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절은 뜬금없이, 어느 날, 갑자기
봄은 늘 훅, 왔다. 아니, 계절은 늘 갑자기 온다.
예기치 못한 어느 밤, 공기가 달라지면서.
지난 계절의 혹독함은 언제나 쉽게 잊히고, 새로 맞이하는 계절에 금세 호감을 준다. 뭐 그렇게 쉬운가 싶다가도, 그럴 수 있어서 살아갈 힘이 있는 거겠지 한다. 그것마저 어려우면 매 숨 쉬는 순간마저 고비일 테니까.
어느 날, 마른나무에 잎이 피어나고, 그러다 꽃까지 피면 또 놀라겠지. 언제 봄이 왔지. 오랫동안 일기를 적으면서 알게 되었다. 1년 전의 나는 정확하게 비슷한 시점에 봄을 기다리고 또 봄을 맞이함에 기뻐했다는 것을. 같은 일을 매년 반복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적지 않았으면 까마득히 몰랐겠지. 지난 계절을 잊고 또 다음 계절을 맞이했을 테다. 뭐, 새삼 그걸 알았다고 해서 또 뭔가 바뀌는 것은 없지만.
선물 받은 히야신스 구근은 팝콘처럼 꽃이 피었다. 투두둑 터지는 소리가 날 것처럼, 빠르게, 어느 날 갑자기. 오늘은 이쪽에서, 내일은 그 반대편에서. 게다가 향기도 진해서, 수다스러운 꽃 같다. 봄이야 봄이야 봄이야 하고 옆에서 쉴 새 없이 지저귀는 기분이랄까.
지구는 정말로 지구촌이라서, 혹한이 오는 시기에는 유럽도 미국도 아시아에도 혹한이 오고, 또 갑자기 뜨거운 바람이 불면 모두가 그렇다. 한 주 전만 해도 갑자기 눈이 오더니, 갑작스레 여기저기 반팔을 입고 넣어 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내 들게 되는 날씨가 되었다. 어쩐지 해가 지고 나서도 데워진 공기가 여전히 떠돌고 있어서 찬기운이 사라졌다. 뜨끈하기까지 하진 않지만 미지근한 바람. 어느 밤, 이런 기운을 느끼게 되면 나는 좀 무서워지는데, 그건 이 시간이 지나면 곧 새시작의 시즌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낮이 길어지면, 더 이상 핑곗거리가 없다는 이야기랄까. 봄도 되었는데, 제대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드니까.
더 이상 블로그에 적는 일기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것이 어떤 차이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내밀한 무엇을 전부 쏟아내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틀려도 된다고 하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다. 틀리고 싶지 않다. 맞고 싶다. 그게 뭐든,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거기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