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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Sep 27. 2022

기대되는 하루

푸엔테 라이나부터 산솔

푸엔테 라이나에서 에스텔라

그동안 있었던 곳보다 예쁘고 깔끔한 곳이었지만 잠은 깊게 못 잔 알베르게를 나와 길을 나선다. 오늘은 에스텔라. 이름도 너무 예쁜 도시다. 짐을 풀고 길 여기저기를 구경하다 들어간 공립 도서관, 오래된 책 냄새가 좋다. 낮이라 그런지 사람은 없고 고요하다. 

강변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화이트 와인과 바게트 빵 샌드위치인 보카디오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오늘도 잘 해냈다라는 만족감과 나른함, 피곤함이 같이 느껴지는 오후 시간을 만끽한다. 



에스텔라에서 산솔


이 곳에서 맞는 아침은 특별하다. 오늘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오늘 어떤 새로운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지 설레임이 아침을 연다. 그 동안 익숙한 아침, 어떻게 전개될지 아는 삶을 살다보니 편안하기도 하지만 밀려드는 매너리즘에 노력하면서 기대라는 감정을 불어넣고 살았다.  


물론 어떤 것이 낫다는 건 아니다. 각 시기마다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 있기에. 다만 오늘 주어진 이 멋진 시간에 감사하고 충실하자고 다짐해본다.


길에서 많은 한국사람들을 만난다. 생각하지 않고 언어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즐거움에 먼저 반가움이 앞선다. 워낙 많은 한국 사람이 있다 보니 다른 외국인이 물어본다. 한국에서 왜 이렇게 산티아고 길에 많이 오는 거야? 나도 모르겠다. 내가 이 길에 오른 것처럼 각자 다른 사연으로 멀지 않은 이 길에 올랐을 것이고 그 시점이 지금 일치했을 뿐이다. 


몇 번 길에서 마주 친 큰 배낭의 한국 분이 계셨다. 에고 무겁겠다! 겨우 6킬로인 내 가방도 이리 무거운 데 저 배낭은 얼마나 무거울꼬하는 생각이 드는 아주 큰 배낭이였다. 몇 번을 길에서 봤지만 힘내세요만 외쳤는데 오늘은 유명한 와인이 나오는 수도꼭지에서 만나서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한다.


이 분 덕분에 사진이 남았다. 아침부터 와인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재미나다!


와인으로 부스터샷을 맞은 듯 오늘도 직진이다.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많은 사람이 나를 앞질러가는데 무릎통증이 점점 더 커진다. 절뚝거리며 길을 걷으며 많은 사람이 숙소를 잡는 로스 아그로스를 지나 산솔로 향한다. 가는 길에 심해진 무릎 통증에 무릎 보호대를 무려 50유로를 주고 한 짝을 샀다. 대부분 로그 아그로스에서 머물기도 하고 내 걸음이 너무나 느렸던 탓에 산솔로 가는 길에는 거의 사람이 없다. 뻥 뚫린 길 위에 나만 있어 음악을 크게 맘껏 틀고 가니 마음이 다 시원하다.


산솔에 도착하여 순례자 디너에서 큰 배낭을 짐어지고 오신 반가운 한국분 얼굴이 보인다. 푸짐한 저녁과 와인에 피곤이 녹는 듯하다. 한국에서 금융업에 종사하시다 명퇴하셨다는 이 분은 이번이 두번째란다. 오년만에 두번째 길을 오셨는데 그새 까먹고 더 큰 배낭을 가지고 오셨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이신다. 


여러 명이 함께 있는 알베르게이지만 오늘은 얌전한 사람들이 함께 해 편안히 잠을 잤다. 먹고, 걷고, 자는 게 전부인 이 곳에서 잠을 잘 자는 게 다음 날 컨디션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하긴 그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전 날 회식이라도 세게 한 날이면 다음 날 오전은 시체 모드로 보내게 된다. 이 곳은 몸을 써서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이라 몸의 컨디션이 후회가 더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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