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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Oct 21. 2022

여자 혼자 산티아고 안 위험해요?

떠나기 전 "산티아고에 혼자 가도 안 위험할까?"라는 질문이 길을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제주 올레길에서 위험한 일이 있었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시골길에서 만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개다. 시골길에 흔히 보이는 개, 보통은 크고 짖는 소리가 위협적이다. 간혹 주인 없이 버려진 들개라도 만난다면 도망가는 것도 전략을 세워서 가야 한다. 뭐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절대 위협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뒤로 도망가야 한다 등등. 두 번째는 나쁜 사람이다. 사람이 없는 길에서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큰일이다.  떠나기 전 주저하게 만들었던 이 질문에 대해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여자 혼자 산티아고는 내 경험에는 위험하지 않고, 특히 혼자 하는 산티아고 여행은 오히려 강력 추천한다는 것이다.


여자 혼자 산티아고 안 위험해요?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걷고 내가 걷고 있는 프랑스길의 경우, 지금이 한창 성수기이다. 어느 여행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산티아고를 가기 가장 좋은 계절은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봄 또는 가을이다. 그래서인지 9월, 10월의 산티아고 프랑스길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있다. 즉,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 앞으로 뒤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가 있기 때문에 일부 구간은 내가 보이는 공간에서 보면 나 혼자 걷는 경우도 있지만 몇 분 안에 다른 사람이 오는 게 일반적이다. 초반 구간에서 산길을 혼자 걸을 때 조금 오싹한 느낌이 들어 뒷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린 뒤 그 사람 뒤를 따라 걸은 적이 있고, 해뜨기 전 헤드렌턴을 켜고 새벽길을 나섰다가 숲길 구간에서 혼자 걸을 때 역시 비슷하게 약간 무서운 기분이 든 적이 있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 길을 특성을 알고는 그다음부터는 비슷한 경우에도 무섭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많이 걱정했던 시골 개의 경우, 들개는 본 적이 없고, 다들 집에서 키우는 주인 있는 개였다. 워낙에 사람이 많이 지나가다 보니 사람이 지나가도 시큰둥하고 짖지도 않는다. 길에서 본 나를 향해 짖는 개는 도로변을 따라 자전거길로 걷다가 큰 집 앞을 지날 때 펜스 안에 있던 개가 크게 짖었던 게 전부였다. 물론 이건 나의 주관적 경험이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프랑스길은 사람이나 개로 인한 위험은 커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알베르게에서 도난 사건은 종종 있는 듯하다. 길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알베르게에서 샤워를 하고 온 사이 이백만 원 상당의 라이커 카메라가 없어졌다는 얘기는 들었다. 아무래도 공동생활을 하는 알베르게이다 보니 귀중품 관리에는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알베르게가 금액이 높지 않다 보니 여행자로 위장하여 들어와 훔치는 전문 털이범도 있다는 말도 들은 것 같다.  


오히려 혼자 산티아고 여행은 강력 추천한다. 


추천 이유 하나.

산티아고 길은 혼자 걸으며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수많은 생각이 걷는 길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좋은 풍경을 걸으며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는 이 시간이 나는 참 소중했다. 옆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길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추천 이유 둘.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를 수 있고 각자가 편안한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내 경우엔 생각보다 길을 걷는 속도가 느려 스스로 놀랬다.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걷기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구간, 평지 구간에서도 다른 사람에 비해 내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페이스에 맞추어 걸을 수도 있겠지만, 장장 800킬로에 달하는 길을 서로 다른 보폭을 맞추어 걷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추천 이유 셋.

길을 가는 사람과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이 길의 수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나 또한 같이 하고 싶을 때 말을 걸 수 있다. 한동안 같이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다시 각자의 길을 가는 묘미가 있다. 이 길에는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기에 혼자 걷다가 둘, 셋이 되어 걷다가 다시 혼자 걷는 일이 아주 일반적이다.    

 



결론적으로 이 길은 우려와 다르게 내 경우에 혼자라는 게 전혀 위험하지 않았고 생각해보면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훨씬 더 많이 드는 길이였다. 혼자 한 달 이상을 여행하는 것이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될 수도 있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걷고 늦은 오후에 도착하여 빨래하고 샤워하고 저녁 먹고 다음날 준비하는 일정은 외롭거나 심심할 틈이 잘 없고 간혹 찾아오는 외로움도 여행의 일부라 생각된다. 저녁 식사의 경우 많은 알베르게에서 필그림 디너라는 순례자를 위한 단체 디너가 있어, 거기서 다른 순례자들과 같이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재미있는 장이 된다.


혼자 걷는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있게 만나게 되는 나 자신은 혼자 산티아고 여행이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회사 생활로 지친 몸과 정신을 회복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나를 만나는 이 여행, 강력 추천이다.


물론 시간, 돈, 용기가 필요하기에 선뜻 떠나기 쉬운 곳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돈, 용기는 언제 다 쓰겠는가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한번 가보기를, 그것도 혼자 가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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