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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Apr 05. 2024

_왜 그곳이야?


  또 무수한 밤낮이 지나갔다. 거친 숨결 사이로 격려하는 기리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마지막 고비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그곳이야?

  그곳을 앞둔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질문, 이젠 피할 수 없다.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태어나서부터 그곳도 아니었다. 태몽으로 윤색했지만 타고난 운명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아샤가 니라샤가 되었던 것처럼, 당신도 그만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럴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당신은 다시 그곳으로 가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재차 묻는다.

  왜 하필 그곳이야?


  딱히 이유가 없다. 대신 이유 없는 추앙이야말로 꺾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면 반드시 그것을 만족시키려 했을 것이므로 지금껏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면, 진즉 그곳을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그곳은 당신에게 늘 그곳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곳이었고, 다른 곳일 수 없다. 그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또 묻는다.

  그곳 말고도 세상은 넓지 않아?


  넓다.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어쩌면 또 다른 그곳이 있을지도……. 그러나 그건 무한의 가능성일 뿐이다. 유한한 당신의 생에 들어온 곳은 아니다. 사는 동안 ‘새로운 그곳’만 좇을 수 없다. 그보다는 계속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말했다시피 그건 시작일 뿐이다. 깊숙이 실체에 다가서야 한다. 따라서 당신에겐 그곳이 곧 세상이다. 다만 그곳의 한 부분이고 싶다.


  그러므로……

  왜냐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하필 그곳인 것은 중요하다. 분명한 답을 원했겠지만, 분명하지 않기에 그곳이기도 하다. 물론 당신도 알고 싶다. 어쩌면 왜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궁극의 답을 얻기 위해, 당신의 생은 끝임 없이 그곳을 지향하는 것일 듯하다.


  어느덧 그곳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험준한 산맥을 넘은 일행은 마침내 평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바로사가 말했다.

  “여기까지 잘 왔군요. 아직 백 퍼센트는 아니어도 거의 다 왔습니다. 어느 정도 계산이 섰으니까, 이젠 크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 말을 듣던 기리잔도 덧붙였다.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네요.”


  다행이었다. 몸이 바싹 마르고 입술이 갈라져 형편없는 몰골이 되었지만 잘 버텨냈다. 어지간한 술꾼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기리잔의 음료도 도움이 되었다. 아무쪼록 지금은 뭘 따지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일단 좀 쉬어야 했다. 바로사와 기리잔도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긴장이 풀린 당신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의 숙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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