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당신에게 그랬다. 희망을 보았고 꿈을 가졌다.
다만, 창문을 열면 상쾌한 공기와 함께 먼지가 스며드는 것처럼 그곳은 당신에게 시련을 주었다. 날것의 적나라함, 짓누르는 부담감, 갈등과 주저, 거듭되는 근심의 예습과 복습, 자포자기의 유혹…… 또한 그곳에 있었다.
언젠가부터 마음 한 구석에서 뚝뚝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서 무언가 이루려던 당신은 그곳을 추구했지만,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흐름을 거스를 수 없던 당신은 실패 앞에 무력했다.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 당신은 조각 모음을 하듯 자신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조바심을 내며 욕심을 부렸다. 돌이켜 보면 우연히 발을 디딘 그곳이었다. 깊이 알기 전에 추앙했고, 그걸로는 고비마다 좌절할 뿐이었다. 당신은 늘 불운하다며 절규했지만, 한번쯤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당신은 고집이 셌다. 매사 딱딱하게 부딪치며 부러졌다. 그럴수록 그곳에서 멀어질 뿐이지만, 당신은 대신 환멸에 빠졌다. 악랄한 속삭임이 귓가에 들렸다. ‘다 틀렸어. 그만 포기해.’ 혼령 같은 불안한 마음에 휩싸였고, 지금껏 당신을 지탱해온 모든 게 불완전하게 해체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콤한 꿈의 현실은 쓰디쓸 뿐이라며 당신은 푸념했다.
한편 당신은 음흉해졌다. 확신 대신 의문, 선명함 대신 흐릿함…… 연민에 기대며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볼 여지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문제가 사라지진 않았다. 당신은 머지않아 타는 것 같은 갈증을 느꼈고, 무언가 절규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순간과 마주했다. 당신 안의 모든 걸 꺼내어 다 던져 버리고 싶어졌다.
아직 가슴 한편에 그곳에 대한 미련이 남아 버텨 보자는 내면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그건 그때뿐이었다. 지구력이 부족한 달리기 선수의 허덕임에 불과했다. 그처럼 남은 틈새에 힘겹게 매달려 흔들리는 사이, 당신의 삶은 현재 진행형으로 피폐해져 갔다. 기억하는 것이 해롭고, 그리워하는 것은 아팠다. 하지만 되돌릴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당신은 꼭 한 번 꿈에서 아샤를 보았다. 문을 열자 아샤가 있었다. 얼굴이 분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당신은 그게 아샤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샤가 말했다.
“괜찮아, 다시 한 번 가보자.”
하지만 당신의 가슴속엔 이미 많은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그곳의 문을 열었을 땐, 열린 문틈으로 쏟아진 빛만이 당신을 반겼지만, 이젠 그때와 달리 빛이 닿지 않는 음영 속에 당신은 머물렀고, 그리하여 떠안은 어두운 그림자를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지금껏 애썼지만 이제 깨끗이 돌아서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 까닭에 주저하며 대답을 망설이자 꿈속의 아샤는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밝게 미소를 지으며 이별의 악수를 청했다.
“그럼, 잘 있어.”
한때 놓고 싶지 않았던 그 손을 맞잡으며 당신도 말했다.
“너도.”
몇 초인가 기억에 각인될 만한 순간이 지나갔고, 마침내 돌아서 묵묵히 걸어 나오는 사이, 등 뒤로 작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 꿈속에서만 살 순 없잖아.”
위무하듯 내뱉은 당신은 그곳이 아닌 곳으로 향했다. 그제야 알 듯했다. 처음 그곳에서 본 ‘희망’은 이제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