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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Mar 29. 2024

_그곳으로 가는 길


  그곳으로 가는 길은 하나의 관문으로 통하고 있었다.

  바로사를 따라 짧은 바다 건너 육지에 이르자 다채로운 문화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북적였고, 길거리엔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모든 것들이 생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신의 생김새란 또 낯선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이국의 특산품을 대하듯 자꾸 당신을 바라보았는데,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너무 예민하게 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호기심이 초행의 어려움을 쉬이 풀어주었다. 낯선 이방인이지만, 이방인이기에 호의적으로 대하는 면이 있었고, 대개의 경우 기꺼이 도움을 주려 했다.

  물론 그렇다고 금지된 것이 허락될 리는 없었다. 육지를 가로질러 그곳으로 통하는 관문에 이르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길이 폐쇄되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바로사가 말했다.

  “예상한 대로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공식적인 방법은 없다고 했다. 안팎의 사정이 나빠지면 이렇듯 문이 닫히곤 하는데, 원칙적으로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로 몇 달, 몇 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이를 어기고 나서 발각될 경우,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순간 당신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바로사는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무한정 기다릴 순 없죠.”

  문은 닫혀있지만 사실 나가는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말 그대로 ‘돌아 나가면 된다’고 했다. 발각되지만 않으면 될 일이라고. 사람을 놀려먹나 싶어 당신이 째려보는데, 바로사는 표정의 흔들림 없이 그 이유를 말했다.

  “사실 진짜 무서운 건 인간의 처벌이 아니기 때문이죠.”

  “네?”

  “밖엔 살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밤이 되자 어둠을 틈 타 길을 나섰다. 바로사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꼭 붙어서 따라오라며 앞장을 선 그는 폐쇄된 문과 초소에서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이끌고 가더니 잠시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멀리 담이 낮아 건너가기 쉬운 지점이 보였다. 바로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만리장성도 끄트머리는 그냥 흙무더기일 뿐이죠.”

  바로사와 당신은 적절한 순간 그 지점을 건너 관문을 통과했다. 일부러 잠을 좀 자두었고, 그날은 밤새 가능한 오래 걸어 관문에서 멀어졌다.

  어둠이 깊게 깔린 땅을 내려다보며 걷는 사이, 당신은 바로사에게 감탄하는 한편, 자신이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따라가고 있었다. 모두가 그럴 필요도 그런 능력을 갖출 수도 없지만, 높은 벽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바로사만 가면 될 일 아닐까.’ 이러다가 한 번 포기하고 돌아선 적이 있었던 당신은 계속 생각한다. ‘이번엔 다를까. 이 길의 끝까지 간다면, 표피를 뚫고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을까.’ 그러자 바로사는 마치 동요하는 당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말했다.

  “저는 저, 당신은 당신의 몫이 있는 겁니다.”


  며칠이 지나 이제 길은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이르고 있었다. ‘죽음의 사막’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깡마른 땅이었다. 타는 빛과 그림자뿐인 모든 것이 마르고 황량한 모래 길 위에 하늘의 붓질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무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준비한 물과 음식은 충분했지만, 당신은 뙤약볕 아래 서서히 지쳐갔다. 다시금 의구심이 들었다. ‘감당할 수 있을까.’ 다행히 곁엔 바로사가 있었다. 둔탁해진 발걸음이 흐트러지려고 하자 그가 말했다.

  “세상에 공식이 있으면 비공식도 있죠. 모든 일이 결코 공식적인 절차대로만 풀리진 않고요. 가령, 외교 창구를 닫는다고 해도 닫은 상태로 소통할 창구는 유지되잖아요. 그래서 공식적인 창구가 다시 열릴 때까지 그 창구를 유지하는 거고. 그렇다면 공식이나 비공식이나 같은 창구이긴 마찬가지인 셈이죠.”

  “무슨 말이죠?”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에 묻는 것이었다. 바로사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설명을 이어나갔다.

  “결국 안 되는 일이란 없다는 거죠. 안 된다고 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지. 흔히 사람들은 이쯤에서 더는 안 되겠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되고 어디까지 안 되는지는 마음의 제약에 따른 임의적인 규정이란 뜻입니다.”

  “그래서요?”

  “지금 당신은 처한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할 뿐입니다. 그렇게 한걸음씩 내딛어 그곳까지 가야죠. 당신이 가지는 의구심? 그건 스스로 의문을 품는 마음일 뿐이죠. 포기하고 싶다고 하지만, 버티다 보면 곧 반대의 마음도 응답할 겁니다.”

  “……”

  당신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걸음씩 간다는 말에 방점을 둘 뿐이었다.

  “끝까지 가는 겁니다. 인간은 오랜 세월 그렇게 발전해왔답니다. 먼저 길을 찾고 그 뒤에 길을 다듬어 왔어요. 정말 지금의 이 길이 틀렸다면 그건 틀린 다음에 판단할 문제인 거죠. 그러니까 지금은, 의구심 따윌 가질 필요 없어요. 그래서 손해를 입을 일도 없고요. 오히려 지금 멈춰버린다면 당신은 영원히 후회할 겁니다.”

  비로소 당신도 납득할 수 있었다.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바로사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숱하게 겪어 왔을 것이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예전의 당신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돌아선다면 온 만큼 뒷걸음치는 일일 뿐이다. 밟은 길을 되밟아 가서 남은 것은 결국 미련과 괴로움이었다.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늘 그랬다. 꿈만 꾸고 실체에 접근하지 못했다. 항상 그곳에 가길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거기서부터 진짜였다. 험난한 길을 원했으므로 힘든 것은 당연했다. 당신은 생각했다. ‘지금은 좀 지쳤을 뿐이야. 누구에게나 힘든 길이니까, 그럴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건 당연해. 하지만 이젠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아.’

  바로사가 덧붙였다.

  “흔들리는 마음에 동요될 필욘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 길을 가다보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곧잘 생깁니다. 그땐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지 않도록 지금 제가 당신과 함께 하는 겁니다.”


  며칠을 걷고 또 걸어 당신은 마침내 사막 끄트머리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예전의 역관으로 육로의 상인들도 곧잘 오가는 곳이라고 했다. 거기서 잠시 쉬어 가야 했다.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당신이 며칠간 앓아 누웠던 것이다. 바로사가 말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떠오르는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상태를 가늠한 바로사는 그럴 만큼 큰 병은 아니라고 당신을 안심시켰다.

  “적응하는 거예요.”

  이질적인 환경에 스스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푹 쉬다보면 조금씩 회복될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서서히 몸이 좋아졌고 식욕도 되살아났다. 안다는 건 대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 사이 바로사는 서두르는 기색 하나 없이 이어지는 여정을 준비했다. 사막을 지난 길은 어느새 골짜기를 따라 점차 고산 지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거길 넘어서야 그곳이 있었다. 어느 정도 회복한 당신이 조바심을 내자 바로사는 일단 고도에 적응할 겸 사나흘 더 머물며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러더니 바로사는 머무는 동안 온전히 즐기라고 했다.

  “이런 곳이 또 없답니다.”

  과연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보니 별 세상이 따로 없었다. 산을 등지고 물이 흐르며 그곳 주위만 온통 초록이 무성했다. 밤에는 정말로 별이 쏟아지는 세상이었다. 어둠이 투명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이제 당신도 낯선 것을 스스럼없이 포용할 수 있었다. 두려움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예상할 수 없는, 미지 너머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거듭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그래서 설레는 것이기도 했다. 단 하루도 평범하지 않았다.

  반대로 당신은 평범함에 대해서도 종종 떠올렸다. 딱히 꿈꾸진 않았으나 무탈한 삶. 어쩌면 약해 빠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곳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당신도 나름대로 소소하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을 듯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은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아.”

  언젠가 아샤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때때로 실패하고 절망과 함께 하는 것도 삶이라고 했다. 혹은 과거의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면서 아샤 핑계를 대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젠 아니었다. 바로사의 말처럼 마음에 흔들릴 필요는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게 어떨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었다.


  한편, 바로사는 이어질 여정을 함께 할 사람이라며 기리잔을 소개시켜 주었다. 고산 지대의 전문가라고 했다. 기리잔은 만나자마자 당신에게 투명한 액체가 담긴 병을 통째로 건네더니 말했다.

  “여기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랍니다.”

  필요한 것이라며 한 번 마셔보라기에 아무 생각 없이 한 모금 삼켰다가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숨이 차올랐다. 너무 독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당신이 물었다.

  “이게 뭔데요?”

  “음…… 굳이 말하면 럼의 일종이죠.”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지금은 그렇지만, 곧 몸을 덥혀 주고 피로도 잊게 해줄 겁니다.”

  바로사가 거들며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고 했다. 그러며 예를 드는데, 기리잔의 입을 통해 불쑥 낯익은 얘기가 하나 흘러나왔다.

  “이름이 뭐라던가…… 오래 전에 요 근처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고립된 사람이 하나 있었어요. 여기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데려와서 하루 머물렀는데, 이걸 주니까 처음엔 쓰다고 하더니 밤새 병나발을 붑디다.”

  아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설마……’ 그렇다면 세상 참 좁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곳에서 오가는 길이 많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꼭 우연만은 아닐 듯했다. 아무튼 이제 와선 확인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때 마주쳤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 지나쳐 각자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질없는 감상에 빠진 것을 보니 당신은 슬슬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다만 여기서 좀 취한다고 뭔가 크게 달라질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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