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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센토 Sep 03. 2020

하얀 모래밭

@ 섬진강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사실은 그저 2년을 허송세월하다가 3학년이 되는게 덜컥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번거러운 절차를 거쳐 휴학계를 내고 돌아오는 길, 세상은 온통 가능성으로 반짝거렸다.


봄이었다. 밀린 숙제를 하듯 공부를 하겠다는 핑계로 힘들게 부모님을 설득했으나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우연히 학교를 중퇴한 초등학교 동창과 동네에서 마주쳤다. 여행을 떠나가로 했다. 집에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다. 막연히 떠난 여행. 첫날은 비 내리는 부산 바닷가에서 맥주를 한 잔씩 들이켰고, 둘째날은 진주에서 남강과 시내를 방황하다 낡은 여인숙에서 하루밤을 잤다, 셋째날 아침, 지리산을 향했다. 산을 오르고 또 올라도 정상은 켜녕 다시 내려갈 길만 막막했다. 겨우 만난 약수터에서 목만 축이고 하산했다. 히치하이킹을 했지만 학교로 돌아가라는 설교만 잔뜩 듣고 얼마 가지도 못해 내렸다. (차 뒷자석에 그 녀석이 벗어둔 등산화가 있었는데 한 짝이라도 들고 내릴 것을.)


다음날, 섬진강 근처 화개 장터에서 친구가 아는 사람을 만나 알바 자리를 물색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아마 얼마 되지 않는 여행 경비도 거의 다 떨어졌으리라. 세월과 함께 지쳐가는 오래된 슈퍼에서 하드를 하나씩 베어물고 강을 따라 걸었다. 주눅들어 있기에 우린 아직 어렸고, 세상은 아름다웠다. 마침 새하얀 배꽃이 한창이었다. 세상은 온통 연두빛이었고, 하얗고 노랗고 분홍빛이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우리는 강 옆의 작은 모래밭을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그 곳엔 낡은 나룻배가 한 척 매여져 있었고,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듯한 낡은 텐트가 기우뚱 누워 있었다. 우린 그 하얀 모래밭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친구는 텐트 속에서 낮잠을 청했나 보다. 나는 차가운 물에 발을 담구고 낡은 배 위에 앉아 거꾸로 흐르는 강과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문득, 순간이 한참 같았다. 갑자기 코 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생의 모든 순간들을 얼핏 들여다본 것도 같았다.


거꾸로 흐르는 강가의 낡은 나룻배 위에서 내 사춘기의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무엇 하나 심각할 것도 없는데 모든 것이 심각했던 열 여덟살의 봄, 섬진강, 순간이 영원이었다.




그런 순간이 있다. 얼핏 삶의 비밀을 엿본듯한 순간. 어쩌면 삶은 일종의 돌림노래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주제를 변주해서 연주해나가는. 우연히 예전에 썼던 ‘소라고둥 이야기’라는 글의 일부를 읽은 뒤에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올해 내가 쓰고자 선택했던 책의 주제가 그랬던 것 같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계속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 속에서 모호하게 떠다닐 뿐이었다. 그렇게 텅빈 풍경 속을 하릴없이 거닐던 중, 파도가 쓸고 간 자리에 놓여진 소라고둥 껍데기를 발견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저 바다 위를 헤엄쳐 가고 있는 줄 알았더니, 이 작디 작은 소라 고둥 껍데기 안에 머물고 있었구나. 세상 곳곳의 풍경과 함께 떠도는 줄 알았더니 그저 스스로 규정지은 딱딱한 소라 고둥 안에서 자족하고 있을 뿐이구나. 이 좁디 좁은 껍질이 내 영혼의 집이자 세상이었구나.’”


마치 옛날 이야기나 판타지 영화 속에서 마녀의 술책에 빠진 여행자의 무리가 되어 숲 속의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도는 느낌이랄까? 어찌 십여년 전과 지금의 나는 이리도 변한 것이 없단 말인가. 그럼에도 굳이 지금의 나를 위한 변명 같은 위안을 해보자면 이러한 제자리 맴돌기는 평면 상의 원이 아닌 3차원 공간 상의 소라 고둥을 닮은 나선의 여정 같은 것이리라. 


<리틀 포레스트>에서 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집을 나간 엄마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실패한 것 같았다고 적었다. 늘 원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건 원이 아니라 나선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엄마는 말했다.” 



부디 그러하기를. 어차피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고, 살아오면서 이렇게 배선(配線)되고 디폴트 세팅(default setting)되었다. 어차피 이 작고 좁은 집이 내 유일한 감옥이자 단 하나의 탈출구이다. 


자, 여기에 예전의 내가 찍은 점 하나가 있다. 또 여기에 오늘의 내가 찍은 점 하나가 있다. 이 두 개의 점 사이(間)는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여백 속에 내가 있으리라. 그 사이 어딘가에 나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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