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채 Apr 09. 2024

다시 꿈꾸며 _정신이 들어?


  꿈속에서 당신은 꼬맹이 시절로 돌아가 있다. 마더를 따라 집을 나섰다가 잠시 한눈을 팔았는데, 그만 뒤처지고 말았다. 부랴부랴 “엄마!”하며 쫓아가 눈앞의 손을 잡는데, 깜짝 놀라 돌아보는 얼굴은 마더가 아니다.

  “얘야, 난 네 엄마가 아니란다.”

  순간 낯선 여인과 당신 사이에 머쓱한 눈길이 오간다. 당신은 잡았던 손을 뿌리치며 도망친다. 다급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진짜 마더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망연자실하며 주저앉자 누군가 다가와 길을 잃었냐고 묻는다. 당신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다시 일어나 그 자리를 벗어난다.


  악몽은 이어진다. 마더를 찾는 일은 포기한다. 이렇게 된 이상 혼자 집에 가야 하지만, 갑자기 길이 헷갈린다. 늘 오가는 길인데, 항상 마더의 손에 이끌려 다닌 탓에 기억에 혼선이 온다. 눈앞으로 아파트 숲이 펼쳐진다. 모두 비슷비슷한 모양새…… 결정적으로 동호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도움을 구할 생각은 없다. 혼자 찾아가야만 한다.

  당신은 숲속을 표류하듯 한동안 헤맨다. 잔뜩 긴장해 자꾸만 가슴이 쿵쾅댄다. 그래도 용케 울음을 터뜨리진 않는다. 속으론 이미 한바가지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꼬맹이답지 않게 체면을 지키려 한다. 때문에 눈앞에 경비원이 지나가도 딴청을 부린다. 누가 다가오면 오히려 눈물 꼭지가 돌아갈 것 같다. 그럴 수 없다. 길 잃은 아이가 되고 싶지 않다.

  어림짐작 아무 동에나 들어가 본다. 위치와 형태에 대한 어렴풋한 감에 의지한다. 복도식 아파트라 아래층부터 계단을 오르며 그럴듯한 집마다 기웃거린다. 그런 과정이 무수히 반복된다. 벨을 누르거나 문고리를 당겨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모르는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다. 어린아이의 못된 장난처럼 보여 유감이지만, 그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붙잡혀 구내방송이라도 타면 망신이다.

  당신은 땀을 뻘뻘 흘리며 미로 속을 헤매다가 비로소 어느 곳에 이른다. 자신 없는 손길을 뻗어 벨을 누른다. 딩동, 딩동, 딩동……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열린 문틈으로 익숙한 빛이 흘러나온다. 역광 속 검은 형체의 윤곽이 드러나자,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친다.

  “왔노라, 보았노라, 찾았노라!”

  물론 그건 꼬맹이가 뱉을 만한 말이 아니다. 실제론 “엄마, 엄마, 엄마!”하며 울고불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의 연출이란 어느 정도 왜곡되는 법이다.

  당신은 서러운 감정에 북받쳐 마더가 안아주길 기다린다. 그런데 문을 연 마더의 반응이 태연하다. 격한 감정에 질척해진 당신과 다르게 다소 냉정하게 등을 돌리며 말한다.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가 이제 오니?”

  섭섭한 마음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집안 분위기는 여전하다. 멀리 거실에선 평소처럼 TV 소리가 들려오고, 나머지 가족들은 식사를 하며 화면에 몰두해 있다. 지금껏 당신이 겪은 일은 오로지 당신만의 몫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당신은 기쁨과 실망의 감정이란 의외로 가깝다고 느낀다.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문턱에 머문다. 문은 아직 열려있다. 그러자 다시금 재촉하는 마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해? 들어오지 않고. 어서 손 씻고 밥 먹어.”

  그제야 안으로 들어가며 당신이 말한다.

  “다녀왔습니다, 마침내…….”


  얼마나 잠들어 있었을까. 두 눈이 저절로 열린다. 그만큼 충분히 숙면한 것이다. 그제야 그곳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당신 앞엔 언제나 다른 길, 다른 가능성이 놓여 있었다. 만약 조심히 운전했다면, 만약 아샤와 함께 머물렀다면, 만약, 만약, 만약….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무수히 많았다고 밖에 답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껏 어느 순간도 흔들리지 않은 적이 드물었다. 그러나 결국엔 늘 그곳을 택했다. 그럼에도 마침내 그곳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은 이제 당신의 관념이 아닌 실체가 된다.

  그곳 앞에서 비로소 당신은 당당해지려 한다. 그건 오래 전부터 소망했으나 실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신이고 싶다. 지난한 과정이라도 거짓으로 후회하거나 택하지 않은 길에 미련을 가지고 싶지 않다. 미련과 괴로움에서 해방될 것이다.

  또한 현재에 충실할 것이다. 더 이상 주저하며 돌아서지 않는다. 눈앞의 길을 헤쳐 나갈 것이다. 그런 마음의 심지에 확신의 불꽃을 지피듯, 그곳을 마주할 생각이다. 그로써 다음을 도모할 것이다.

  눈 뜬 당신에게 바로사가 말한다.

  “수고했어요. 당신은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이상하다. 그럴 리 없다. 아직 갈 길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이제 막 산맥을 넘었고, 휴식을 취하며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이미 그곳이라고 한다. 당신은 어안이 벙벙해져 주위를 둘러본다. 방금까지 곁에 있던 바로사와 기리잔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누워 있는 곳도 그곳이 아니다.

  당신은 ‘아직’ 병실 안에 누워 있다. 막 의식을 회복한 당신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너무 생생한 나머지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사고가 났고…… 아직도 그 상태인 것이다. 그제야 갈피를 잡고 현실로 돌아온다. 모든 게 꿈이었다.

  잠시 뒤, 문을 열고 아샤가 들어온다. 눈을 뜬 당신을 보자 달려와 손을 잡으며 말한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이전 23화 _왜 그곳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