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모닝인천 Jul 08. 2022

아무도 울지 않는 밤 -6-

옴니버스 소설 | 굿모닝인천 7월, Vol. 343

우리가 통과한 밤

글 안보윤 │ 일러스트 송미정





“편의점 왕만두요?”

선영이 미심쩍은 얼굴로 민서 엄마에게 물었다.

“왕만두 때문에 우리 유영이가 매일같이 편의점에 간다고요?”

“그렇다니까요. 민서도 유영이도 만두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몰라요. 종일 만두 만두 노래를 한다니까요.”

민서 엄마의 목소리가 밝고 쾌활했다. 선영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민서와 유영은 유치원 때부터의 오랜 인연이라, 어린 시절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던 유영을 민서 엄마가 모를 리 없었다. 아토피에 좋은 침구 세트나 로션을 추천해주곤 했던 사람이 아닌가. 한여름에 아이스크림 하나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유영인데 편의점 만두를, 동물성 기름과 합성보존제 범벅일 인스턴트 왕만두를 매일같이 먹는단 소릴 태연하게 하다니. 선영은 당혹스러움과 실망감을 넘어 분노로 번지려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유영이는 그런 거 먹으면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저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애들이 좋아한다고 마냥 먹게 두시면 어떡해요.”

만두를 먹는다고요? 선영보다 더 놀란 얼굴을 한 민서 엄마가 큰 소리를 냈다. 애들이 왕만두 때문에 매일 편의점에 간다면서요. 선영이 짐짓 따져 물었다.

“아니, 만두는 그런 게 아니에요. 세상에, 만두는.”

민서 엄마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만두는 고양이 이름이에요. 사거리 편의점 앞에 사는 얼룩무늬 길고양이.”     

담벼락 위로 뻗은 배롱나무 가지 아래 선영은 서 있었다. 여름 한낮의 태양 빛이 무성한 잎 위로 켜켜이 쌓였다. 빛이 반사될 때마다 눈앞이 불투명해지는 기분이었다. 모퉁이 하나만 돌면 집이 나오는데도 선영은 쉽게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과일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민서 엄마는 처음엔 가볍게 만두 얘기를 꺼냈다가 헤어질 즈음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영이 만두를 보러 다닌 지 벌써 반년도 넘었다고, 민서에게 듣기로는 비가 많이 내리거나 바람이 심한 날엔 한밤에도 보러 나간다고 했다. 민서 엄마는 마지막까지 망설이던 말을 결국 입 밖으로 냈다.

“혹시…… 요즘 유영이랑 대화 안 해요?”

선영은 담벼락 아래 그늘에 쪼그려 앉았다. 장바구니에 든 참외와 자두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참외는 남편이, 자두는 유성이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유영이는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선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과일을 골랐다. 그런데 지금은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유영이는 뭘 좋아했지? 뭘 잘 먹고 누굴 좋아했더라? 선영이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영이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선영은 유영의 대부분을 알았다. 유영은 씨가 많은 과일을 싫어하고 달리기보단 공놀이를 좋아했다. 교실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학급 게시판을 확인했고 친구들과 인사할 때는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이건 모두 유영이 얘기해준 것들이었다. 유영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선영의 옆구리에 몸을 찰싹 붙이고 앉아 조잘대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선영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반. 조금 있으면 유영의 학교가 끝날 시간이었다. 유영은 곧바로 영어학원으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이른 저녁을 먹고 논술학원에 갈 채비를 할 터였다. 영어학원은 매일, 논술학원은 화금, 수학학원은 월수목, 선행학습 특강반은 매주 일요일. 선영이 유영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학원 스케줄과 학원비 납부일이 전부였다.

선영은 골목을 돌아 나왔다. 사거리 편의점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선영은 유영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유영과 작은 서점에 갔던 기억 정도는 분명히 있었다. 유성이 합숙 훈련을 받으러 가 일주일 정도 틈이 났을 때였다. 유영은 전에 없이 선영에게 개항로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반 아이들이 한 번씩은 다 가본 곳이라면서. 선영은 흔쾌히 유영과 함께 집을 나섰다. 유영이 말한 곳에 가고 유영이 찍고 싶은 사진을 찍고 우연히 눈에 띈 작은 서점에도 들렀다. 그곳에서 파도 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진 그림책과 소설책을 샀었지.

그게 언제였더라. 선영은 머릿속 달력을 한 장 한 장 앞으로 넘겼다. 지난봄, 아니면 작년 겨울? 그보다 더 전인가? 설마 재작년 봄?

길 건너 커다란 간판을 내건 편의점이 보였다. 선영은 서둘러 길을 건넜다. 출입구 근처를 살펴보니 에어컨 실외기 옆에 작은 상자 하나가 놓인 것이 보였다. 동그랗게 뚫린 구멍으로 꼬리가 비죽 흘러나와 있었다. 선영은 구멍 안쪽을 들여다보며 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 시간에 웬일이야?”

유영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제 막 학교가 끝났는지 주변이 소란했다. 고양이는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있어 생김새는 알 수 없었으나 검은 얼룩이 듬성듬성 찍힌 흰 털이 보드라워 보였다.

“유영아, 오늘 학원 땡땡이칠래?”

선영은 불쑥 그렇게 말했다.

“차이나타운 가서 짜장면도 먹고 개항로 예쁜 커피집에 가서 차도 마시고 사진도 찍자. 지난번에 갔던 서점 기억나? 거기서 책도 좀 사고. 오랜만에 유영이랑 엄마랑 둘이서만 노는 거야. 어때?”

응, 좋아, 하고 답하는 유영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작았다. 훌쩍, 하고 코 먹는 소리가 났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자신과 싸우고 뛰쳐나갔던 유영이 한 시간도 못 되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선영을 등 뒤에서 꼭 끌어안았던 적이. ‘엄마가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건 알고 있어.’ 훌쩍, 하고 코를 들이켜며 유영이 말했다. 그때에는 유영이 훌쩍 커버렸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유영이 했던 건 성장이 아니라 포기였는지 몰랐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가슴 한쪽을 누군가 가만히 움켜쥐는 것 같은 통증이 피어올랐다.

“유영아, 엄마 여기서 기다릴게.”

“거기가 어딘데?”

“만두 옆. 엄마 왕만두 옆에 있어.”

유영이 숨죽여 웃었다. 엄마, 그거 알아? 왕만두 머리는 진짜 깜짝 놀라게 커다래. 유영의 목소리에 금세 힘이 붙었다. 서둘러 걷고 있는지 타닥타닥 발소리가 전화 너머로도 크게 울렸다. 잠에서 깬 고양이가 알전구처럼 동그란 머리통을 들어 귀를 종긋, 하고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던 선영이 다시금 힘주어 말했다. 엄만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







안보윤 | 1981년 인천 출신.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자음과모음문학상 수상.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중편소설 <알마의 숲>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