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아직 미숙했는데.
명절의 마지막 이벤트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래전 졸업한 제자의 이름이 전화기 화면에 표시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으니 명절이라고 집에 왔는데, 시간이 가능하다면 인사를 드리러 오고 싶다는 이야기였지요. 마침 저도 집에 오는 길이었고, 아이들이 집 근처로 오는 시간과 얼추 비슷할 것 같아서 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 모습을 생각했는데, 벌써 서른의 나이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학창 시절 천방지축이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고,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연예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덧 카페 마감시간이 되었고, 자리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초임시절 만났던 아이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잘한다고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저의 부족함과 미흡함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었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연락하지 못했고, 더 멀리서 지켜봤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아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덕이 아니라, 제가 그만큼 관계성에서 복을 받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나는 잘한다고. 나 정도면 최고라고.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시기가 있습니다.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지나고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많은 미흡함이 보이는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미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던 학창 시절, 학문에서 어느 정도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던 대학, 대학원 시절,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고 생각하던 초임시절.
돌아보면 너무도 큰 세상의 작은 부분을 알고 있었던 것인데, 저는 마치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 나름 자신들의 전공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성인이 되고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니 얼마나 부족했던지를 깨닫게 되는 경험이 모두에게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 와야지 알게 되는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근황을 들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고,
어떤 아이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아이도 있고,
어떤 아이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에서 기쁨을 누리는 아이도 있었지요.
어찌 되었든 모두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의지가 있고, 그것을 표현할 환경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나 학창 시절 부족했던 교사의 언행이 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줬던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있었거든요.
그 시절 저는 참 부족했는데, 참 미숙했는데, 그럼에도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감사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교단에 있지 않지만 지금 하는 일을 통해서 역시나 저 나름의 방법으로 영향력을 전달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야 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