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68일차
그런 사람이 있어요.
크게 무슨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면 그냥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고, 어딘가 에너지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사람 말이지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인데, 몇 마디가 넘어가면 어딘가 힘이 빠지고 손해 보는 것 같고, 언제 대화가 끝나는지 시간의 흐름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요.
그들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봤어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온전함”이라는 단어로 정리하고 싶어요.
전자의 경우는 제가 하는 말을 온전하게 받아주는 사람이고, 그의 말 또한 제가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되지요. 대화의 연결 속에서 의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표현과 그의 표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되는 관계 말이지요. 조금 더 쉽게 표현하자면, 그건 틀리고 이건 맞고와 같이 판단이 없는 대화가 주류를 이루는 관계를 바탕으로 대화를 하면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온전함의 대화를 위해서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나의 관점으로, 내가 세상을 살아온 관점으로 그의 삶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과 그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의 삶이 가진 의미를 수용하고, 내 삶이 가진 의미를 수용하는 과정이지요.
나의 직업이 그의 직업보다 좋고, 나의 소유가 그의 소유보다 나쁘고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에 대한 존중과 그에 따른 가치가 주는 행복의 기준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지요.
이런 관계를 자주 경험하면, 세상이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여행을 통해서 물리적인 다양성을 경험하는 것보다 정서적인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 대화의 끝을 기대하고 시간의 흐름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관계는 “온전함”이 없을 경우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대화에 의도가 있고, 판단이 있는 관계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삶에서 겪은 작은 에피소드를 나누는데 그 상황에서 나의 행동의 옳은 부분과 틀린 부분, 이후에 그것을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여 지적한다면 그런 대화를 편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와 대화하기 싫고, 직장에서 상급자와 대화하기 싫은 것 아닐까요?
일을 하면서 얻는 경험에 대해서 그냥 이야기했는데, 그것을 판단하고, 의도를 찾고, 행동의 개선과 시스템의 문제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다음부터 그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겠지요.
종종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할까? 에 대해서 고민하고는 해요.
하나 확실한 것은 가능하면 온전하게 수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판단하는 사람 말고 말이지요. 그랬구나. 아이고, 그랬었구나. 저런, 우와 좋았겠다.처럼, 그 사람의 감정을 수용하고,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관점을 가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지나가는 아저씨라는 소리를 들어도, 아이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온전히 수용하는 삶”을 연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저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