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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Aug 19. 2021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미술관 노동자의 관찰일기] 02. 관망의 시선 너머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 관람객이 부쩍 늘었다.


평소의 관람객들이 대게 관련 종사자이거나 적어도 예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이 시즌의 방문객들은 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도 그저 아이들에게 즐거운 체험 활동 하나를 더해주고 싶은 부모와 아이들이 꽤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시 차원에서 어린이를 위한 특별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특히 직원들의 주의집중이 필요하다. 전년도의 여름을 경험한 동료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은 때때로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대게 거침이 없고, 호기심이 많으며, 자주 뛰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달라서, 함부로 어떤 패턴을 단정 짓고 추측하기가 어렵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의를 요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작품이 훼손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초대형 미술관이 아닌 이상, 모든 작품에 꼼꼼하게 선을 두르고 알람이 울리는 수준의 보안을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 현대 미술 작품들은 상당히 취약한 상태로 오픈되어 있는 편이다. 눈치를 보지 않고 제멋대로인 관객을 제제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입장하면, 일단 직원들의 긴장도가 올라간다. 일단 부모에게 아이에게 절대 눈을 떼지 말고 가까이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이젠 안다. 듣지 않을 사람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이미 의식이 있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신경을 쓴다. 아이들을 마냥 잠재적 사건을 일으킬 요인으로 보고 쫓아다니기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의식만 믿고 그들의 행동을 무턱대고 놓아둘 수도 없다. 매번, 나는 아직도 자주 내가 편견에 잔뜩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사실만 (다행히 혼자, 속으로만) 깨닫는다.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통제도 하고 옆에 앉아 차근히 설명을 해주는 부모가 있는 반면, 애가 저 멀리서 뛰든지 말든지 자기 구경하기 바쁜 부모가 있다. 어떤 아이들은 호기심이 넘쳐 뭐든 건드려보고 싶어 하지만, 어떤 아이는 내성적이라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겁내 하는데 오히려 부모가 작품 옆에 기어코 세워 기념사진을 찍고야 만다. 아주 짧은 순간에도, 사람들의 성향과 면면을 보게 된다. 정말 다양하다. 신기할 만큼.


그날 가장 젠틀했던 가족은 어떤 엄마와 딸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열람 가능한 책을 아이가 만지자 엄마가 주의를 주었다. 옆에서 그건 만져도 되는 책이라고 말해주었더니, 아이 엄마는 웃으면서 지금 나는 아이 교육을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거나 만질 테니까. 라고 답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아 그리고 감사합니다아. 더치로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추측만으로 말을 걸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모차를 끌고 온 어떤 더치 아빠는 수줍은 딸의 손을 잡고 눈높이를 맞추어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준다. 사랑스러워라! 올망졸망한 아들 셋을 데리고 온 프랜치 부부는 세 아들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었는지 그저 방치해 두었고, 그들에게 직접 뭐라 할 수가 없어 대신 눈으로 레이저를 쏘면서 세 아이의 동선을 쫓아야 했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면서도 실컷 뛰었다. 어머님 아버님, 여기는 아이들이 뛰라고 만들어진 장소가 아닙니다만...


어느 날엔, 더치답게 키가 아주 큰 엄마와 아빠, 곱슬머리 아이 둘이 입장했다. 큰 아이는 걷는 아이, 둘째는 어린 아기였는데, 아기가 아빠가 아무리 안아줘도 칭얼거려서 결국 엄마의 무등에 올라타고야 말았고, 아빠는 남은 첫째를 맡았다. 아아, 이것은 팀워크로구나. 아이 둘을 케어하느라 꽤나 애쓰던 그 부부는 결국 로비로 내려가고 아내만 다시 돌아왔다. 전시실을 두리번거리길래 뭘 찾는지 물어보았더니, 아이 둘을 남편이 봐주는 동안 혼자 전시를 둘러보러 왔다고 이마의 땀을 닦는다. 아까 아이가 소란 피워도 뭐라고 안 해줘서 고맙다고. 아이고, 별말씀을요. 그 정도면 매우 양반입니다. 소리 지르는거야 뭐, 작품 안 건드린게 어딘가요! 그녀가 빠르게 전시장을 돌아 내려가자 이번에는 남편이 올라왔다. 육아는 정말 엄청난 일인 것 같다. 국경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꼭 아이들이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다름의 범위는 정말 다양해서, 인생 맘대로 살 건데 내가 뭘 하던 넌 신경 꺼 스타일부터, 세상 요란한 차림을 하고서도 예술 작품을 존중하는 사람,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휘리릭 흘려 보고 지나가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다. 영어로 말하면 무시하고 지나가는 어르신들도 있고, 눈만 마주쳐도 세상 제일 따뜻한 웃음으로 인사를 해주는 사람도 있다. 인종이나 나이, 차림새, 언어, 그 어느 것으로도 데이터를 만들기가 어렵다. (참고로, 아까 말한 가장 젠틀했던 엄마와 딸은 아프리칸 더치였다.) 


그래서 편견과 인종 차별, 각종 선입견을 제외한 중립적 시선을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완벽하게 모든 차별적 행동과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제 아무리 이름난 사회활동가라 하더라도. 일단은 노력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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