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을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당한 사람들
하도 말이 많아
문을 닫았지요
문고리엔
‘들어오지 마시오’ 대신
‘비난은 반입 금지’라 쓰여 있었고요
가끔은
내가 스스로 걸어 잠근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문짝은 바깥에서 잠겨 있었더라고요
냉장고 안이
밖보다 따뜻했고,
택배 기사님이
유일한 방문자였고,
아무와도 부딪히지 않는 하루가
가장 덜 아픈 하루였어요
그래서요
콘센트에 나를 충전했고.
창보다 환한 화면 속으로
눈을 돌렸어요
밖보다 넓은 인터넷을 사귀었고.
햇빛은 뉴스 속 기상정보로만 마주했어요
가끔은
외출보다 로그아웃이 더 어려웠고,
인간관계보다 와이파이가
더 안정적이었어요
누군가 묻더군요
“왜, 안 나와요?”
그럴 때면 말하죠
문은 열려 있었는데요?
그런데요,
문턱이 너무 높았어요
지나가는 말이 발등을 찍었고,
‘관심’이라는 발길질도
꽤 아팠고요
사실,
나가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나가도 괜찮은 사람인지
모르겠던 마음이었어요
그러니,
문을 두드리기 전에
기억해주세요
문 안에 있는 내가
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문틈 너머의 말이
조금 더 따뜻하길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는 종종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운 채 무심히 던져집니다.
습관적으로 묻습니다.
“왜 안 나왔어?” “뭐가 무서워?”
그러나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다를지도 모릅니다.
“왜 나가야만 해?” “그 문턱은 누가 만들었을까?”
세상의 ‘기준선’이라는 이름의
장애물을 비튼 채 묻습니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배려보다 감시가 앞선 관심,
적응하지 못한 자를 낙오자로 여기는 태도—
그 아래서 사람은 방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밀려 들어간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
“문은 열려 있었는데요?”
이 말은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되묻기입니다.
우리가 열어야 하는 건,
닫힌 문이 아니라
닫힌 인식입니다.
문을 여는 데 필요한 건
힘이 아니라 이해입니다.
문 안에 있는 사람이 기다리는 것은
구조가 아니라 시선입니다.
“거기 있어도 괜찮아.”
이 말 한 마디가,
방 안에 있는 이에겐
세상 전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문 안에 있다면,
기억하세요.
당신이 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결코 멈춤이 아닙니다.
그건 고요한 진행이며,
작은 회복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대신,
귀 기울이는 사람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 그 문은
안에서 스스로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