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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un 05. 2018

다시 웃을 어머니를 위하여

윌 퍼렐 주연의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


사래가 걸릴 만큼 크게 웃고 싶었습니다. 문득 빙상 위를 웃음으로 가득 채웠던 환상의 듀오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거야!’ 기상천외한 그들이라면 가능할지 모릅니다. 


지미(조 헤더)와 채즈(윌 페럴)는 남자 피겨 스케이팅 계의 최고 스타이자 라이벌입니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맞붙죠. 한 명은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력을 내세우고, 다른 한 명은 파워풀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만큼 쌍벽을 이루며 극과 극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화려한 연기 대결을 펼친 둘은 공동 우승을 차지하죠. 하지만 앙숙인 그들은 그 결과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도가 지나친 장외 경쟁을 벌이고, 끝내 큰 사고를 치고 맙니다. 스포츠 정신 따윈 망각한 그들은 선수 자격이 정지되고 퇴출당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경기에 나설 수 없는 그들은 이제 별 볼 일 없는 패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그들이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기똥찬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페어 스케이팅 선수로 출전하는 것입니다. 페어 스케이팅 출전 자격이 정지된 건 아닙니다. 페어 스케이팅에 꼭 남녀가 짝을 이루어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겨계의 물과 불, 앙숙의 라이벌이지만… 만약 최강(으로 유치한) 실력자인 둘이 의기투합한다면 못 이룰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도 성공시킬 수 없을 고난도 기술도 구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 비현실을 구현할 수 있는 건, 철천지원수 지간인 둘이 과연 한 팀을 이룰 수 있느냐에 시선이 분산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한 그들은 정말 그 기똥찬 아이디어를 받아들입니다. 선수가 시합에 나설 수 없는 건 아무리 증오하는 상대보다도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이제 다시 세계 최고를 향해 달리는 그들은 꿈을 위해 비장의 필살기를 연마하기 시작합니다. 



피겨 스케이팅 소재의 영화니 보기 전까진 언뜻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상당한 실례라 이내 부끄러워집니다. 가끔 전 생각만으로 스스로 부끄러워집니다. 경쟁을 넘어 암투로 번진 걸로 보자면, 차라리 막장에 가까웠던 미국 피겨스케이팅 스타 낸시 캐리건과 토냐 하딩의 사건을 떠올리는 게 맞을 듯합니다. 혹 은근한 위트와 고급스러운 유머를 기대한다면, 단연코 그런 건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웃길 뿐 어떤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굳이 의미를 간추려 보자면… 빙상 위의 실패한 인간들의 절박한 몸부림이랄까… 그만큼 영화는 한없이 유치하고, 유머의 형태는 직설적입니다. 노골적이다 보니 일면 호불호도 갈릴 만합니다. 만약 세상의 유치함에 에베레스트가 있다면, 이 영화는 그 최고봉에 오를 영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야말로 원초적 웃음의 향연이 스크린 앞에 펼쳐집니다.  


대신 미치도록 웃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분야에서 난 영화, 드문 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사실 제 경우엔 꽤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신선하고도 유쾌한 발상은 주목할 만합니다. 앙숙인 두 남자의 페어 스케이팅이라는 설정은 강력한 훅을 날립니다. 파워풀한 남자와 섬세한 남자의 조합이니 이 두 남자의 끈끈한 이야기 또한 하나의 브로맨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난관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스포츠 영화 특유의 재미도 살아있습니다. 초지일관 웃음을 유발하며 그 매력을 유지하니 완성도 역시 높습니다. 복잡한 생각일랑 버리고 웃고 싶으면 기꺼이 다시 꺼내어 볼 영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 꼭 의미나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별 재미가 없네…”  

어느 날,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어머니께서 흘리듯 말씀하십니다. 고단한 삶 속에 많은 즐거움을 포기하셨습니다. 연세가 드시며 즐겨 읽던 책을 내려놓고, 좋아하던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마음껏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본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많은 즐거움을 포기하셨지만 그래도 아직 영화만큼은 즐겨 보십니다. 그러자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확신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과 보기엔 좀 곤란한 영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어머니는 웃으셨습니다. 오랜만에 크게 웃었습니다. 저도 다시 웃었습니다. 사래가 걸릴 만큼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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