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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Nov 24. 2017

사파를 떠나 하노이로

동남아 부부 배낭여행기 15

사파에서 예정보다 더 길게 머무르며 그동안 지친 심신을 달랬다. 사파는 그런 목적으로 쉬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하루 종일 동네 마실 다니는 기분으로 시장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편안하게 쉬었다. 다양한 취향의 레스토랑들이 많아서, 매일 새로운 식당에서 경험하는 음식도 좋고 곁들여 마시는 맥주도 기분을 돋운다. 이곳은 하노이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하노이 맥주가 있다. 사파와 하노이에 머무르는 동안 주로 비아 하노이를 마셨다. 개인적 취향으로 사이공 비어가 하노이 비어보다 더 맛있다. 그래도 맥주는 역시 현지 맥주를 마시는 것이 좋다는 지론이라 주로 하노이 비어를 마셨다.


저녁은 역시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곁들여야 한다

우리는 점심은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허름한 쌀국수집 등에서 간단하게 먹고, 저녁은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딱히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고, 점심은 가볍게 먹고 저녁은 맥주 한잔을 곁들이려면 그래도 음식이 술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니, 쌀국수는 조금 그렇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다국적 여행객들이 찾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다.


국적 불문하고 식사에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아내가 장기 해외 배낭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밥을 차리는 것에서 해방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남이 해주는 밥이 맛있다고, 허름한 레스토랑을 가도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기쁨(?)이 있기에 여행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아마도 한국 중년 남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이겠다. 어쨌건 촛불이 분위기를 잡아주고 테이블보가 깔린 식탁에서 웨이터의 시중을 받으며 먹는 음식은, 가사의 의무를 지고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는 여행에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일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이 사파에 있는데, 우리가 갔던 프렌치 레스토랑 중 하나에서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주문을 받고 시중을 들었다. 음식도 썩 맛있고 가격도 착해서 만족했던 레스토랑이다. 미국 식당의 종업원들은 팁이 중요한 수입원이다. 따라서 팁을 받기 위한 서비스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사실 팁이 거의 음식값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썩 좋은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반면 유럽 쪽의 식당은 팁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서비스의 정성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베트남은 딱히 팁이 의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서구 관광객들은 의례 팁을 남기고 간다.


그런데 동남아에서는 딱히 팁을 바라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도 웨이터의 서빙에서 정성이 느껴질 때가 있다. 문화적 경험이라고 해야겠다. 물론 정형화해서 말하기는 힘들고, 무성의한 서빙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파에서는 절제된 서비스를 기분 좋게 받았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아마도 편견일 수 있겠지만, 베트남은 특유의 자존심이 느껴진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있는 이탈리안과 중국집은 당연히 사파에도 있고, 인도 음식점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다만 한국 식당은 우리 기억에 없다. 우리가 못 찾았던 것인지 아니면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지금은 한국 식당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쳤던 국가의 사람들은 과거 식민지에 대한 묘한 향수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인도차이나반도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많다. 과거 프랑스가 오랜 기간 식민 통치를 했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이 인도차이나를 조금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 아닐까.


인천에는 일본 식민 시절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데, 인천이 고향인 일본 사람들도 꽤 많아서, 과거 자신이 태어나서 살았던 곳을 찾아오는 나이 많은 일본인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프랑스의 식민 통치는 더 늦게까지 지속되었기에 과거 식민 시절의 향수를 가지고 인도차이나를 찾는 프랑스인들이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베트남이나 라오스, 캄보디아에서는 프랑스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고, 그만큼 프랑스 관광객도 많이 눈에 보인다.


사파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하노이이다. 태국 방콕에서 출발하여, 치앙마이, 라오스 루앙남타, 중국 징홍과 쿤밍을 거쳐 사파를 둘러보고 하노이로 가서 여정을 마무리하고 귀국 비행기에 오른다.


사파에서 하노이로 가는 버스도 있지만, 야간열차를 이용해서 하노이로 이동했다. 한국에는 없는 침대 야간열차를 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사파에서 라오까이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자고 일어나면 하노이에 도착한다. 열차표는 사파의 숙소에서 미리 구매를 했다.


라오까이 기차역 앞 광장 풍경


야간 기차이므로 라오까이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기차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커피도 한잔 하고, 주위 구경도 하다 보면 열차 출발 시간이 된다.


라오까이 기차역
기차역 풍경

라오까이 역에는 사파를 구경하고 하노이로 돌아가는 관광객들이 많다. 베트남 기차는 좌석별로 가격이 다양한데,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열차가 따로 있어서 같은 칸에는 대부분 외국 여행객들이다. 침대 칸은 2층으로 되어있고, 4명이 한 칸을 같이 쓰는 구조이다. 


기차의 침대. 아주 편안한 침대는 아니지만 중국의 슬리핑 버스에 비하면 양반이다.


2층으로 되어있고, 베개와 이불이 제공된다


아무래도 2층 침대는 올라가기 불편하니 내가 2층 침대를 쓰고 아내가 1층을 썼다. 옆 침대에는 서양 부부가 탔는데, 역시 남자가 2층을 썼다. 서양인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는데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들이 옆에 있어도 별 스스럼없이 옷을 훌훌 벗고 잔다. 우리와 같은 칸의 호주인 부부는 아마도 부부싸움을 했는지, 들어오자마자 둘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하다 옷을 훌떡 벗고 팬티바람으로 잠을 잤다. 덕분에 우리도 간단한 통성명만 하고 일찌감치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딱히 할 일도 없긴 했지만. 이렇게 이동 중에 만나는 여행객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여행의 일부인데, 한기를 뿜어대는 이들 부부와는 얘기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파에서 하노이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기차는 정말 느리게 거북이걸음으로 밤새 달려 하노이에 아침에 도착했다. 2층에서는 비교적 잠을 잘 잘 수 있었는데, 1층의 아내는 기차 바퀴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설쳤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호주인 부부는 한마디도 서로 하지 않고 있더니, 기차가 도착하자 짐을 챙겨서 서로 싸늘하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기차에서 내렸다. 부부가 길게 여행을 하다 보면 의견 충돌도 많고, 싸울 일도 많긴 하다. 그래서 서로 조심하고 배려해야 여행이 수월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부부는 여행을 하면서 싸울 일이 거의 없다. 아내는 여행의 모든 일정에 관한 것을 내게 일임하고, 힘들거나 불만이 있더라도 별 불평 없이 따라오기에 딱히 여행 중에 다툴일이 없다. 물론 나도 가급적 아내가 편하도록 여행 일정을 잡을 때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행이란 것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가? 종종 계획이 틀어지고 헤매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내는 대부분 이해하고 따라주기에 마찰이 없다. 


태국에서 시작한 꽤 긴 여정의 종착지, 하노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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