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센토 Sep 23. 2020

달의 뒷편

@ Harajuku


거리의 건달 ‘재즈’는 유복한 가정의 요조 숙녀 파샤에게 한 눈에 반한다. 그러나 사회의 통념 상, 무엇보다도 파샤의 부모의 눈에 재즈는 자신의 딸에게 결코 어울리는 청년이 아니다. 부모의 반대로 더이상 파샤를 만나지 못하게 된 재즈는 생각한다. 전쟁으로 파괴된 채 방치된 다리 교각의 한쪽 편에서 다른 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넘어서 세계적 명성을 얻으리라고. 그렇게 신분의 차이를 뛰어 넘어서 사랑을 되찾겠노라고. 


오토바이를 타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음에도 재즈의 점프는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그의 사랑을 향한 도약은 죽음을 향한 추락으로 막을 내린다. 




어딘가 익숙한 플롯의 위 이야기는 폴란드 작가 휄레의 ‘첫사랑’이란 소설의 짧은 줄거리이다. 오사와 마사치는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란 책에서 이 소설을 인용하며 일반적인 통념처럼 사랑이 만약 “나라는 동일성이 타자라는 차이성과 완전히 등치되는 관계”가 되는 것이라면, 즉 내가 네가 되는 것이라면 사랑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라는 동일성(아이덴티티)을 지닌 하나의 우주는 ‘너’라는 타자와의 차이성에 동화되는 순간,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함에도 영원히 너와 내가 하나는 될 수 없다’는 조금은 서글픈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굳이 "창이 없는 모나드(windowless monad)”라는 오래된 철학자의 개념을 빌리지 않는다 해도 살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우리는 결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대부분 오해할 뿐이라는 것을. 더 나아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도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그렇게 자기 자신이란 좁은 세상에 갇혀 있음을. 


저 밤하늘 환한 달의 뒷편을 볼 수 없듯이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다. 나는 너를 오해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한다. 대체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당연하다는 듯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아마도 사랑은 지구와 달이 대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는 흔적과 몸짓 같은 것일테니.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우리의 몸이 따뜻해지듯이 오직 사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존재하는 어떤 것일테니. 


그러니 바보같은 철학 따위는 집어치우고, 사랑을 하자. 어차피 달은 조금씩 지구에 가까워지고, 언젠가는 지구도 거대한 태양과 함께 우주의 한 줌 먼지로 사라진다. 



작가의 이전글 너와 나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