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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Oct 08. 2022

우리는 축제 중

에스피노사에서 부르고스

에스피노사에서 아타푸에르카


길을 나서는데 비가 보슬보슬 온다. 오늘은 10킬로의 산을 넘어가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선 길. 걷다 보니 산티아고까지 548킬로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800킬로 중 벌써 250킬로나 걸었다니 뿌듯하다.


산길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화장실이 가고 싶다. 이 산속에서. 앞에서 걷던 그녀가 옆길로 샌다. 사인이다. 근처 적절한 장소가 있다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간 그곳은 전쟁에 학살당한 시민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였다. 그녀는 이곳의 의미를 열심히 설명한다. 미안하지만 난 그냥 적당한 장소가 있는 줄 알았다고!


산티아고 길은 참 좋은데 화장실이 문제다. 그래서 많이 걷는데도 물을 최소한 마시고 쉬는 곳이 있으면 무조건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설명을 뒤로 하고 계속 산을 넘는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산길이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쯤 바가 나와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늘의 목적지인 아타푸에르카를 향한다.

지나는 순례자들이 돌로 만들어 놓은 화살표가 나온다. 한 땀 한 땀 돌로 길을 표시해 주어 길을 잘 못 들지 않도록 해 주는 거다. 같은 걷는 사람 입장에서 헛걸음하지 않도록. 이 길의 매력이다!


드디어 알베르게에 도착했지만 길었던 산 코스와 화장실 참기로 더 힘들었던 하루 끝은 알베르게 아닌 곳에서 혼자 편히 쉬고 싶다. 급하게 근처 호스텔을 검색해보니 한 시간 거리에 적당한 금액의 호스텔이 있다. 한 시간 걷는 건 이제 일도 아니기에 얼른 예약하고 길을 나선다. 그런데 한 시간 걸린다고 나온 길이 인도가 없는 국도다. 걷기에 위험해 보이는 길, 길을 걸으니 차에 탄 여자가 손으로 엑스자를 해 보인다. 걸으면 안 된다는 사인 같다. 다시 마을 바에 가서 버스가 있냐고 하니 없다고 한다. 구글 번역기로 한참 물어보니 바의 손님이 자기 차로 데려다주겠다 한다. 잠깐 타도 될까 생각했지만 그럴 여유를 부리기엔 너무 피곤하다. 잡아간다 해도 피곤한 날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스텔은 고속도로 같은 도로변에 있어 다음 날 부르고스로 걸어서도 버스로도 갈 수 없는 곳이란다. 택시로 40유로 정도 된다는 걸 호스텔 주인이 20유로에 내일 데려다주겠다 한다. 정말 택시가 40유로나 할까 싶지만 노옵션이다.


오후 시간을 다이내믹하게 보내고 나니 허기진다. 호스텔에서 하는 바에 가서 저녁 메뉴를 구글 번역으로 열심히 돌려보지만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추천 메뉴 달라고 하니 메뉴 델 디아(오늘의 메뉴)인 돼지 허벅지 오븐구이라며 준다. 맛은 없는데 헤맨 탓의 허기로 엄청 맛있게 먹었다. 금요일인데 바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래서 밥 먹고 살겠나라는 세상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이곳은 삼십대로 추정되는 부부가 하는 곳으로 티비에서 본 남미 축구선수 외모의 놈팽 느낌 남자가 호스텔 체크인을 관리하고 연예인 같은 길쭉하고 이쁜 부인이 레스토랑을 하는 듯하다. 금요일인데도 손님이 없는 걸 보면 마을에서도 음식 솜씨가 소문난 듯하다.  



부르고스


약속한 대로 오전에 호스텔 주인이 부르고스에 내려준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는 두 번째 대도시 부르고스.

라톤도 아니고 훈련도 아니고 주말도 없이 계속 걷고 있다. 토요일인 오늘은 하루 쉬며 부르고스 구경을 해야겠다. 길을 걷다가 도시로 들어오는 순례자를 보니 말끔한 도시인 사이에서 눈에 띄게 거지 몰골이다. 하지만 활기참과 기대로 가득 찬 표정이 있어 거지 몰골이 추레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살아있음이 가득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네스코 문화유산이면서 프랑스 고딕 양식을 스페인에 융합한 건축물이라는 부르고대성당으로 향한다. 무려 3세기에 걸쳐 건축됐다는 부르고스 대성당. 아니 무슨 건물 하나를 삼백 년씩이나 짓는담. 한국에게 한 수 배워야겠어하면서도 이렇듯 화려한 외관과 조형물, 스테인리스를 보면 시간이 들었겠다 싶다. 이번 길에서 간간이 윌라로 들은 유현준 교수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이라는 책에서 동서양의 건축이 지리, 기후, 문화가 융합된 것으로 서양 건축은 벽돌이 주로 사용되며 내부는 닫혀있고 외형을 중시하는 형태가 많다한다. 반면 동양 건축은 강수량을 고려해 나무를 많이 사용하고 건축물과 외부 공간이 어우러져 한 공간으로 구성하며 안에서 보는 바깥 공간까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의 화려하면서 압도하는 서양의 성당 외관에 비해 우리의 경복궁은 외부보다는 안에서 밖을 보았을 때 그 진가가 더 드러난다고. 이 책을 들으며 서양에서 이리 화려한 성당, 벽돌집 지을 때 우리는 이리 소박하게 나무로 절과 집을 지었나라는 생각이 부끄러워진다.


마침 이 도시는 부르고스 축제 중이다. 주말인데다가 축제가 겹친 이 도시는 활기로 가득 차다. 온갖 중세 복장의 가족들로 가득하다. 특히 축제로 더 신난 것은 할아버지부터 할머니, 부모이다. 어른이 아이가 되어 중세로 돌아가는 축제. 권위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쾌함에 오랫만의 휴일이 더욱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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