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가 재미있어요
큰애 1년 차, 살림을 해 본 적 없었으니 모든 것이 다 낯설었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묻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엎어뜨리고 매치고 열심히 청소하고 음식하고 빨래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잡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엄마의 뽀얗고 하얀 면행주만큼은 흉내도 안내 지더랬다.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 엄마 행주는 어떻게 하얀 거야? 엄마는 매번 삶으신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나도 하얀 것들을 삶아봤다. 열심히 삶아봤으나 엄마처럼 새하얗고 뽀얗고 섬유 냄새나는 그런 삶음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봐도 그냥 삶으라는 단어뿐... 과감히 하얀 행주와 하얀 수건 그리고 하얀 티는 포기했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 지나고 나서 엄마의 살림을 보고 있었는데 가스레인지에 하루 종일 끓고 있는 것이 궁금했다. 엄마 잰 뭐야? 하고 물으니 엄마가 빨래 삶는 중이라고 하셨다. 오래도 끓고 있던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이 나왔다. 삶는 것.. 나는 라면 끓이는 정도라 생각해서 한번 끓어 넘치면 불을 꺼왔던 것이다. 새-하애 질 리가 있나....
빨래의 시행착오는 이것만이 아니다.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돌려서 주머니에 화장지를 넣고 돌려서 하얀 가루를 마주하기도 했고, 아이 기저귀도 넣고 돌려서 하얀 알갱이들을 울면서 털어낸 적도 있다. 한때 베이킹소다와 과탄산 소다로 빨래해서 동생에게 묘한 향이 난다고 제발 미니멀 그만하고 합성세제 쓰라고 혼난 적도 있고, 귀찮아서 흰 빨래 검은 빨래 다 넣고 돌린 적은 일상 다반사였다.
귀찮음을 어떻게 털어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미니멀의 영향이 여기까지 미친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옷만 남기다 보니 옷을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방법을 찾고 그 방법이 세탁을 예쁘게 하고 반듯이 게거나 걸어서 잘 보관하고 깔끔하게 입고 나가고 좋은 일들에 대한 기억으로 옷이 더 좋아지고 일련의 방향으로 순환되었기 때문 같다. 사소한 선순환의 행복이라고 해야 할까나...
지금은 살림 중에 빨래를 좋아하고 살림 중 제일 잘한다고 생각한다. 먹거나 치우거나 청소하거나 하는 행위들은 조금 지겹거나 돌아오는 주기가 너무 빨라서 힘들긴 한데 빨래는 내가 조절할 수 있기도 하고 나눠서 할 수도 있어 그런지 웬만하면 즐겁다. 세탁기와 건조기의 힘에 의존적이긴 하지만 적당히 손빨래의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포인트인 것 같다. 지저분한 곳을 애벌빨래하기, 하얀 빨래 혹은 냄새나는 빨래는 워싱소다에 담가두기, 하늘 거리는 블라우스 소재와 속옷은 가끔은 손빨래해서 단독세탁하기. 손이 닿아서 깨끗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 즐겁다.
요즘 여름철에 뜀 하면 입은 체육복들을 워싱소다를 풀어 빨아두고 있다. 깨끗하게 빨아두었는데도 빨래를 미지근한 물에 담가 워싱소다를 풀면 때 구정물이 나온다. 운동하며 섬유에 깊게 배어있던 내 땀과 노력이 이렇게 빠져나오는 것 같다. 뭔가 아쉬운데(?) 속 시원하다. 한편으론 내 몸에 겨우 자리 잡은 운동의 습관이 빠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시 늘어지면 어떡하지 다시 게을러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산더미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을겨울사이의 아침에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집을 정리하는 게 전부이다. 추운 날씨는 정말 힘겹다.
두꺼운 옷을 이불을 전기장판을 켜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은 집에서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물론 나는 긴팔 긴바지에 가끔은 조끼까지 입고 덧신까지 꼭 챙긴다] 교복 남방에 이너로 사준 흰 면티를 평소에도 입고 자고 입고 생활을 하고 학교까지 입고 간다. 뭐 이너 개념이라 여러 개 있긴 하지만 무분별하게 입어서 때론 찌든 때가 잘 빠지지 않을 때도 있다. 워싱소다를 푼 미지근한 물에 아이의 흰 티를 담가놓고 출근을 했고 집에 돌아가서 세탁기에 빨래를 마저 돌려야 한다.
큰애 15년 차, 이젠 나도 애법 살림 좀 하는 엄마가 되어가지만, 살림과 회사와 아이들의 보육과 내 꿈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여전히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포지셔닝 중이다. 그에 비하면 나의 엄마는 이미 출발점이 다르긴 했지만 더 앞으로 가고 계신다. 비교는 참 쓸모없음에도 상급자를 탐하는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나를 마주할 때마다 참 기가 찬다. 그래도 시간은 나를 성장시키고 나아가게 한다. 이제 라면 끓이듯 빨래를 삶지 않는 게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가~! 빨래가 즐거워진 것도 얼마나 대견한가~! 툴툴 털어 건조기에 빨래를 넣는다. 툴툴 털어 몇몇은 옷걸이에 걸어 건조대에 걸어 널어둔다. 물기가 다 마르면 또 즐겁게 입고 즐거운 일들을 만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