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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Mar 08. 2024

_마지막 연기


  어느덧 당신은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도심에서 떨어진 바닷가였고 주어진 일과 외엔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산책삼아 오가는 길에 잠시 멈춰 서서 바다 풍경을 감상할 뿐이었다. 가끔 삶이 헛하게 느껴져도 마음은 더없이 편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멍하니 해질녘 바다를 바라보는데, 누군가 곁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 대 피울까?”

  위층 선배였다. 소속은 다르지만 이래저래 얼굴을 자주 보았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붙을 붙이더니, 당신에게도 한 개비를 권했다. 당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모처럼의 선의(?)를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선 그런 인간적인 순간도 드물었다.

  선배는 굳이 피우지 않아도 된다는 제스처를 보였지만, 당신은 그대로 받아 물고 불을 붙였다. 무심결에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한참을 콜록 거려야 했다. 처음 피워 본 것인데, 그냥 촛불처럼 들고 있는 편이 좋을 듯했다.


  그날 선배는 뜬금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편모슬하에 자라 일찍 어른이 되었고, 어렵사리 학비를 벌어 공부한 끝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당신처럼 곱게 자란 사람이 거들 말은 없었다. 당신의 이야기는 값싼 추임새나 어리광 정도로 보일 듯했다.

  그래서 그냥 듣고만 있는데, 그마저도 조심스러운 건 이야기가 어느덧 꽤 심란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는 선배의 말이 배경음악의 가사처럼 귓가에 들려왔다.

  그런 속내를 털어 놓을 만큼 당신을 잘 알거나 의지할 만해서가 아니었다. 아마도 주위에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여긴 모든 게 비교며 경쟁이었다. 그런 엄혹한 분위기는 당신도 느끼는 바, 누군가는 잘 버텨냈지만 누군가에겐 무척 외롭고 고된 일일 듯했다. 그나마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여기에 이른 당신은, 비록 대화라기보다 독백에 가까울 지라도, 아무 조건 없는 고해소가 되어줄만 했다.

  “……그래서 이제 그만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더라.”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전되는 사이, 당신은 까마득한 하늘에서 눈을 떨어뜨려 별빛이 쏟아지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밤인데도 수평선은 유난히 밝았다. 그것이 당신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별빛이 저렇게 낮은 곳에서 빛날 순 없을 텐데…….

  흘끔 돌아보니 착시인지 선배의 눈가도 어느새 투명한 빛으로 촉촉해져 있었다. 그러며 또 한 개비의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데, 그 모습이 유독 슬퍼 보였다.

  이제 선배도 말없이 당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데, 괘씸하게도 수평선은 아름답게 빛났다. 당신이 물었다.

  “왜 저렇게 밝은지 아세요?”

  “글쎄.”

  그러더니 선배는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그만 가봐야겠네.”

  당신의 촛불은 진작 빛이 사그라진 뒤였다. 선배가 가고 당신은 좀 더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 주변엔 한 가지 음울한 소문이 돌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누군가가 파도에 휩쓸려 갔고, 한참이 지나서야 어느 해변의 바위틈에서 발견되었다는 얘기다. 경찰이 찾아왔다고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 누군가가 해고되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렸지만, 어디까지나 떠도는 소문일 뿐이었다. 다들 쉬쉬했다. 사람 사는 곳이 그렇듯 어디든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여긴 누군가의 죽음 앞에 유난히 침묵했다.

  이후로도 당신은 가끔 같은 자리에 서서 밤하늘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담배를 태우는 일 또한 없었다. 간혹 수평선이 유난스레 빛날 때면, ‘여기가 선배의 그곳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했지만, 더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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