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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Mar 20. 2019

많이 바쁘신 거겠지

소원

양양 낙산사


소원을 빕니다. 손을 모으고 정중히 허리를 숙입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그랬습니다. 오늘처럼 똑 같이…


작년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만하면 들어주시지… 외면한단 생각에 문득 울컥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벌써 몇 해는 이곳에서 소원을 빈 까닭인데, 내년부턴 장소를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합니다.


사실 소원이 이뤄지지 않은 건 본인 탓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소원을 빌어두면 일 년에 하루쯤 소원 들어주지 않은 남 탓을 하며 투정 부릴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 또한 결국 내 탓으로 돌아오는데, 좀 더 허리를 숙이지 않은 탓인지, 두꺼비 턱이 아니라 머리를 잘못 쓰다듬었는지, 혹 보시가 너무 적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행복도 성적순이 아니라던데 설마 소원이 보시 순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인지상정 푸짐하면 마음이 더 갈 것도 같습니다. 만 원짜리 소원에 말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살이 이런저런 투정 늘어놓으며 단돈 만원도 나쁘진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소원수리도 예삿일은 아닌 것을. 매년 그 많은 소원을 듣는데 언제 다 들어주시려나…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일 년 삼백육십오일 모자라 밀리고 치이다 보면 대신 맨이라도 써야 하는데, 그 비용 만원에 퉁 치려면 대신 오체투지라도 여간 정성 없인 안 되겠습니다.


뒷걸음을 쳐 나오는데,  그런 딴생각에 그만 소원 비는 걸 깜빡합니다. 아! 

다시 전진해야 하나 싶다가 어쩜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심전심, 작년과 이하동문. 아직 지난 소원의 먼지도 가라앉지 않았는데, 이중부정은 긍정이듯 소원에 소원을 더하면 소원도 없어질지 모릅니다. 같은 소원수리 자꾸 들어오면 도리어 언짢아집니다. 아무것도 소원하지 않고 소원을 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아무쪼록 별 대수로운 소원은 아닌데 응답이 길어지시는 걸 보니, 이런 생각 해봅니다. 

아마도 많이 바쁘신 거겠지. 너무 많이 밀려 그러시겠지. 이르면 내년이나, 아니면 내후년 즈음에라도 들어주시려나…


그 복을 감히 받을 자격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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