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학했던 고등학교는 분별반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각자 선택한 과목 시간이 되면 자신이 몇 반이건 상관없이 선택한 수업을 들으러 교실을 옮겼다. 평소에 잘 지내지도 않던 많은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인 셈이다.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들끼리만 모여 수업시간을 유지했지만 분별반 수업이 계속될수록 다른 반 친구들과의 교류도 왕성해졌다.
모든 무리에는 한 명 씨 튀는 친구들이 있다. 분별반 수업 때도 유독 다른 반 친구 중 한 명이 눈에 탁 띄게 시선을 빼앗는 친구가 있었다. 긴 샤기컷 머리에 작은 체구, 별다른 것 없는 귀여운 외모였지만 유독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의 첫 인연이 그렇게 분별반에서 시작되었다.
평소와 같이 그냥 평범하게 수업을 들어간 어느 날. 그 샤기컷 친구는 슬그머니 나에게 다가와 뜬금없이 제안을 던졌다.
"너 아르바이트에 관심 있어?"
솔직히 집안이 그리 넉넉한 편도 아니었고, 용돈이 항상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그 친구의 제안을 솔깃하게 다가왔다.
"어 나 관심은 있는데 고등학생이 할 수 있어?
별다른 왕래도 없던 사이에 어색할 만도 했던 사이지만, 나는 나의 호기심을 빠르게 그 친구에게 내던졌다.
"당연하지! 대신 부모님 동의서가 필요해! 그것만 받아오면 바로 시작 가능해!"
나는 그날 하교 후 바로 엄마에게 운을 띄웠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데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동의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하고 싶으면 해 봐!"
다행히 부모님이 나의 공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고, 돈을 벌어 온다니 웰컴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내가 무엇을 한다고 했을 때 "안돼!"라는 말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고1 때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게 된 곳은 학교 근처 유명한 햄버거 프랜차이즈였다. 하교 후 그 샤기컷 친구를 따라 앞으로 일을 하게 될 가게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좁은 가게였고, 다행히도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나의 첫 임무는 식재료 채워 넣기. 양배추와 토마토를 썰고 빵을 채워 넣고, 고기를 굽는 단순한 일이었다. 나는 이 간단한 일들이 모두 새로웠다. 집에서는 설거지 하나 안 하던 내가 이런 일을 배운다는 것은 몇 주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순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통장에는 월급이라는 돈이 들어왔다. 생에 처음 받아보는 월급이었다. 그 당시 최저시급이 3,000원 대였는데 아무리 많아봤자 몇십만 원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그 돈은 정말 큰돈이었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알라딘의 양탄자와 같은 존재였다.
돈맛을 본 후 나는 아르바이트에 더더욱 열심히 매진하게 되었다. 공부는 뒷전이 된 지 오래였고,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온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재테크와 돈에 대해 열망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
갑자기 아르바이트 시간이 펑크가 나기라도 하면 스스로 지원해서 추가시간일을 하였고, 그 프랜차이즈 내에서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도 모두 신청하여 참여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일 하는 도중에 그 샤기컷 친구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하필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었냐고, 너랑 나랑 아무런 친분도 없었는데 나는 너무 뜬금이 었긴 했었다고. 나의 물음에 그 친구는 아무런 고민 없이 대답했다. 너한테만 물어본 거 아니라고. 그 당시 가게에 아르바이트생이 잘 안 뽑혀 매니저가 나에게 주변에 일할 친구 없냐고 물어봤고 그래서 보이는 친구들 마다 아르바이트 제안을 했는데 네가 처음으로 딱 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그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세상에 모든 일들은 타이밍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말고 다른 친구가 먼저 그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나는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이밍 좋게, 운이 좋게 나는 그 제안을 제일 먼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