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sakusa
그녀의 손을 놓쳤다. 아니, 그녀가 내가 잡은 손을 빼고 저만치 앞서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될 도심의 거리는 혼잡했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불꽃놀이를 보기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지정된 관람 장소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 경찰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그녀는 군중들 틈으로 이미 사라졌고, 내 온 몸은 습도 높은 한 여름의 열기로 땀범벅이 되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저 멀리서 두둥, 하는 폭음과 함께 낮은 저녁 하늘 위로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 올랐다. 여름밤의 꿈처럼 가을의 예감인듯 불꽃놀이는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뒷사람들에게 어딘가로 끝없이 떠밀려가느라, 밤하늘을 끊임없이 수놓는 불꽃은 나무와 사람들에 가려 보이다 보이지 않다 했다. 혼잡한 군중의 어깨 너머로 그녀를 찾느라, 또 가끔 사람들의 함성에 이따금씩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누군가 다시 내 손을 잡았다. 허탈함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혼란스러운 여름 밤, 다행히도 아직 불꽃놀이는 끝나지 않았다.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체 시작이란 무엇인가? "<설문해자>에 따르면 시始는 여지초女之初, 즉 ‘여자의 처음 상태’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로 처음(初)를 말하는가? 처음(初)은 또 옷감과 가위가 합쳐진 글자이다. 여자가 옷감을 자르려고 가위를 대는 작업이 바로 ‘처음’의 의미이다.”*
철학자 최진석의 설명에 따르면 가위와 옷감이 만나는 순간, 갈라지는 틈이 생기는 찰나, 즉 그 교차점이 시작이다. 가령 100m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선수들은 ‘제자리에(On your mark) - 차려(Set) - 출발(Go)’란 신호와 함께 출발하게 되는데 이 때 ’탕’이란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달리기’ 사이의 어떤 순간이 시작이다. 서로 다른 성질과 상태, 질감, 형태, 느낌을 지닌 무언가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시작이란 어떤 완성된 형태를 지닌 구조물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길바닥의 갈라진 틈새, 시간의 엇갈림, 일상의 균열과 같이 미묘하고 사소한 것이다. 어쩌면 한여름 무더위가 한창인 8월 초저녁, 가을의 예감처럼 목덜미를 스치는 한줄기 서늘한 바람과 익숙한 세상살이에 잊혀졌으나, 제 안의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문득 터져나온 빨간 석류 알갱이 같은 욕망과 한바탕 진눈깨비가 흩뿌리기 전 잔뜩 찌푸린 하늘에 가까운 것들이다.
시작은 어떤 예감과 함께 다가온다. 만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면 이 글들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저기 끄적인 글들을 모아 하나의 형체를 부여해보리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이 노트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 무언가는 그렇게 시작된다. 여기와 저기 사이의 낮은 목소리에서, 작은 조짐들**과 가슴 떨리는 어떤 예감으로부터 어렴풋이. 그렇게, 그렇게. (우연과 필연으로)
*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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合抱之木(합포지목) : 아름드리나무도
生於毫末(생어호말) : 아주 작은 싹에서 나오고
九層之臺(구층지대) : 구층 높은 누각도
起於累土(기어루토) : 한 줌 흙이 쌓여 세워지며
千里之行(천리지행) : 천릿길도
始於足下(시어족하) : 한 걸음 발 밑에서 시작된다.
- 노자, <도덕경> 64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