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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Sep 27. 2022

부엔 카미노!

론세스바야스에서 푸엔테 레이나

이 곳에 온 뒤에 자주 듣는 단어가 있다. 페레그리노, 부엔 카미노, 알베르게가 그것이다.  

처음 사무소에서 이 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체크하라고 한다. 종교, 문화, 체력 증진의 이유 중에 고르라해서 문화에 체크했다. 순례길이라는 이름도 순례자라는 명칭도 부담스럽다. 나는 이 길이 걷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도 이 곳에서 우리는 페레그리노라고 불리운다. 스페인어로 순례자라는 뜻이다. 

길에서 나를 앞서갈 때, 인사할 때 부엔 카미노라고 외치고 지나간다. 좋은 길 되라는 뜻이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는 말인 부엔 카미노는 힘을 주는 단어이다.  

알베르게는 게스트하우스를 의미하며 작은 규모부터 200명이 함께 자는 곳, 공립, 사립으로 종류가 다양하다.  


론세스바야스에서 수비리


빨간 꽃이 예쁜 마을을 지나 논밭을 지나 수비리에 도착한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파리에서 왔다는 폴린이 인사를 건넨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폴린에게서 왜 산티아고를 걷느냐는 질문이 처음부터 훅 들어와 퇴사하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 중이며 그 중간에 오게 되었다고 하니 그녀는 비우기 위해 왔다고 한다. 두번째 이 길을 찾았고 이번에는 일주일 일정으로 왔다고. 하긴 프랑스는 가까우니 이렇게 옆 동네 오듯 올 수 있겠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그녀는 짐을 많이 가져와 후회 중이라며 심지어 에코백도 너무 무겁다며 예쁜 가방을 보여준다. 파리지엔느의 감성이 묻어나는 가방인데 무거워 보이기는 한다. 나는 무게를 줄이느라 이케야에서 준 장바구니 가방을 가져왔다하니 이쁘다 해준다. 정이 가는 그녀이다.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하며 같이 얘기하다가 앞을 서성이는 A를 불러 합석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중국인 이민 2세 A는 29살의 IT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왔다고 한다. 이십대의 에너지와 씩씩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나는 어떤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을 지 궁금하다.


수비리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열 명이 같이 있는 철재 이층 침대방에 배정이 되었다. 내가 움직이면 아래 침대도 같이 움직이는 듯 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무릎 통증으로 한국분께서 선뜻 내주신 파스를 붙였는데 온 방에 강한 일본 파스 냄새가 진동한다. 조금 뒤 누군가 창문을 열고 내 밑에 스페인 남자는 연신 코를 킁킁댄다. 미안하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나


삐그덕거림과 익숙치 않음으로 인해 밤을 새다시피 한 알베르게를 아침 일찍 나와 길을 나섰다. 길은 아직 어둡다. 헤드 랜튼을 켜고 앞에 가는 여자 뒤를 따라가는데 그녀가 너무 빠르다. 놓쳤다. 다시 혼자. 길도 어두운데 앞뒤로 사람이 없으니 무섭다. 다행히 길은 금새 밝아온다.  


이 곳에 와서 알게 된 것. 걷는 것을 좋아하고 자주 걸었는데, 생각보다 내 걸음이 느리다는 것이다. 느리게 걷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휙휙 하고 지나쳐간다. 씩씩하게 사람들이 부엔 카미노를 외치고 나를 지나가는데 나도 먼저 부엔 카미노를 외쳐보고 싶다. 

여러 명의 부엔 카미노를 보내고 나의 걸음 속도와 비슷한 미국에서 온 B를 만났다. 큰 배낭에 마르지 않은 속옷을 걸어 놓은 그녀의 뒷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어릴 때 결혼하고 얼마 안되 이혼 후 혼자 딸을 키웠다 한다. 이번에 그 딸이 결혼을 했고 자신은 오십이 된 기념으로 십 대 때부터 계획했던 산티아고 길에 올랐다고 한다. 간호사인 그녀는 올해를 타겟으로 이년 전부터 보스에게 얘기해 6주 휴가를 만들어놓았다고. 일주일만에 항공권을 산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이렇게 오랜 기간 계획해서도 오는구나싶다. 

그녀는 자기는 느리지만 많이 쉬지 않아 다른 사람과 결국 비슷한 속도라고 한다. 거북이와 토끼가 생각나는 말이다. 대신 거북이는 계속 걸어야 하잖아! 


산티아고길 시작한 후 처음 나오는 도시인 팜플로냐에 들어선다. 도시에서 보면 스틱과 배낭 차림의 우리는 누가 봐도 길 위의 사람들이지만 무리 지어 다니니 연대감이 느껴지고 외롭지 않다. 어제 너무 못 자서 몸이 힘든데 심지어 이 곳 알베르게는 거의 200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다. 벌써 밤이 걱정된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일식집을 찾아 따끈한 김치 우동과 맥주 한병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알베르게 침대에 앉아있으니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워낙 넓어서인지 어제 못 자서인지 잠은 잘 잤다. 

너무 가까운 나와 너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이나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의 약간은 우울했던 저녁 기분은 사라지고 오늘 걷게 될 새로운 길이 기대된다. 아침 길을 나서다 아이 다섯의 아일랜드 그녀를 다시 마주쳤다. 


"몸은 어때?"

"안 좋아. 어제는 그냥 한국에 갈까 잠깐 생각했어.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심리상담사라는 그녀는 내게 넌 할 수 있을 거야 기분은 왔다가는 것이니 보내면 된다며 용기를 준다. 그녀와 얘기하다보니 다시 힘이 난다. 몇 번 길에서 다시 마주 친 캐나다 여인 웬디는 계속 내 몸 상태를 물어보며 반갑고 따뜻하게 인사를 하며 힘을 주었다. 이 길은 길도 멋지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주는 힘을 생각하게 해 주는 묘한 길이다. 


도시를 벗어나 넓은 들판과 언덕을 지나 사진에서 봤던 용서의 언덕이 나온다. 생각보다 별 감흥은 없다. 벤치에 앉아 쉬는데 말도 안 통하는 스페인 페레그리노가 땅콩을 건넨다. 같이 먹고 힘내자는 거겠지. 그래 힘내보자! 


푸에렌테 라이나는 영화에서 본 중세의 작은 마을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화려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소박하면서도 투박한 느낌의 집, 성당, 도로가 참 예쁘다.


생장부터 4일간 익숙하지 않은 공립 알베르게에서 좁게 자서 몸이 피곤하여 편히 쉬기도 할 겸 약간 비싼 사설 알베르게를 예약하였다. 역시 좋다. 비싼 건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끼며 두툼한 타월과 깔끔한 침대시트를 아주 오랫만에 즐겨본다. 그동안 한국에서 호텔에 가면 이것 저것 지적질이 습관이었는데 이 길에서는 혼자 잘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생각만큼 잠이 잘 오지는 않았다. 그새 여러 사람이 같이 자는 곳과 소음과 긴장감에 익숙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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