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Aug 08. 2017

비밀의 숲

달라진 한국 드라마

한국 드라마는 앞으로 "비밀의 숲"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동의하진 못하지만 공감하는 부분은 있다. 대부분 한국 드라마는 특정 장르를 표방해도 내용은 연애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의학드라마는 의사의 연애질, 법정 드라마는 검사나 변호사의 연애질, 시대물에서는 계급 간의 연애질 등, 결국에는 연애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런 경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장르를 개척하는 시도가 있어왔고, 비밀의 숲은 그런 시도의 완성판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비밀의 숲이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비밀의 숲이 완성도 높긴 하지만, 박경수 작가의 "추적자"나 "황금의 제국"에서 이미 다루어진 주제이고 형식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점을 파헤친 점도 이미 다루어졌기에 새로울 것은 없다. 100% 사전 제작도 이미 선례가 있다. 그래서 비밀의 숲이 한국 드라마에서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는 동의할 수 없다.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공감할 부분은, 연애질이 배제된 사회성 강한 묵직한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특히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 중요한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슷한 주제인 추적자나 황금의 제국이 비밀의 숲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비밀의 숲은 적절한 시점, 즉 시청자들이 부패한 권력의 정경유착을 직접 눈으로 목도하고 분노하여, 탄핵과 정부 교체를 이룬 시점에 방영되어 이런 장르의 유례없는 성공을 가능케 했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한국 드라마가 연애물을 탈피하여 다양성을 이루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검찰, 재벌, 언론, 정치가 얽혀서 한국 사회를 움직이며 그동안 쌓여왔던 적폐의 민낯이 드러난 지금 시점에, 어떻게 이들이 얽히고설켜서 강고한 세력을 구축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깨부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라마는 세세하고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지금 시청자들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드라마가 투영했기에 특히 공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재벌이 권력과 어떻게 유착되었고,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부역하고 있는지, 그래서 검찰 개혁이 얼마나 어렵고 저항이 심할 것인지, 지금 일반인들 모두가 느끼고 있지 않는가.


주인공 황시목검사는 뇌 수술을 받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돈과 권력이 얽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로지 그만이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진실을 추구한다. 이 설정은 시사하는바 큰데, 황시목처럼 감정이 없는 검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검사들은 모두 타락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재벌의 사위로서 청와대 수석이 된 이창준 검사는 권력을 추구하는 악의 축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도 결국 정상적 방법으로는 이 사회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으로, 비상식적이고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다. 결국 그도 희생자일 뿐이다. 이창준은 자신이 재벌의 주구로서 살인도 불사하는 악의 축이라는 짐을 떠안고 죽어야만 이 강고한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복잡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창준에게서 그 무거운 짐을 받아서 떠안게 된 사람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비정상적인 검사, 황시목이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검찰도, 정치도, 언론도, 재벌도 개혁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정의가 이긴다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제시하는 한국 사회는 암울하고 쓰디쓰다. 그래서 현실감이 강한 측면도 있지만.


드라마의 핵심 인물들은 검사이다. 이 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기관이 검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창준이나 황시목 모두 비정상적인 검사들이다. 이들에 의해 정의가 실현된다는 설정은 곧 정상적인 상황에서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것임에 다름없다. 검찰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미 노무현 때 겪어봐서 알고 있기에 더욱 설득력 있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낙관적이거나 달콤한 환상 대신 엄혹한 현실을 들이민 비밀의 숲은, 마치 시청자들에게 더욱더 냉철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극적 재미와 사회 비판의 두 마리 토끼를 훌륭하게 잡아낸 드라마로서, 비밀의 숲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여 말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꽤 많을 것다. 


이제 한국 드라마가 천편일률적인 연애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개척이 이루질 것을 믿어본다. 


첨언하면, 비밀의 숲은 넷플릭스에서 자본을 대고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판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제작 모델을 제시한 것이고,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향후 가져올 거대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 것일 수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펼치도록 도와준 사례로 기록된다면, 거대 플랫폼 서비스 회사가 미디어 콘텐츠 내용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을 의미한다. 이래 저래 우리 세대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