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룰루랄라 Oct 20. 2022

내 배낭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보아딜라 델 카미노에서 캐리온 데 콘데스

끝없는 메세타 지역을 오늘도 걷는다. 초반 길에 비해 사람이 현저하게 준 느낌이다. 아마도 사방이 뚫린 넓은 길이여서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이 구역은 점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이기도 한 듯하다. 한적한 길을 유유자적하며 오늘도 걷는다. 뜨거운 햇살이 어김없이 내 등 뒤에서 떠올라 낮이 되자 햇빛 공격이 시작된다.



길을 걷다 배낭 이동형 수레차가 보인다. 배낭의 무게를 덜 느끼기 위해 스스로 만든 창작물이겠구나 싶다. 그만큼 배낭의 무게는 이 길에서 아주 중요한 방해물이면서도 배낭이 없으면 안 되니 애증의 관계가 된다. 하나라도 더 버릴 것이 없는지 살피게 되지만 결국 욕심은 버리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결국 그 욕심은 나의 몸을 짓누르게 된다. 살면서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배우고 버리고 채우는 연습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비우고 채우는 항목이 다르기에 나는 무엇을 중요시하는 사람인지도 알게 된다. 배낭을 싸고 푸는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느낀 것은 우리는 살면서 꼭 필요한 것 말고도 있으면 좋은 것을 아주 많이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무게를 생각하다 보면 있으면 있으면 좋은 것은 내려놓는 항목이 된다. 샴푸는 꼭 있어야 하지만 컨디셔너는 진작 없어졌다. 잠옷은 있으면 좋겠지만 이곳에서는 낮에 안 입은 옷이 잠옷이 된다. 드라이는 알베르게에 없기에 머리를 감고 자연바람에 머리를 말린다. 한 달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 작은 35리터 배낭 안에  다 들어가는 데 집에는 쓰일지도 몰라 쓰면 좋을지도 몰라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게 한다.



캐리온 데 콘데스에 도착하여 오늘 머물 곳은 주방이 있는 곳이라 밥을 해 먹어보려고 슈퍼마켓에서 스페인식 햇반과 계란, 소시지를 산다. 주방에서 계란 프라이를 하고 소시지를 구워 햇반과 함께 먹는다. 이 단촐한 밥상, 너무 맛나다! 이 때는 몰랐지만 결국 내가 요리라고 한 이 음식에 탈이 나서 3일을 고생했다. 함부로 계란 프라이도 해서는 안 되는 요리 똥손은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변함이 없다.



늦은 점심을 해 먹고 마을을 탐방해 본다. 나름 식당, 기념품점, 약국, 미용실, 은행도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기념품점에 가서 그동안 벼르고 벼른 스포츠 타월과 산티아고가 쓰여있는 버프를 샀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손수건 두 장을 가져와서 타월 대신으로 썼는데 쓰다 보니 아무래도 불편하다. 마침 기념품 가게에 있는 무게도 가볍고 부피도 작은 타월을 하나 샀다. 오후의 강렬한 정면 햇살을 피하기 위한 버프도 하나 골랐다. 비우는 게 중요한 걸  깨닫고는 정작 오늘은 채우기모드라니 우습다.

 


이전 10화 하늘 반 땅 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