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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an 30. 2024

수취인 미상의 고백 _못 읽는 사람의 편지  難讀症


  언제부턴가 당신은 읽기가 어려웠다.

  글을 읽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이미 지나간 부분을 다시 읽고 있었다. 방금 읽었지만 읽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정말 읽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한 나머지 어떤 글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니 질식할 것만 같았다. 더 버티기가 어려워진 당신은 어릴 적부터 다닌 동네 소아과를 찾아갔다. 의사가 말했다.

  “이건 여기서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심해지면 다른 곳을 가봐야…….”

  다른 곳이란 아마 ‘거길’ 말하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그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노력해 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도 링거를 한 대 놓아주었다. 만병통치약처럼 항상 링거를 놔주던 의사였고, 신기하게 늘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증상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렇지만 선뜻 ‘거길’ 가긴 꺼려졌다. 낙인처럼 한번은 영원이 될까봐. 그래서 당신은 미로와 같은 행간의 혼란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

  읽지 못하는 당신은 멍하게 공상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공상은 당신이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비상구. 다만 공상만으로 버틸 순 없었다. 살며 읽어야만 할 글들의 행간에 멈추어 섰고, 용케 다음 행으로 넘어가더라도 공상을 거치는 사이 글의 내용은 변질되었다. 당신은 읽다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바로 읽지 못한 글들이 당신 앞에 무수히 쌓여갔다.


  한편 언제부턴가 당신은 쓰기 시작했다.

  쓰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몇 페이지가 가득 차 있었는데, 읽지 못하는 사람도 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은 편지를 쓰게 되었다. 읽지 못하는 사람의 편지를 누군가 읽는 상상을 했던 까닭이다. 보낼 만한 상대가 마땅치 않아 처음엔 수취인 미상의 편지였는데, 다 쓰고 보니 누군가를 향한 흑사병 같은 러브레터가 되어 있었다. 누가 보면 손이 오그라지며 얼굴이 달아오를 내용이었다. 증상 러브레터, 발병 원인은 아마도 외로움, 부작용은 끝 모를 부끄러움. 물론 썼지만 읽기가 어려운 당신은 그걸 알 리 없다. 다만 링거보다 효과가 있어 무언가 후련하게 숨통이 트이며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쓰기만 했어야할 편지를 정말로 부치고 말았다. 편지를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 졸업 앨범에서 찾아낸 주소를 적은 뒤, 빨간 토끼굴 속에 넣어 버렸다. 정말이지 무모한 행동이었고 넣자마자 후회했지만 토끼굴은 이미 입에 넣은 편지를 뱉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경우 망신을 좀 당할 뿐 세상이 무너질 일은 아니니까.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해.’

  읽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 줄씩 읽어내는 거라고. 그러자 어쩐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아직 작은 힌트를 얻었을 뿐, 읽으려면 신경이 곤두섰다. 그래도 희망이 보였다. 그때부터 당신은 읊었다.

  “완벽할 수 없어, 뜻대로만 되진 않아. 그래봤자 몇 줄 놓치는 거니까 그냥 계속 읽는 거야, 돌아가지 말고.”

  그건 행간의 혼란에서 빠져나오는 자기 주문이었다. 신기하게도 통했고, 증세는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 여전히 잘 읽어내지 못하고 가끔 이미 지나간 부분을 다시 읽곤 하지만, 그래도 읽을 수 있었다.


  추신

  편지의 답장이 왔다. 내용은 간략했다.

  상대는 한 번도 당신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편지, 좀 부담스러워.


  그렇구나……. 아무쪼록 당신은 상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그런 편지를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하므로 답장의 답장은 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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