지 않으면, 채워질 때까지 계속 나를 추궁할 것이다
- 사람의 온기를 가져와. 어디에서든. 지금 당장 나는 그게 필요해. 가져오지 않는다면 너를 구워 먹겠다!
자아는 결코 원초아를 이길 수 없지만, 초자아를 무시할 수도 없다
- 조금만 기다려봐, 방법을 강구해 볼게.
건설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 하소연이나 험담이 아니라,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는 주고 받음.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떠들다가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조차 잊어버리는 대화 말고. 그러려면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겠지. 적당한 거리감이란 어느 정도 일까. '1.3m 삐빅, 너무 가깝습니다' 알람이 울려주면 좋을 텐데.
말들을 덜어내고 나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 개운해질까.
산책의 횟수가 늘어나는 매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