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지만 어려운 문제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이왕 하는 거 좋은 일 하는 건데 도와줘.
맞다. 좋은 일인데, 도와줘야지.
그런데 가끔 그런 좋은 일을 핑계로 경계를 넘어오는 사람이 있다.
좋은 일인데, 하면서 피곤하고,
좋은 일인데 도와주면서 뭔가 기분이 나빠지고.
좋은 일인데, 보람보다는 씁쓸함이 따라오는 기분.
농사를 하고 있는 어른들을 돕다 보면 종종 그런 일이 생긴다.
이것만 도와줘. 저것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것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루.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본업도 못하고 부수적인 일만 거들다 보면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말의 습관이 좋은 어른들이라면
그런 수고스러운 도움에 대해서 말이라도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칭찬하지만.
대다수의 말의 습관이 좋지 않은 어른들은
100가지 해야 할 것 중에 네 덕분에 5가지 정도 했다고,
네 덕분에 오늘 이만큼 끝냈으니 내일부터 내가 1000가지만 더 하면 된다고,
네 덕분에 이건 잘 끝냈는데,
남아있는 다른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라고 말하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내 일이 있는데,
언제까지 내 일을 미뤄가며 그런 일들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내 부모의 경우 말의 습관이 그렇게 좋은 어른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맙다고 좋다고 하지만 말의 어딘가에는 항상 한숨과 걱정이 스며들어간 언어를 사용하는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수고를 하고는 뿌듯함 보다는 찜찜함을 가지고 집을 나오는 경우가 더 많게 된다.
시골에서, 그것도 주택에 거주하다 보니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이 참 많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부지런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뭔가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끝이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누구에게나 취미가 필요하고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미와 관심사가 가끔은 심장을 움직이게 하는 열정의 초석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자신의 취미와 관심사를 본인이 온전하게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죄라고 생각한다.
나의 취미와 관심사로 인해서
나의 가족이나,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또는 직접, 간접적으로 나와 관계하는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 말이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경제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이웃을 돕기 위해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경우.
물론, 이것만 본다면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제적 지원을 위해서 나의 가족에게 절약을 강요하는 건 결코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위 “좋은 일”을 할 때는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그 좋은 일이 단순히 내 선에서 정리될 수 있는 일인지. 또는 나 이외의 타인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건 누군가에게는 좋은 일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면성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때문에 좋은 일을 한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민해야 하니까.
내가 행하는 좋은 의도가 암묵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고민해도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온전히 내 힘을 할 수 있다면 그 일은 고민 없이 하는 게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