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buya
‘윌리 로먼’은 늙은 세일즈맨이다. 한 때는 꿈이 많고 잘 나가는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나 삶은 늘 꿈과는 달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한평생 집세를 치르느라 죽도록 일하고 나니 남은 건 주변의 고층 아파트에 가려 어둡고 좁은, 그나마 월부금도 채 갚지 못한 집 한채 뿐이고, 늘 커다란 두 개의 검은 가방을 들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녔지만 다 늙어서 돌아오는 건 회사의 푸대접 뿐이다.
그에겐 린다란 착한 아내가 있었으나 낯선 길 위에서는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기도 했고, 한 때 그에게 큰 기쁨이었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두 아들은 언젠가부터 빗나가기 시작해 지금은 허송세월로 젊음을 허비하고 있다. 예순 셋의 그에게 끝없이 떠돌아야 하는 ‘지방 외근직’은 더이상 무리라는 판단에 용기내어 아들 뻘의 사장에게 내근직을 요청해보지만, 돌아온 것은 ‘그저 세상이 그런 겁니다’란 수모의 말과 함께 딸려온 해직 선고이다.
젊은 날 형과 함께 알래스카로 금광을 찾아 떠나고 싶었지만 훌쩍 떠나지 못한 채 직장인의 월급 봉투와 안정적인 가정 생활을 선택했던 세일즈맨 윌리는 인생의 마지막 모험으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미국 전역에서 지인들이 몰려들 거란 그의 허무한 공상과는 달리 초라한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유일한 이웃 친구 찰리 뿐이었다. 집을 산 지 이십 오 년이 되는 해에 드디어 마지막 월부금을 갚았지만 이제 그 집 주인은 땅 속에 묻혔다. *
‘생활의 달인’이란 TV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 그대로 생활 속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그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생활의 달인? 수십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 삶의 스토리와 리얼리티가 담겨 있는 생활 달인은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 비록 소박한 일이지만 평생을 통해 최고가 된 생활 달인의 놀라운 득도의 경지를 만나는 시간.”
시청자들은 이 프로에 등장하는 ‘생활의 달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우선은 물론 방송의 기획 의도대로 지루하고 고된 노동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그들에 대한 감탄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 이런 불순한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저렇게 힘든 일을 평생 하려면 저 정도의 작은 즐거움은 필요한 거겠지.” 자신은 쾌적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으니 저렇게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안도감과 함께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눈빛 같은.
과연 ‘생활의 달인’들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처해있는 환경이 크게 다른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다. 어쩌면 ‘경영’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과학적 관리법’의 테일러의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바뀐 것은 겉포장에 지나지 않을 지 모른다. 온 몸을 후려치는 채찍이 없으니 자신이 시간 계약으로 묶여 있는 신분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되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가 보이지 않으니 시시포스처럼 끝없이 돌을 밀어올리고 있는 자신의 소모적인 현실을 자각하지 못할 뿐일지도.
자본주의는 우리를 ‘경쟁’과 ‘분업’으로 훈육시킨다. 만약, 그 어떤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해도 업무가 회사가 규정하는 직무 범위와 업무 분장의 한도 내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전문가’가 아닌 조직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어떤 분야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 일했다고 해도 자신이 창조한 것이 아닌, 회사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저당 잡힌 시간에 대한 - 자유를 상실한 대가로 보수를 받고 있다면 당신 또한 나와 같은 노예일 뿐이다.
자신의 ‘삶의 정의’를 창조해내지 못하고 그저 세상이 시키는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서, 정해준 곳에서 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집에 돌아 간다면 - 어느 날 “세상이 그저 그런 겁니다”란 말과 함께 우리를 둘러싼 연극 무대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마치 뉴욕의 늙은 세일즈맨 윌리 로먼에게 세상이 대했듯이,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주 쿨하게 말이다.
*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의 짧은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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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틈이 있다. 우리는 그 틈새를 보고 만다. 그리고 삶은 달라진다." - 알베르 카뮈, <시지프스의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