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kohama
우리는 과연 사랑했던 것일까. 새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흘러간다. 투명한 탄산수처럼 톡 쏘는 바람 한줄기가 목덜미를 스치던 어느 초여름, 나는 미처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너를 사랑한다 말했지. 팔꿈치와 팔꿈치가 맞닿고, 처음으로 네 손을 잡은 그날, 우린 서툰 몸짓으로 서로를 껴안았고, 네 입술에선 생전 처음 맛보는 향긋하고 도톰한 과일 향이 났다.
사랑이란 것이 낯설었던 우리는 늘 부딪히기만 했구나. 무심코 가슴팍을 치고 가는 거친 행인들처럼 무신경하게 서로를 할퀴고 상채기를 내고, 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네 정강이의 푸른 멍망울은 눈치채지도 못한 채 사랑한다 말했구나. 막무가내의 투박하고 서툰 열정에 너는 수시로 목이 메였겠구나. 보이지 않는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듯 불편했겠지.
대체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던 것일까. 어쩌면 아무 상관 없었을텐데. 가야할 목적지 따위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의 걱정 따위는 (미안하지만) 보노보노와 너부리에게나 줘버렸으면 좋았을텐테. 왜 우리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을까. 사랑이란 건 원래 낯설고 서툰 것일텐데 어딘가에 정답이라도 있는 양, 어설프게 누군가의 흉내를 내느라 눈부신 여름을 허비했구나.
여름에서 가을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던 어느 날, 우리는 서로에게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 가소롭게도 어렸던 우리는 어른이라도 된 양 비겁한 사랑을 나누었고, 짐짓 쿨하게 이별의 포즈를 연기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보잘것 없고 어딘가 서러운 어른이 되었다.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벌써 한여름이 지나갔다. 모든 것을 자꾸 뒤로 미루고만 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인데,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하는 철학자들처럼, 천년 만년 살것처럼 내일을 걱정하는 애늙은이처럼 말이다.
가을이 오면 어설픈 풋사랑을 떠나보내듯 새로운 시작을 해야겠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남들 흉내를 내면서 살았으니, 이제 스스로 제 영혼에 걸맞는 몸짓과 스타일을 찾아보려 한다. 사랑이 언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에 우리 가슴 속에 ‘포르르’ 날아 들듯이, 저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일 또한 그런 것이리라.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랑이란 누구나 낯설고 서툰 것이란 걸 알았으니, 다른 사람의 흉내 따윈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
마르크스가 <경제 철학 초고>에서 말하듯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그대는 인간을 인간으로서,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와만 등으로 교환할 수 있”어야 할게다. 비록 돈으로 인간을, 돈으로 사랑을, 돈으로 신뢰를 포함한 그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 각자가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모든 만남과 나눔이 서로에게 찬란한 기쁨과 슬픔이 될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사랑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노력과는 별개인 채로, 여전히 차가운 실존의 문제로 남겨져 있을테지만 말이다.
*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 칼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11>
** 칼 마르크스, <경제 철학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