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세상에 분노하곤 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화가 났다. 삶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남 탓, 구조 탓, 세상 탓으로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백남준의 인터뷰*를 읽은 뒤에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나름의 '지하 배출구'를 만들고, '작은 구멍을 찾는' 일이리라. 생각해보니 나는 부조리한 세상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등 돌린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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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안에서 일하면서 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많은’ 좌절이었다. 그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으면, 나는 싸우지 않았다. 한바탕 고함을 지르고는 거기서 나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서 내 기분이 풀릴 만한 멍청한 짓을 하고 했다. 다시 그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하 배출구는 나의 안전금고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엉터리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좋았다. (....) 내 일은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면서 손가락을 비집고 집어넣어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작은 구멍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부패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 백남준과의 인터뷰, 캘빈 톰킨스, “프로파일: 비디오 공상가”에서, 뉴요커,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