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6

지금 여기

by 랑랑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싶은 날들이 있다. 먹고 자고 눈뜨고 씻고 뒹굴거리고 읽고 쓰고 나갔다가 돌아오고 싸우고 웃고 놀고 뛰고 걷고 치우고 이 수많은 행위의 동사에 포개어지는 것이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이런 포개어짐을 꿈꿔왔다. 타인과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 성인 남자 하나와 예비 성인 남자와 어린 소년과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나와 다른 청결도의 기준과 시각은 제멋대로이고 청각은 비이성정이며 감각은 일방통행이다.


예비성인 남자와 어린 소년을 사랑한다. 몬낸이 어미라 말로 때리고 손으로 때리고 짜증 내지만, 사랑한다는 대 명제 앞에 아이들을 버린 적이 없다. 오은영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사랑해 주고 독립과 자립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한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파트는 작은 공동체로 *** 아파트 **동 *호를 함께 살고 ***아파트 **동을 위아래 오른쪽 왼쪽으로 서로의 벽과 벽, 서로의 천장과 바닥을 공유한다. 어떤 냄새는 아래층의 음식 취향을 알 수 있고 어떤 소리는 옆집의 음악 취향과 어떤 소리는 윗집의 가정사를 읽을 수 있다. 어떤 날은 같은 라인의 누군가의 작은 선물 위 포스트잇으로 마음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우리 집 때문에 고통받는 아랫집의 샤우팅을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나의 샤우팅을 위에서 아래에서 옆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종종 얼굴이 화끈해진다. 각자의 집으로 문을 닫고 들어가면 단절된 듯 느껴지지만 화끈거리는 날은 외면 공동체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잘 참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살아가는 중이다. 타인으로 오는 것을 아주 못 참는다 1에서 아주 잘 참는다 10의 척도 안에서 객관의 눈으로 난 7에서 8 정도는 견딘다. 물론 내가 그만큼을 참는다는 것을 알게 모르게 표시 낸다. 멀리 보면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피 흘리면서 참아 낸다. [뭐 이건 내 생각이니까 아닐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 때문에 나는 상대에게 굳이 피 흘리게 참아내는 행위를 주고 싶지 않아서 피해를 주는 행위를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한다.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참는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썼는가 하냐면;; 바로 층간소음 때문이다. 난 맨날 애들 잡아가며 애들한테 인상 써가며 아랫집엔 피해를 덜 준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아랫집은 우리 집 때문에 힘들어하고, 힘들어하고 그리고 결국 비이성적으로 행동했고 우리 집 역시 힘들어하고 힘들어하고 결국 비이성에 비이성으로 대처했다.

그날을 수 없이 복기해 보았지만 참 아쉬운 대처였다. 하지만 그 아쉬운 대처를 바꿀 수 없는 대안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 연극처럼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고 각종 소음이 아파트를 가득 채웠고 먹는 것들은 까끌거렸고 잠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하늘이 어질 거리고 속이 메슥거리고 바닥이 꿈틀거렸다. 그날 달팽이관을 빠져나온 돌을 제자리에 찾아 넣으며 작은 결심을 했다. 내 집에서 내가 즐거울 수 없고 아이들도 즐거워할 수 없으니 우리는 이사를 해야만 한다고...


1층. 아파트의 맨 아래층. 중문이 있어도 그 어느 층보다 밖의 온도가 계절의 흐름이 시간의 특별함을 빠르게 만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이들의 사소한 수다에 귀가 참여할 수 있다. 시골집을 다녀오는지 출장을 다녀오는지 새로운 가전 가구가 들어오는 것도 반가움과 고난함도 종종 만난다. 저녁 식사 시간 밖에서 사 오거나 배달아저씨가 들고 오는 비닐 포장 안으로 달콤한 냄새를 공유하기도 한다. 1층은 반절은 공공재이다. 집 앞에 무엇인가를 빨리 치워야 통행에 불편함을 주지 않고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늘 청결해야 한다.

볕은 생각보단 잘 안 들지만 빨래 건조를 도와주는 전기 건조기가 있고 집에 태양광을 대체하는 led가 있으니 아쉽지만 아쉽지 않다. 곤충이 조금 자주 출몰하긴 하지만 내가 잘 잡을 수 있으니 이것 역시 크게 불편하진 않다.

아이들과 1층에 산지도 2년 하고 반절이 흘렀다. 우리는 1층에 잘 적응하고 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커서 집보다는 밖생활이 더 늘었고 집에서 우당탕탕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집 앞엔 화단이 있고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향과 적당한 즐거움과 기다림이 있다.


이 집에선 얼마나 살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커가고 학교 진학문제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 이사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큰 변화가 없다면 계속 여기 살고 싶은 마음이다. 큰 변화를 줄 수 없어서 그냥 있는 그대로에서 작은 가구들 위치를 바꾸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먹고 자고 눈뜨고 씻고 뒹굴거리고 읽고 쓰고 나갔다가 돌아오고 싸우고 웃고 놀고 뛰고 걷고 치우고 이 수많은 행위위에 아이들의 행위를 얹어본다. 좋을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있지만 사소한 하루하루가 쌓여서 우리는 서로를 가장 잘 알아봐주는 또 다른 타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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