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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class Sep 18. 2024

부모님의 일을 이어서 한다는 것

8일

명절이 이렇게 끝나는군요.


어려운 것에 도전의식을 갖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무의식 중에 어려운 일을 자주 선택하게 됩니다.


이직도 그렇고, 새로운 일의 선택도 그렇고요.


교직에 있던 시절의 명절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연휴 기간을 이용해서 학기 중 부족했던 업무를 처리하고, 명절이라고 어른들에게 할 도리를 해야 한다며 친척 어른들 찾아뵙고요.


언젠가 추석에는 어른들 인사를 드리고 집에 오는 길에 담이 결렸고 결국은 집에서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알아서 누워 있다가 다음날 아침 씻지도 못하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피를 뽑고 침몸살과 함께 연휴를 마친 적도 있었지요.


명절을 맞아서 안부 전화를 하는데, 누군가 제게 그러더군요. 왜, 그 좋은 재능을 두고 사교육에 진출하지 않고 그 일을 하냐고 말이지요. 글쎄요. 어떤 반발심이 제게 이런 선택을 하게 했는지 말이지요.

누군가 들으면 아직 아쉬운 적이 없었으니 그런다고 하겠지만, 아직은 조금 덜 벌어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이해해 줄까요?


교직을 그만하게 되고 이제 3번째 추석이네요.

그동안 저는 부모님의 공장을 이어받기 위해서 기술을 배우고, 이전의 제가 하던 모든 경험과는 완전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다름에 있어서 좋고 나쁨의 평가는 어렵겠지만요.


이번 명절에도 부모님께서는 공장을 가동하셨습니다.

물론 전보다는 조금 더 쉬엄쉬엄 했지만, 기계를 돌린다는 것으로 인해서 따라오는 기계 청소, 관리와 같은 일은 평소와 똑같이 진행되었지요.


오래전부터 공장을 하셨던 부모님의 관점에서 기계는 계속해서 돌아가야 하는 것이고, 부지런함과 바쁨은 결코 배신하지 않을 지금에 대한 희생이자 노력이라는 생각을 하시지요.


아니, 어쩌면 그동안 계속하셨던 일 때문에 쉼을 모르고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삶의 모습이 자녀인 제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온다는 것이지요.


가족과 함께한다고 하지만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시간과 의사와 선택권이 사라지니까요.


그렇지만 그걸 바꾸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저는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기에 지금의 상황에서 무엇이 틀어졌고, 어떤 가치가 개선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갈등의 원인을 찾아서 이것이 다음 세대에는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명절이 시작되던 첫날.

여느 날처럼 출근 아닌 출근을 하고, 청소를 하고, 기계를 정비하면서 습관적으로 이전에 보냈던 명절과 무의식 중에 비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 일은 이렇게 쉼 없이 가는 건가. 나는 왜 이런 날에도 변함없이 일해야 하는 건가.


그러던 중 문득 그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런 삶이 부모님 세대의 삶이었구나.

이런 삶으로 지금을 만들었구나.


그런 무지함과 우직함 속에 원망도 있었지만 감사의 마음도 일어났습니다.


문득, 부모와 함께 일 한다는 건 내가 모르던 그분들의 삶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돈으로 얻는 가치보다 더 귀한 삶의 경험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적어도, 부모와 제가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을 할 때보다는 지금 더 많은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생기니까 말이지요.


생각해 보면, 여전히 불만도 있고, 불통에서 오는 답답함도 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조금은 더 부모님을 알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다가 10년 전 부모님의 사진을 찾았습니다.


매일 봐서 항상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많이 변하셨더군요. 10년 전, 그러니까 그중 거의 7년을 타인처럼 지내다가 부모님의 일을 함께 하면서 조금씩 배워가고 알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의 영역이 바뀌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것도 아니며,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존재와의 거리만큼은 조금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직에 있던 시기에는 내 가족, 내 삶보다는 실체를 모르는 의무와 책임이 더 많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적어도 모든 것 위에 가족이 우선이라며 결정권 정도는 제가 가질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마이너스가 되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점이 더 많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아직도 소통이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알아간다는 것에 조금씩 의의를 두려 합니다.

명절이 끝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피곤한 오늘이지만, 제게는 어제와 같고, 오늘과 같을 내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반복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리라는 작은 믿음으로 오늘 밤도 평온하게 마무리하려 합니다.


적어도 저는 지금의 세대보다는 조금 더 넓은 세대의 삶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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