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Dec 21. 2017

베트남의 자존심

동남아 부부 배낭여행기 17

하노이에서 묵은 숙소는 성요셉 성당 인근 골목에 위치한 작은 부티크 호텔이었는데, 새로 단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편안했다. 욕실 바닥에 자갈까지 앙증스럽게 깔아놓아서 지불한 가격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덕분에 하노이에서 편안하게 묵을 수 있었다.


호텔의 작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으면 자주 마주치는 투숙객들과 자연스레 눈을 맞추게 된다. 이스라엘에서 온 의사와 베트남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가 베트남을 여행하는 이유가 흥미로웠는데, 어떻게 동양의 이 작은 나라가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직접 찾아와 봤다고 한다.


하노이의 오토바이 행렬


여행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중 하나이다. 서너 번의 경험으로 일반화를 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경험한 것에 기초하여 인식체계를 세울 수밖에 없으니, 편견을 갖는 것은 숙명이겠다. 


내 경험에 의거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특징은, 영어로 표현하면 arrogant이다. 이 사람들, 자부심이 강하고 다른 문화를 약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선민의식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닐까 한다. 제레미 리프킨이 적절하게 지칭했듯이, 전 세계 종교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뿌리가 된 아브라함 종교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그들의 DNA에 각인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자존심 강한 민족이 유대인일진대, 이들도 베트남을 배우러 온다. 


세계 역사에서도 유래가 없을 일인데, 베트남은 강대국들과 많은 전쟁을 치렀고, 모두 승리했다. 베트남은 과거 중국에 조공을 했던 역사가 있지만, 종종 황제를 칭해서 중국과 전쟁을 벌였었다. 한국이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황제를 칭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가 된다. (고종이 황제를 칭한 것은 매우 근대에 들어서였고, 청나라가 이미 서구 열강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조선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때였다.) 


베트남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제국주의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쟁취하였고, 다시 최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남북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독립 이후 같은 사회주의 동맹국이었지만 갈등을 빚은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였다. 이렇게 모든 열강과의 싸움에서 모두 승리한 베트남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하다.


베트남의 저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지식이 일천한 외부인으로서 명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우선적으로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이 베트남의 저력을 살펴볼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그 이스라엘 의사는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사람"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한다. 호치민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 베트남 사람들이 저력의 원천이 아닐까?


하노이의 여러 박물관 중에서  꼭 하나만 봐야 한다면, 하노이 역사박물관을 방문해야 한다.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 건설된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건물에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식민지 시절 건물을 이렇게 활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감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건물 중 상당히 많은 건물을 우리는 부숴버렸는데, 대표적인 것이 과거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김영삼 정부 때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경복궁 앞을 막아서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부숴버리고 경복궁을 복원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이라면 굳이 건물을 없애지 않고 다른 용도로 활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경복궁을 복원하는 차원에서라면 총독부 건물을 이전해서 보존하는 방법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지금 이 시점에는 일본에 대한 원한이나 자존심의 문제가 많이 희석되었고, 식민시절의 잔재를 부숴버리기보다는 보존하여 과거 역사에 대한 교훈으로 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 판단했을 것 같다. 다만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일제 청산이라는 것이 더 시대정신에 맞았겠지만.


베트남은 치열한 독립투쟁의 결과로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루었다. 그만큼 자부심도 높은 것이 당연하다. 그런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기에 굳이 프랑스 식민시절 건물을 부숴버릴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그들에게는 이런 건물들이 부끄러운 기억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승전의 기념물 같지 않을까?


역사 박물관

그래서 베트남 역사박물관이라는,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이렇게 프랑스 식민 시절 건설된 건물에 들어서 있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베트남 역사에 관련한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유물과 관리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태국의 빈약한 박물관과 비교하면 베트남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을 비교해서 느낄 수 있다.


역사 박물관 내부


고대 유물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을 보면 약간은 그 나라 사람들의 인식과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 태국 방콕의 왕궁 근처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을 방문하고 매우 실망을 했는데, 일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너무나 초라해서였다. 반면 왕궁과 왕실 관련 유적이나 유물들은 굉장히 잘 관리되어 있어서, 태국의 정치체계에 대한 이면을 살짝 엿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의 박물관은 태국과 비교된다. 


다양한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뿐 아니라, 하노이 시내 곳곳에는 식민지 시절 콜로니얼 스타일의 건축물들이 많다. 제국주의 시대 유물이지만, 미적으로 아름다워서 당시의 건물들을 좋아한다. 현대 건물은 이런 우아함이 없다. 쓸데없는 장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건물은 기능적인 측면뿐 아니라 미적인 아름다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과거의 디자인 같은 우아함을 찾기 어렵다. 



하노이뿐 아니라 사이공과 인근의 라오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인데, 오래된 자동차를 복원하여 건물 앞에 전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장식품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콜로니얼 풍의 건물 앞에 주차된 클래식한 자동차는 썩 잘 어우러진다. 일정 규모 건물에는 의무적으로 조각품을 세우게 한 법령 때문에, 정체불명의 기괴한 조각품들이 놓여있는 한국의 건물 풍경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보기 좋다. 일부 조각가의 배만 불리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수준의 조악한 조형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는 언제 개선이 되려나 모르겠다. 


웨딩 사진 촬영

하노이 시내에서 종종 마주치는 광경 중 하나로, 웨딩 사진을 찍는 풍경이 있다. 그때가 결혼 시즌이었는지, 아니면 항상 이렇게 웨딩 사진 촬영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머무르는 동안 자주 목격한 광경이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인 젊은 나라이기에 결혼식도 그만큼 자주 열리는 것이 아닐지. 점점 늙어가는 한국은 활기를 잃어가는 것 같은데, 베트남은 활력이 넘친다.


하노이의 평범한 거리
정취있는 카페들


사이공과는 또 다른 하노이의 매력이 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에 비해서, 우리네 도시는 안타까울 정도로 몰개성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지자체들이 나름 개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숨 가쁘게 달려온 개발 시대를 거치며 역사의 흔적이 너무 많이 지워졌기에 도시마다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고유의 색채가 사라지고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그리고 너무 매끈하고 현대적인 얼굴을 가진 밋밋한 도시들이 되어버렸다.


하노이 거리를 거닐며 엉뚱하게도 한국 도시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느꼈다. 하긴, 동남아는 물론이고, 미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를 방문해도 도시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다. 미국 도시들도 뉴욕이나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의 도시가 갖는 개성이 있지만, 건물 디자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밋밋한 편이다. 뉴올리언스가 프렌치-스패니쉬 스타일 빌딩들로 매우 개성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도시들은 실용성을 앞세운 근대 건물들이다. 그렇게 따져보면 몰개성으로 최악의 도시는 한국이라고 자인할 수밖에 없다. 


안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밖에 나와서 봐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또 이렇게 건물이나 잡다한 것들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고 즐거움이다. 맥주를 사랑하게 된 것도 여행을 통해서이다.

https://brunch.co.kr/@incheonoldtown/74


베트남 하노이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는 아마도 하롱베이일 것이다. 하노이에 왔으니, 하롱베이를 다녀와야 한다. 하롱베이를 다녀오는 다양한 투어가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투어를 선택하면 된다. 우리는 당일치기 투어를 선택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