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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ul 16. 2019

르상티망

제주 애월 팩토리 스토리


한참 언쟁이 이어지다가 친구가 말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네가 이렇게 ‘화’가 많은 이유는 당해서 그런 거야. 


무슨 도사라도 되냐며 노려보다가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얼마 동안 좀 괴로운 시기가 있었고 그때부터 화가 쌓였습니다. 순간은 모면했고 그 시절도 결국 지나갔지만, 버둥거리는 사이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못했습니다. 미처 풀지 못한 그 화가 한계에 달해 결국 폭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친구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합니다. 


이게 다 그래서 그런 거란 말이지? 

응, 르상티망.

늘상… 뭐?

르상티망. 원한과 증오 그리고 질투 같은 감정이 마음속에 쌓인 상태. 다들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만, 나은 게 나은 게 아니에요.


르상티망… 나은 게 나은 건 아니다… 그럴싸합니다. 그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멋진 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캥거루 같죠. 말 펀치가 좋은 캥거루입니다. 사실 언젠가 비슷한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맺힌 사람들에 대한 심리학자의 진단이었죠. 


정확히 말해 모두가 그런 고난의 시대를 겪은 건 아니지만, 그건 핏속에 유전자처럼 계승되어왔어요. 모두 잘 되어갈 때는 괜찮아요. 달콤함 속엔 관대함이 살아있죠. 누군가 누구를 비난하고 증오하는 일은 드물고, 양보하고 화해하며 화를 누그러뜨릴 줄도 압니다. 간혹 모난 부분이 있어도 예외로 치부했고요. 적어도 겉으론 괜찮으니, 요즘엔 그때가 아직 인정이 살아있던 시절이라며 그리워하기도 해요. 하지만, 결국 화는 되돌아와요. 마치 부메랑처럼… 


권상우의 사랑만 되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동네 약사의 충고가 떠오릅니다. 전 친구보다 캥거루 주머니가 비좁습니다.


일단 지금은 급히 처방하는 거니까, 내일 꼭 병원에 가보세요.


꼭 병원에 가보라는데,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냥 상처일 뿐이고 겉으로 곧 멀쩡해졌으니까요. 하지만 속은 모릅니다. 그건 일시적인 처방이었을 뿐입니다. 꼭 외상 후유증 같기도 합니다. 상처의 근원을 치료하지 못한 까닭에 표면 아래 머물던 분노가 언제 어떻게 마그마처럼 분출될지 모릅니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진 말을 뱉어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 것입니다. 친구는 제 마음을 읽듯 말합니다.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할 수 있어야 하듯, 아픔도 마찬가지야. 

전 또 시작이란 생각에 비꼬듯 대꾸합니다.

그런데 왜 르상티망이야?

그냥… 있어 보이잖아.

또 짜증 낸다. 그것 봐 지금도 잔뜩 화가 나있잖아. 


무엇으로 우리의 화를 달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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