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눈

@ 에메랄드 시티

by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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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모스Polyphemos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과 님프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눈박이 거인족인 키클롭스답게 엄청난 힘을 지닌 그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습성을 지녔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시칠리아의 님프 갈라테이아를 짝사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갈라테이아는 폴리페모스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인간인 아키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날 두 연인이 해변에서 웃고 떠드는 것을 본 폴리페무스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바위를 들어 아키스를 내리쳐 죽였다. 겁에 질린 갈라테이아는 바다로 달아났다.


이후 그는 다른 키클롭스와 떨어져서 혼자 동굴에 살면서 양떼를 키우며 살았다. 외눈박이였던 그의 눈에는 오직 자신의 사랑만 보였고,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감정 만이 전부였다. 자신의 행위에 한치의 뉘우침도 없었던 그는 이따금 분풀이 삼아 섬을 지나가는 배에 바위를 집어 던지곤 했다.




눈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도구이다. 그만큼 익숙한 감각 기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보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마치 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대체 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헤엄쳐 오는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와 마주친다. 그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 얘들아? 물은 어떠니?(How’s water?)” 어린 물고기 두 마리는 잠깐 동안 헤엄치다,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한다. “대체 물이 뭐야?(What the hell is water?)” *


우리는 (시력 검사를 하거나, 한쪽 눈을 다쳤을 때를 제외하고는) 보통 두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 이는 두 개의 눈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뜻이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하나의 ‘올바른’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어릴 때 간혹 하는 장난처럼 한 쪽 눈을 번갈아 감으면서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바라보면 알 수 있다. 대체 어느 쪽 눈으로 본 손가락이 ‘올바른' 위치에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처럼 불완전한 두 눈의 ‘시차’ 때문에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보다 정확하게 거리를 파악할 수 있다. 두 개의 눈을 통해 시신경에 맺힌 불완전한 영상을 두뇌가 결합하여 하나의 입체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나를 알려면 둘이 필요하다”는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말처럼 하나를 보기 위해선 두 개의 시각이 필요하다. 두 개의 눈(A와 B)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차원(AB)을 획득하게 된다. 허나 보통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산다. 폴리페모스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하나의 눈(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거나,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것을 깜빡한 사람처럼.


에메랄드 시티에서 도로시는 오즈에게 묻는다. “하지만 여기선 모든 것이 푸른색인데?”

“그 어느 도시보다 푸르지.” 오즈가 대답한다. “하지만 푸른색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이기 마련이지.”


철학자나 과학자, 예술가는 아마도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자주 두 개의 눈 -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를 활용하는 이들일게다.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있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하듯이, 세상을 새롭게 보기 위해선 더 많은 창과 문이 필요하다. 더 많은 빛과 어둠이 필요하다.




*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 2005년 케니언 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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